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빵구 이야기

나이 일흔에 풀어놓는 소소한 이야기(제41편)

* 무시빵구 이야기 *



그저께 아랫집 '탄(개 이름, 하도 털빛이 짙은 검은색이라 '연탄'에서 '연'을 없애고 붙인 이름)'이 하도 짖어 밖에 나갔더니 현관 앞에 무 세 개가 놓여 있었다. 누가 했는지는 뻔한 일. 마을에서 가장 친하게 지내는 가음댁 할머니가 여름무만 놔두고 우리 나오기 전에 가버린 모양이다.

며칠 전 얘기를 나누던 중 ‘저는 무 생채에 밥 비벼 먹는 걸 좋아해요.’라고 한 말을 잊지 않은 듯하다. 여름무는 관리가 힘들어 키우기 어렵는데 할머니는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키웠던가 보다. 고맙다는 전화를 하고 나니 얼마 전에 뒤져 본 옛날 수업일기 속에서 ‘무’에 관한 내용을 본 기억이 났다.

(2011년 9월 8일이란 날짜가 적혀 있는 걸로 보아 아래는 14년 전쯤 일기를 정리한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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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5교시 수업시간은 평소와는 달리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쫑알대기로는 종달새보다 더한 아이들도 어제의 체육대회 후유증을 피해 갈 수는 없었으리라. 중학교 2학년은, 특히 남녀공학인 이 학교에선 어느 학년보다 활발한지라 언제나 재래시장 바닥처럼 소란스럽다.

나는 너무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지만 너무 조용한 것도 활기가 떨어지는 것 같아 적당한 소음을 사랑한다. 물으면 엉터리든 정답이든 답이 있어야 한다는, 즉 메아리가 있어야 한다는 게 평소의 지론이다.


아이들만 피로한 게 아니라 가르치는 나도 피로한 데다 분위기가 가라앉아 교사와 학생 모두 졸음에 겨워질 무렵, 갑자기 어디선가 '뽀오옹' 하는 아주 듣기 좋은(?) 소리가 났다. 분명히 그 소리는 나지막했다.

허나 워낙 가라앉은 때라 아이들은 언제 졸았느냐는 듯이 고개를 번쩍 들어 소리의 진원지를 찾다가 한 곳을 쳐다보고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진원지로 여기는 한 구석에 앉은 여학생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것을 보자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더욱더 커져갔고 어떤 녀석들은 궁둥이를 들어 책상을 치며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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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남학생, 특히 평소에 튀는 녀석이었다면 "내가 안 뀌었어!" 하며 핏대 올리든지 그렇잖으면 적당히 웃다가 그칠 수 있었으련만, 불행하게도 범인(?)으로 지목된 소녀는 곱상하게 생긴 데다가 평소에 얌전하고 수줍음이 많아 그 소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소녀였다.

아이들의 웃음이 잦아질 무렵 이왕 이렇게 된 바에야 분위기를 더 띄우려고 한 마디 덧붙였다.

"얼굴이 예쁘고 착한 OOO는 방귀 소리조차 아름답구나."

아이들은 다시 한번 자지러졌고, 그 소녀는 그만 책상에 엎드리고 말았다.



나 초등학교 다닐 때 교실에서는 방귀소리가 끊일 때가 없었다. 그래서 웬만한 소리 정도는 웃음거리도 되지 않았다. 소리 대신 냄새가 주 화제가 되었다. 아 그 냄새, 지금도 떠올릴 때면 코끝에 스며드는 그 냄새를 40년이 넘어서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하도 많은 종류의 냄새를 맡다 보니 뭘 먹고 뀐 빵구(‘방귀’의 사투리)인지 가려낼 정도였다고 할까. 보리밥 먹고 난 뒤 뀌는 ‘보리빵구’, 고매(고구마) 먹고 난 뒤 뀌는 '고매빵구' 등. 그러나 그중에서도 우리들이 공포의 냄새라 이름 붙인 '무시빵구' 앞에선 고개를 숙여야 했다.


'무'를 경상도 사투리로 '무시'라 하는 건 제법 나이 든 사람이나 알겠지만 그때는 볼품없이 오동통한 '무다리'를 '무시다리'라 했다. 게다가 제대로 타격 못하는 야구선수를 비하하여 ‘무시빠따’라 하는 등 통상 쓰는 말이었다.


41-3.png (무밥 - 간장과 함께 쓱쓱 비며먹음)



당시에는 어지간히 사는 집 외는 다들 '무시밥'을 수시로 해 먹었다. '무시밥'이란 글자 그대로 밥을 할 때 쌀에 보리를 섞으면 '보리밥'이 되고 나물을 넣으면 '나물밥'이 되듯이, 보리 대신 '무시'를 넣어 만든 밥이 바로 '무시밥'이다.

경험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설명을 덧붙이자면 바로 우리 어머니들의 쌀을 줄이기 위한 비법(?)이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무시밥'의 결점은 소화가 너무 잘 된다는데 있었다. 그걸 먹고 난 뒤 얼마 안 있으면 방귀가 나온다.


'무시빵구'는 소리가 나지 않고, 냄새가 교실 전체에 퍼지는 데는 몇 초 걸리지 않기에 범인을 색출해낼 수도 없다. 그러나 '무시빵구'의 무서움은 소리도 뀐 범인이 누구냐가 아닌 바로 그 지독한 냄새에 있다.

순식간에 코는 물론 머리조차 '띵' 하게 만드는 그 엄청난(?) 독가스의 위력에 견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죽했으면 내가 공고 화학과 다닐 때 나중에 귀찮은 사람들 퇴치용 무기(요즘 같으면 가스총 같은 것)를 그걸로 만들면 성공하겠다고 했을까.


41-4.jpg (이젠 업그레이드된 '무굴밥'도 나옴)



이제는 방귀 소리조차 귀엽게 느껴지는 시대에 살면서 오늘 문득 그 옛날 밥을 지을 때 '무시'를 넣어야만 했던 우리들의 어머니를 생각해 본다. 당신들조차 그 냄새의 고약함을 몰랐을 리 만무했지만, 쌀이 귀해 그것을 아끼려고 김치를 넣어 끓인 김치국밥이나 무시밥 등 별별 꾀를 다 내야 했다. 그분들의 안쓰러운 마음씨는 요즘 사회에선 머나먼 신석기시대나 청동기시대의 일로 여겨질 것이다.


이젠 ‘무시밥’은 먹지 않으나 '무 생채' ‘무김치’를 좋아하니 방귀를 뀌면 ‘무시빵구’가 나오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이 된다. 해도 어쩌랴, 나오는 걸 인력으로 막을 수 없고, 냄새 퍼지는 건 더더욱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요즘 코로나 때문에 격언 하나가 바뀌었다고 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가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로. 이제 겨울엔 붙어 있지 말라고 하니 ‘무시빵구’ 냄새를 맡을 기회가 없음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 오늘 글은 목우씨의 일기장(2011년 9월 8일)을 정리한 내용이며, 사진은 모두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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