'퍼즐 한 조각'과 '맷손'

나이 일흔에 풀어놓는 소소한 이야기(제31편)

* '퍼즐 한 조각'과 ‘맷손’ *



어릴 때 ‘팔칸집’에 세 들어 살았다.

‘팔 칸’ 그러니 여덟 가구가 사는, 요즘 식으로 말하면 연립주택의 주인은 교회 장로셨다. 지금은 그런 집주인 없겠지만 그땐 위세가 대단해 한 가구 당 적어도 한 사람은 반드시 교회를 나가야 했다. 아버지는 무조건 교회를 싫어하셨고, 어머니는 절에 다니느라, 누나 둘은 일요일도 회사 갈 때가 많아서, 동생은 워낙 꼬맹이라 제외. 그래서 교회 다닐 사람으로 최종적으로 선발된 우리 집 대표가 바로 나였다.

어쩔 수 없이 선택받아(?) 교회를 다니게 되었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노래(찬송가)도 배우고, 과자도 먹고, 가끔 학용품도 얻었으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성경퀴즈대회였다. 지금이야 두뇌가 퇴화해 형편없지만 그때는 내가 좀 영리했던 모양이다. 성경 퀴즈가 나오면 가장 먼저 손을 들어 정답을 맞혔으니.


(어릴 때 살던 팔칸집을 회상하며 그림)


그 덕에 지역 교회연합 성경퀴즈대회도 나갔고, 거기서도 최고 득점자가 되기도 했고... 그 때문인지 제법 나이 들 때까지 퀴즈 풀기를 좋아했다. 특히 일주일에 한 번씩 신문에 실린 '낱말 퍼즐 퀴즈'는 뉴스야 읽지 않아도 그건 놓친 적이 없었다.

지금도 혹 낱말 퀴즈에 빠지면 끝까지 가는데 풀다가 안 풀릴 때, 특히 마지막 한 문제가 안 풀릴 때는 방방 뛴다. 미칠 지경이다. 그 한 문제 때문에 내가 좀 모자란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드니… 그럴 땐 아내가 한 번씩 보고는 혀를 차기도 한다.



서양 명언에 “세상이라는 퍼즐의 한 조각이 되어라, 너 없이는 완성될 수 없는.(One piece of the puzzle that the world. Cannot be complete without you.)”이 있다. 참 그 뜻과 표현이 멋지다. ‘세상의 퍼즐 한 조각’, 마치 시 한 구절을 보는 듯하지 않은가.


(신문에 나오던 낱말퀴즈의 예 - 구글 이미지에서)


이 명언을 떠올리자 셰익스피어와 음식점 청소하는 소년의 일화가 떠오른다.

셰익스피어가 런던의 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식당에 들어서는 모든 이들이 그에게 경의를 표하며 정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때 현관을 청소하던 소년이 빗자루를 내던지며 한숨을 쉬자, 셰익스피어는 소년을 불러 그 이유를 물었다.

“선생님과 저는 똑같은 인간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저는 고작 바닥이나 쓸어야 한다는 것이 한심할 뿐입니다.”


셰익스피어는 소년의 어깨를 가볍게 감싸 안으며 말했다.

“자네와 나는 같은 일을 하고 있다네. 나는 펜으로 하느님이 지으신 우주의 한 부분을 표현하고 있지만, 자네도 지금 하느님이 지으신 우주의 한 부분을 아름답게 청소하고 있지 않은가. 결국 우리는 같은 일을 하고 있다네.”

세상에! 영국 사람들이 인도와 바꾸지 않겠다고 한 셰익스피어가 한 일과 고작 식당 청소부가 한 일이 같다니… 이런 일을 겪은 뒤 그 소년청소부는 세상에는 쓸모없는 사람이란 없다는 고귀한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셰익스피어 - 구글 이미지에서)


시골에선 아직도 맷돌을 볼 수 있다. 허나 대부분 한쪽 구석에 장식물로 놓여 있거나, 전원주택의 잔디밭에 받침돌로 쓰일 뿐 실제 맷돌 기능을 하는 건 별로 없다. 그래도 옛적 맷돌을 돌려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알리라. 제법 힘이 든다. 왜 아니랴, 무거운 돌 두 개를 겹친 상태에서 돌리려니 그 둘 두 개의 마찰력으로 하여 힘이 들 수밖에.

다행인 건 윗돌의 끝에 구멍이 파여 있어 거기에 나무 막대기를 끼워 돌리면 수월하다. 이 막대기를 ‘맷손(딴이름 : 어처구니)’이라 한다. 단단한 돌을 정교하게 원형으로 다듬어 만든 맷돌에 비하면 맷손은 별로 힘 안 들여도 만들 수 있다. 아무 나무든 대충 잘라 구멍에 끼우면 되니까.


그러니 맷돌은 비싼 돈을 주고 사도 맷손은 사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 거의 가치가 없다. 또 꼭 나무막대기가 아니어도 된다. 책을 돌돌 말아 넣어 돌려도 되고, 정 없으면 쥘부채도 부러진 빗자루도 된다. 그저 끼워 돌리는 기능만 있으면 된다. 그러니 맷손은 그리 대단한 게 아니라고 여길 수 있다.


(왼쪽 나무손잡이를 '맷손'이라 함 - 구글 이미지에서)


그런데 만약 맷손이 없다면? 맷손이 없다면 아무리 힘센 장사라도 맷돌을 쉬 돌리지 못한다. 무거운 두 돌이 일으키는 마찰력이 대단하기 때문에. 그래서 반드시 맷손이 있어야 한다. 두부를 만들기 위해선 물에 불린 콩을 맷돌에 간다. 콩이 알맞게 불었고, 맷돌도 있는데 맷손이 없다면 낭패다. 두부를 만들 수 없다.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맷손이 없어서 정작 중요한 일을 못하게 된다.


서양의 명언대로 하면 우리는 세상의 퍼즐 한 조각이요, 셰익스피어 식으로 표현하면 청소부도 그냥 청소부가 아니라 우주의 한 부분을 깨끗이 하는 청소부다. 이를 우리 식으로 바꾸면 우리는 맷돌을 움직이는 맷손이다. 즉 우리들이 하는 일은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라도 바로 우주의 평화를 위하는 일이다. 그만하면 우린 그냥 평범한 존재가 아니니 자부심 가져도 되지 않은가.

또 굳이 ‘세상이라는 퍼즐의 한 조각이 되어라, 너 없이는 완성될 수 없는’이나, ‘우주의 한 부분을 깨끗이 하는 청소부’란 표현을 쓰지 않더라도, 누군가 ‘너는 그 자리에 있을 땐 빛이 나지 않으나, 그 자리를 비웠을 때 소중한 사람이야’라고 말해준다면, 나는 차라리 ‘맷손’이 되고 싶다. 자리 없을 때 더 빛이 나는 ‘맷손’ 말이다.


(맨 위 동물 모양 조각을 '어처구니'라 함 - 구글 이미지에서)



<뱀의 발(蛇足)>


여태까지 '어처구니'를 맷돌의 나무손잡이를 가리키는 걸로 알고 썼으나, 어처구니의 어원을 요즘 들어선 궁궐 지붕의 추녀마루 끝에 장식으로 올리는 흙으로 만든 조각인 '어처구니'에서 유래했다는 이론이 정설로 굳혀진 상황입니다.

기와를 얹을 때 이 어처구니를 빠뜨리고 공사를 마무리하면, 왕실에서 "어처구니가 없네!"라며 혀를 찼다는 설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다만 국어학적으로 어느 게 옳으냐보다 맷돌 손잡이를 어처구니라 하는 게 가르치는 사람으로선 학습자에게 이해시키기가 더 편한데... 좀 아쉽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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