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는?

나이 일흔에 풀어놓는 소소한 이야기(제32편)

*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는? *



<하나>

“양지밭 과수원에 꿀벌이 잉잉거릴 때 / 나와 함께 그 새빨간 능금을 또옥똑 따지 않으시렵니까?”
이 시구가 기억이 난다면 그대는 적어도 고등학교 다닐 때 국어수업 시간에 졸지 않았다 해도 무방하리라. 아시다시피 고교 시절 배운 신석정 시인의 너무나도 유명한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란 시에 나오는 마지막 시구이니까.


(사과꽃에 앉은 꿀벌)


텃밭에 나갈 때면 모기를 대비하여 작업복 차림에 모자를 둘러쓴다. 햇빛을 가리게끔 챙이 긴데다 방충망까지 달린 모자다. 누군가 본다면 마치 화생방 훈련하러 가나 싶을 정도로 완벽해 보인다. 이걸 쓰면 모기와 벌 걱정은 안 해도 되지만 무척이나 덥다.
어제도 텃밭에 나가 새로 심은 오이와 토마토에 물 주려 호스 드는데 갑자기 잉잉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꿀벌이 흥겨워 내는 소리다. 그냥 물 뿌리려다 잠시 그 소리를 감상했다. 벌들의 노래임이 분명하건만 일정한 박자가 없다. 엇박도 아니다. 그저 끊임없이 잉잉거릴 뿐.

우리는 보통 벌이 나는 소리를 글로나 말로 표현할 때 ‘윙윙’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무심코 쓰다 보니 그렇게 들리는 것 같으리라. 허나 이는 말벌 소리라면 몰라도 꿀벌 소리론 ‘잉잉’이 더 잘 어울린다. 가만 귀를 기울이면 ‘잉잉’ ‘잉잉’ ‘잉잉' 하고 벌들이 재잘재잘 속삭이는 소리로 들린다.




게다가 ‘윙윙’은 어쩐지 기계음에 가깝고 ‘잉잉’은 자연음 같다. 더욱 윙윙하고 소리낼 때는 위협적이나, 잉잉은 마치 애기들 웃음소리처럼 참 귀엽다. 물 뿌리다 말고 잠시 멈춰 꿀벌 소리를 들었다. 아니 감상했다. 정말 들어도 들어도 자꾸만 듣고 싶어 한참을 더 들었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소리는 다 다르리라. 하지만 시골 사람에게 ‘가장 좋은 소리는?’ 하는 설문지를 돌리면 많은 사람이 꿀벌 잉잉거리는 소리라 답하리라. 일단 벌과 나비가 밭작물의 꽃에 날아와 붙어야 수정이 되고 열매가 맺는다. 그 열매가 오이, 토마토, 가지, 참외, 수박이 되고.
꿀벌이 달라붙은 꽃의 향기는 유독 진하다. 그러기에 자꾸만 거기로 코를 갖다 댄다. 아마도 벌이 꽃향기샘을 건드린 게 아닌가 싶다. 꿀벌이 잉잉거리는 소리를 내며 밭으로 찾아올 때 농사꾼의 얼굴에 저도 모르게 얼굴 가득 잔잔한 미소가 흐른다.




<둘>


요즘 즐겨 보는 유튜브는 국제결혼한 젊은 부부의 얘기를 담은 영상이다. 우즈베키스탄 우크라이나 러시아 같은 동유럽 아가씨와 결혼한 쌍이랑, 태국 베트남 필리핀 라오스 같은 동남아시아 쌍의 얘기가 주류인데, 우리나라에 사는 커플보다 여인네 나라에 사는 영상을 더 자주 본다.
그 나라 음식, 생활, 환경, 문화를 두고 나누는 대화나 집 근처 산책하며 걷다 주고받는 얘기를 듣다 보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럴 때 확 눈에 띄는 그림은 어린 아기를 태운 유모차를 부부가 끌며 아기와 얼굴 대화를 할 때가 가장 보기 좋다.

첫 태생 혼혈아는 원판(?)보다 이쁘다는 통설 그대로 참 예쁘다. 동유럽 혼혈아든 동남아 혼혈아든 가릴 것 없이. 유모차를 끌며 주고받는 부부의 대화도 흥미롭지만 갓 태어난 아기의 재롱을 볼 때와 아기가 엄마 아빠를 보며 웃어줄 때 그냥 스르르 녹는다.


(엄마 품에 안겨 활짝 웃음 짓는 아기)


특히 동남아에선 수많은 아이들이 동네든 학교든 집 앞 공터든 맨발로 아무렇게나 뛰어다니는 모습 보면 그저 부럽기만 하다. 아이들이 저희들끼리 놀다가 가끔 싸우기도 하지만 떠들썩하게 웃는 소리가 들리면 ‘아, 저게 사람 사는 모습인데...’ 하며 중얼중얼.


세상에서 듣기 가장 좋은 소리 두 번째는 아기(어린이)들 웃음소리다. ‘까르륵!’ ‘까르륵!’ 넘어가는 듯한 소리가 들리면 심장도 잠시 숨을 멎는다. 우리 집에도 몇 년 전까지 손주들이 오면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지금도 그때랑 마찬가지지만 다만 좀 커서 그런지 솔직히 어릴 때보단 못하다.
포대기에 싸인 아기를 안아 눈 맞추며 이쪽에서 ‘까꿍’ ‘까꿍’ 하고 저를 부르면 아기도 가만있지 않고 얼굴이 환해지며 '까르르' '까르른' 소리 내며 웃는다. 그 모습보다 더 고운 얼굴이 있을까. 내 눈엔 올림픽 금메달 따고 환히 웃음 짓는 선수들보다 더 이뻐 보인다.


(원없이 물장구치며 노는 동남아 어린이들)


아기들 웃음소리에 반한 시점은 오래전부터지만 특히 요즘 들어 더 크게 느낌은 아무래도 나이 탓인가. 허나 다른 요인도 있다. 밖에 나가 봐도 거리를 걸어 봐도 아기 보기 힘든 시대가 아닌가. 길 가다 아기를 보면 뒷모습까지 놓치고 싶지 않아 계속 보는 까닭도 그렇다.


우리나라가 출산율 최저 기록을 계속 경신하고 있음은 다 아는 사실. 앞으로 그 추세를 벗어날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다. 달내마을 어르신들 말씀을 들으니 우리 마을에 아기들 웃음소리가 끊어진 지 40년이 더 지났다 한다. 반세기 가까이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어제 라디오를 들으니 모처럼 좋은 소식이 흘러나왔다. 작년부터 출산율이 높아졌고, 올 2분기는 10년 내 가장 높았다고 한다. 거기에 결혼하는 쌍도 늘어났다고 하니 길 가다 아기들 보며 웃음소리 들을 날이 오긴 할 것인가. 그날을 두 손 모아 간절히 고대해 본다.


(혼혈아기의 웃음에 녹지 않을 수 없으리)


<셋>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 세 번째는 '첫 잔 마신 뒤 탁 하고 술잔 내려놓는 소리와 카하 하고 내뱉는 소리'다. 일을 끝내고 동료들과 선술집에 모여 앉아 투명한 잔에 소주 따라 입에 털어넣으며 ‘카하!’ 하고 내뱉는 소리, 마신 뒤 그걸 술탁에 내려놓을 때 나오는 ‘탁!’ 하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최고다. 그 맛으로 술 마시지 않는가.


운동삼아 마을 한 바퀴 돌고 땀 좀 흘린 뒤 컵에 따르지 않고 맥주병째 들고 나발을 불며 내뱉는 ‘카하!’. 텃밭에 삽질하느라 땀 삐질삐질 흘리며 들어와 샤워한 뒤 막걸리 한 대접 부어 마시며 ‘카하!’ 하며 터뜨리는 소리도...
술꾼이 아니더라도 그 소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분들이 꽤 되리라. 그럼 술꾼들은 말해 무엇하리오. ‘카하!’ 그 소리는 언제 들어도 참 좋다. 실제로는 목구멍에 낀 때를 알코올로 싹 씻어 내려가지만 마음의 때까지 다 씻어주는 소리 아닌가.




여담이지만 단골 술집 마담이 새로 호프집 낸다 하여 술집 이름 지어 달라 하기에 즉석에서 ‘카하’라는 이름을 추천해줬다. 그 술집이 잘 된다는 소문이 귀에 와 닿았는데 마담 수완이 좋아서 인기 있겠지만 이름 덕도 조금은 가미가 되었으리라.
모 공고 퇴근길에 '또또와'라는 막걸리 집이 있었다. 퇴근 후 한창 테니스 즐기던 선생님들이 거기 모여 ‘카하!’ ‘카하!’ 하는 소리를 연방 질러댔다. 그러니까 ‘카하’는 무슨 일이든 마감하는 소리며, 하루를 정리하는 소리며, 내일을 약속하는 소리다.

허나 이 ‘카하!’ 소리내기의 즐거움도 이런저런 병에 다 빼앗겼다. 한잔 하고 싶건만 '절대 금주'라는 의사의 말을 거역할 수도 없고. 어젯밤 일부러 글 핑계로 무알코올 맥주를 사서 한잔 하려 술잔에 부어 마신 뒤 ‘카하’ 소리 내려 했는데 술맛이 안 나 결국 못 내뱉고 말았다.


(김녕만 작가의 작품 : [중앙일보] 2023. 6. 3에서)


<넷>



오늘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 첫째로 꿀벌 ‘잉잉’거리는 소리를, 둘째로 아기들 ‘까르르!’ ‘까르르!’ 넘어가듯이 웃는 소리를, 셋째로 술꾼들이 첫 잔을 마신 뒤 ‘카하!’ 하고 내지르는 소릴 들었는데, 이는 다 내가 좋아하는 소리일 뿐 글벗님이 좋아하는 소리완 다르리라.
혹 함께 나누고픈 글벗님만의 가장 듣기 좋은 소리가 있다면 댓글로 달아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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