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프랑스

나이 일흔에 풀어놓는 소소한 이야기(제40편)

* 카페 프랑스 *



이전에는 한 집 건너 ‘노래방’이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치킨집’이 그 뒤를 이었고... 지금은? ‘카페’다. 얼마나 번창하는지 여기 시골 아지매(?)들도 모임 뒤엔 카페에 꼭 들른다. 심지어 마을 어르신들도 카페란 말을 들었는지 한 번 가보고 싶다 하여 모시고 갔다가 돌아 나오기도 했다. 한 잔에 대부분 오천 원 언저리인데 네댓 달 키운 양파 반 상자 값이고, 고구마 한 상자도 커피 넉 잔이 채 안 된다.


연이틀 비가 내렸다. 많은 양은 아니나 비가 내리면 시골에선 모든 일을 멈춘다. 먹고 마시고 놀면 된다. 원래 이즈음은 할 일도 별로 없지만… 어제는 아침부터 이어진 비가 밤까지 제법 추적추적 내렸다. 이럴 땐 딱 술 한 잔 마시고 싶지만 읍내로 나갈 일이(사실은 돌아올 일이) 꿈만 같아 아내가 청승맞다고 해도 커피잔 들고 베란다로 나갔다.

캄캄한 밤이라 불빛이 없으리라 여겼는데 몇 년 전 신청하여 달아 놓은 길가의 가로등 불빛에 빗줄기가 반사돼 내리는 모습이 제법 운치 있다. 원래 밤의 주인공은 달의 숨소리와 별들의 군무(群舞)이지만 비 오는 날 밤의 주인공은 역시 빗줄기다. 조연은 바람에 흔들리는 뽕나무 가지 1, 2, 3...

지금 주연은 주황색 나트륨등에 흐늘거리며 회색 콘크리트 바닥 위로 넌출지며 떨어진다. 이럴 땐 빛을 흡수하는 흙보다 반사하는 시멘트 포장이 더 낫다.


(춘천 소양댐 근처 있는 한 시골 카페)


스무 살 때부터 일기를 썼다. 어떤 땐 거의 매일, 어떤 땐 한 달에 두세 번. 그러니 특별한 일이 있으면 적는다는 말이다.

아주 오래전이다. 다음은 이십 대 중반 일기 속의 한 쪽이다. 그때 연애했던 모양이다. (제대로 기억 안 나서 이리 적음)


“저기 빗방울 보입니까?”

“네, 너무너무 아름다워요.”

“자세히 보세요, 빗방울이 살아 있는지 …”

빗방울이 살아 있다는 말의 의미를 알까? 빗기 내리는 흐릿한 가로등불빛 속에서 빗줄기가 보도블록에 부딪힐 때마다 물방울은 무정물(無情物)임을 거부하고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봐요. 물고기가 퍼더덕퍼더덕하지 않습니까. 이럴 때 어느 시인은 '흐느적거리는 불빛을 갉아먹으며 / 실치가, 실치가 튀어 오른다.'고 읊었지요.”

“실치가 뭐에요?”

“실 같이 가는 물고기라는 뜻이죠.”

정말 말하고 보니 실 같이 가느다란 물고기가 제방(堤防)을 뛰어넘어 다른 세상으로 옮겨가듯 빗방울은 그렇게 튀어 오르고 있었다.


(제주도 조천읍에 있는 [시인의집] 카페)


“누구 시인데요?”

“사실 전에 여기 들렀을 때도 오늘처럼 비가 내렸지요. 시인이 아니더라도 그냥 시상이 떠오르더군요. 적당히 몇 마디로 얼버무린 건데 괜히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에 황칠한 것만 같아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황칠이라뇨? 저기 저 상황에 그보다 더 어울릴 표현은 없을 것 같은데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좀 과장된 어투에 그쪽에서 ‘팍’ 하고 싱그러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저 장면에 맞는 진짜 시인의 시가 있는데 한 번 들어보시렵니까. 「향수」로 유명한 정지용의 시 「카페 프랑스」에 이렇게 씌어 있죠.


옮겨다 심은 종려(棕櫚)나무 밑에

비뚜루 쓴 장명등,

카페 프랑스에 가쟈.

이 놈은 루바쉬카

또 한 놈은 보헤미안 넥타이

버쩍 마른 놈이 앞장을 섰다.

밤비는 뱀눈처럼 가는데

페이브먼트에 흐느끼는 불빛

카페 프랑스에 가자

(이하 생략)


(경북 문경의 한 카페 안에서 밖을 내다본 정경)


어때요? 밤비가 뱀의 눈처럼 가늘게 내리고, 보도(步道) 위에 흐느끼듯이 다채롭게 모양 짓는 가로등 불빛, 이럴 때 사랑하는 이와 따뜻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세상은 모두 그의 것이겠지요.”

“그럼 우리가 앉아 있는 이곳은 카페 프랑스가 되겠네요.”

“그리고 우리 둘은 카페 프랑스란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되고…."


이 밤 웬일인지 「카페 프랑스」가 저절로 읊조려진다. 아파트에 살 때도 비 내리는 밤이면 꼽꼽주 한 잔 마시고 거리를 걸어가다가 종종 읊조리던 시다. 전편을 다 외우나 그중에서 이 구절이 특히 마음에 들어 몇 번이나 반복하여 읊조린다.

"밤비는 뱀눈처럼 가는데 / 페이브먼트에 흐느끼는 불빛 / 카페 프랑스에 가자."


뱀눈처럼 가는 밤비는 밤비와 뱀눈을 유심히 관찰해보지 않은 이라면 잘 이해 안 되리라. 밤에 내리는 가느다란 빗줄기를 이처럼 멋지게 묘사한 시구를 본 적 없다. 거기에다 빗물 젖은 보도(페이브먼트)가 차에서 나오는 불빛을 받아 밝았다 어두워졌다 하며 흐릿하게 빛을 반사하는 걸 흐느낀다고 한 표현도 탁월하다.


(한 카페 창으로 내다본 지리산)


이럴 때 술꾼이라면 어찌 술 한 잔 생각나지 않을 수 있을까. ‘카페 프랑스’는 당시 문인들이 즐겨 찾던 술집이었다고 한다. 아마 밀밭 근처에 못 갈 사람 제외하곤 이런 날이면 동동주가 떠오르리라. 굳이 파전이 없더라도 말이다.

저도 모르게 이 시구를 읊조리는 걸 어느새 나와 듣고 있던 아내가 불쑥 한마디 한다.

“술 생각이 나나 보죠?”

전에 몇 번이나 이 시를 해석해 준 적 있기에 대뜸 눈치채 하는 말이다. 그러나 사실 오늘밤은 술 생각보다 시와, 비와, 그 분위기에 얽힌 사람이 더 생각난다. 이 이야기는 차마 아내에게 하지 못했다. 말한다고 해서 이 나이에 불끈할까마는… 허나 털어놓으면 왠지 그 고움이 사라질까 봐 혼자서 속에 감춰두고 싶은 그런 아련함이 있기에…


얼추 한 시간이 지났나 보다. 가로등불빛은 꺼지지 않는다. 내 그리움의 불빛이 꺼지지 않는 것처럼.


*. 사진은 모두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이 가운데 [시인의집] 카페는 '손세실리아 시인'이 직접 운영하는데, 커피보다 시집이 더 대접받는 곳입니다. 혹 제주도 갈 일 있으면 꼭, 꼭, 꼭 들러보세요.


keyword
이전 09화돈, 돌, 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