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일흔에 풀어놓는 소소한 이야기(제42편)
얼마 전 친구 딸 결혼식 때문에 부산 갈 때의 일이다.
시외버스 안에서 무심코 들려온 한 아주머니의 전화를 들으며 슬그머니 웃음이 났다. 대화 내내 ‘하!’, ‘하모!’란 말이 빠지지 않고 들렸기 때문이다. 둘 다 ‘알아들었다', '네 말이 맞다’라는 뜻의 서부경남 사투리다.
나는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자마자 부산으로 내려와 죽 살았지만, 부모님 고향이 하동이다 보니 모든 문화적 배경(사투리 포함)이 서부 경남일 수밖에 없다. 음식은 경상도의 다른 지역보다 짜고 매우며, 같은 고향 사람끼리 만나면 “야, 이 문디야!” 하고 유별나게 인사하는 것 말고도 다른 지역 사람들이 알기 어려운 특징이 몇 있다.
하동엔 선산(先山)이 있어 벌초하러 갈 때면 사촌형님 댁에 들른다. 한 번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중에 종수(사촌형수)가, “우리 마을에도 올해 대학생이 둘 생겼어요.” 하기에 무심코 “무슨 대학인데요?” 했다.
그런데 앞집 애도 ‘고대’, 옆집애도 ‘고대’ 합격했다는 게 아닌가.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시골에서 명문대 다닌다고 하여 믿을 수 없다기보다 이런 깡촌(빈촌)에서 사립대 다니려면 등록금이 엄청날 텐데 어떻게 보낼 수가 있느냐는 생각에서였다. 결국 나중에 ‘고대’가 ‘(진주)교대’를 가리키는 말임을 알면서 웃음으로 마무리되었지만.
또 한 번은 사촌형님이 바로 저 덕천강 건너 산청군에는 예부터 유명한 학자가 많이 나온 지역이라기에 유명한 학자가 누구냐고 물은 적 있다.
“니 모르나? 냉면선상 말이다.”
“냉면선생요?”
“그래 냉면선상 말이다.”
도무지 누군지 짐작이 가지 않아 고개를 흔들자 형님은 답답하다는 듯이
“아 핵교 선상이라면서 냉면선상도 몰라?”
혀를 차기에 그래도 알 수 없어 이것저것 물어보니 '남명 조식' 선생을 가리킴을 알았다. 그분은 시조 “두류산 양단수를 예 듣고 이제 보니 ~~~~”의 작가로 유명하지만, 도산 이황과 더불어 영남학파의 거두인데, 호 ‘남명’이 졸지에 ‘냉면’이 돼 버렸으니 …
뿐만 아니다. 형님 댁에 머물던 중 이웃에서 놀러 온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분이 우리 마을은 절대로 인물이 나올 수 없다고 하기에, 왜 그러냐고 했더니 마을 이름이 ‘망골’이라 ‘망하는 동네’니 잘 될 리 없다는 거였다.
설마 마을 이름을 그리 지었으리라 싶어 찾아보았더니 행정상 이름으로는 ‘심곡리(心谷里)’였다. '심곡'이 예전에는 ‘마음골’이었는데 일제강점기에 한자로 바뀌어 그리 된 것이다. 원래 이름 ‘마음골’을 ‘맘골’로 줄여 발음하였고, ‘맘골’이 그만 ‘망골’로 바뀌었던 것이다. 마음을 편히 해준다는 뜻의 마을 이름 ‘마음골’을 잘못 줄여 읽음으로써 원래의 뜻과 아주 거리가 멀어졌고, 엉뚱한 해석을 하게 되었다.
서부경남 사투리 중엔 정겨운 말도 있으나 간혹 거슬리는 말도 있다. ‘참말이냐?’고 묻는 대신 ‘에나가?’로 말한다. 듣기에 어색한 이 말을 처음 듣는 사람들은 일본어인 줄 아나 서부경남에서 ‘니 말이 에나가?’ 했을 때는 ‘한 점의 거짓 없다고 맹세할 수 있나?’는 확인을 요구하는 강력한 의지가 담겨 있다.
그리고 어릴 때 내 동생은 나더러 ‘엉가’라 했고, 막내누나는 큰누나더러 ‘새이야’ 하고 불렀다. ‘엉가’란 말이 사전에선 어린이들 사이에서 ‘언니’를 가리키는 사투리로 돼 있으나 형제 사이에도 쓰였다.
그리고 ‘새이(야)’란 말은 ‘힘’이 ‘심’으로 구개음화되듯이 ‘형아’에서 변한 말로 알려져 있다. ‘새이’도 형제 사이에서보다는 자매 사이나 시누올케 사이에서 더 많이 사용되었는데 고모는 울엄마더러 늘 “새이야!” 하고 불렀다.
아마도 서부경남 사투리의 절정은 '물고매 사건'이리라. 지금도 나이 든 이라면 기억 속에 담겨 있을 터. 오래전 장학퀴즈 월말 장원 전에서 한 문항만 남겨진 상황에서 문제가 출제되었다. 대략 이런 내용의 질문이었다.
‘일본에서 들어온 농산물인데, 식량사정이 어려웠던 시절 농촌에서 구황식품으로 널리 애용한 작물이 무엇이냐?’는 문제에, 진주 모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재빨리 벨을 눌렀고, 그 문제만 맞히면 역전이 되어 장원을 움켜쥘 수 있는 중요한 기로에 섰다.
사회자는 답을 요구했고 진주고 학생은 ‘고매’라고 답을 했다. 사회자는 ‘고구마’란 답과 비슷한 말에 좀 더 분명한 답을 얻으려고 두 음절이 아닌 세 음절이라고 친절히 힌트를 주자 그 학생은 ‘물고매’라고 답했다. 당연히 틀린 답으로 처리됐고 장원은 다른 학생으로 넘어갔다.
같은 경상도 사투리를 쓰더라도 나는 서부경남 출신인지 아닌지를 확실히 안다. 어투에서 확 드러나니까. 다른 곳보다 ‘촌스럽다’라고 하는 이도 있으나 나에게는 들을 때마다 그저 정겹기만 하다. 객지에서는 까마귀도 고향 까마귀가 반갑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버스 안에서 들려온 아주머니의 서부경남 사투리가 나를 하동으로 이끌어 갔다.
*. 사진은 모두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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