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목젖 올려다오

나이 일흔에 풀어놓는 소소한 이야기(제43편)

* 내 목젖 올려다오 *



나이 들면 체질(또는 식성)이 변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전에는 매운 음식을 곧잘 먹었는데 이제는 못 먹는다든지, 커피를 입에도 대지 않던 사람이 하루에 네댓 잔 마셔야 한다든지, 시큼한 걸 그리도 좋아하던 사람이 이제는 입에도 안 된다든지...

나에게도 당연히 변화가 생겼다. 예전에는 ‘생쌀밥은 먹어도 죽밥은 못 먹는다’라고 하여 된밥만 찾았는데 이제는 진밥도 먹는다. 과자를 입에 대지 않다가 자주 찾는다. 소라형 과자, 상투과자, 맛동산, 꿀꽈배기... 구석구석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가장 큰 변화는 바로 편도선염이다.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한 해에 두어 번 부어서 몹시 고생을 해야 했다. 일단 한 번 부으면 무조건 일주일 지나야 가라앉으니까. 얼마나 심각한지 수업을 할 수 없어 첫 학급에서 수업할 때 녹음했다가 다른 반에선 그대로 틀어줘야 했다.

이렇게 나를 괴롭히던 편도선이 이제 붓지 않는다. 얼마나 다행인가. 특히 요즘 같은 코로나 시국에선 참말로 다행이다. 아시다시피 편도선이 부으면 무조건 열이 난다. 심할 경우엔 40도에 육박하니까. 만약 아직도 부어 열이 난다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몇 번이나 코로나 검사하러 갔을 테니까.


43-1.jpg (부은 목젖)


짬이 나니 묵혀둔 글 정리하기로 했다. 어제 울엄마 관련 글을 모으다 미완성 작품 하나를 보았다. 바로 편도선에 얽힌 일화다. '편도선이 붓는다'를 나 어릴 때는 '목젖이 붓는다'고 했다. 의학적으로는 조금 차이 있다고 하나 나는 지금도 목젖이 붓는다고 쓴다.

(날짜를 보니 2001년도에 쓴 걸로 돼 있다. 그때까지 어머니는 중풍과 치매 상태로 살아계셨다.)


어릴 때 울엄마는 내가 목젖이 부어 고생할 때 어느 집에선가 빌어온 생선가시를 정수리에 올려놓고, 막 앞산 한 귀퉁이 사이로 얼굴을 내민 태양을 향해 손으로 양쪽 귀를 슬며시 잡아당겨 끌어올리게 한 뒤, “내 목젖 올려 다오, 내 목젖 올려 다오.” 하고 두 번 외치게 했다.

조금 나이 들자 이번에는 검은 빛깔의 이상한 가루를 약이라고 하면서 먹였다. 빛깔과 모양이 혐오스러워 피하려 했으나 막무가내셨다. 나중에사 (구렁이알 볶은 가루) 알게 되었지만 나더러 ‘아’ 하고 입을 크게 벌리라 한 뒤 빨대로 힘껏 불어 목젖까지 밀어 넣어주셨다.


결혼한 뒤에도 일 년에 두어 번 목젖은 어김없이 부었고, 그때마다 중국에서 들어온 신통방통한 약이라며 진짜 좁쌀보다 더 작은 환약을, 어떤 땐 목젖의 부기를 가라앉히는데 즉효라며 새콤달콤한 사탕 같은 걸, 또 한 번은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날 것 같은 굼벵이 고아 달인 물을, 이젠 이름도 가물가물한 희귀한(?) 약들을 부산에서 방어진까지 들고 오셔서 강제로 먹이셨다.


43-3.jpg


목젖이 붓는다는 것은 의학적으로 편도선염에 해당한다. 다른 때보다 무리하게 몸을 혹사했을 때 오는 걸로 경험자들은 알고 있다. 그래서 일반적 치료방법도 안정과 충분한 수분 섭취와 부드러운 음식을 먹게 하고 진통제 등을 투여하여 인후(咽喉)의 불쾌감과 통증을 덜어줌이라 한다.

웬만큼 아픈 건 견디려고 하나 목젖이 붓게 되면 열이 나면서 팔다리가 풀리고 아픔이 따라 어쩔 수 없이 병원에 간다. 그런데 거기 가면 의사들은 무조건 쉬라고 한다. 게다가 가능한 목을 쓰지 말라고 한다. 목을 사용하면 할수록 낫기 어렵기에 하는 말이리라. 그러나 직업이 교사이고, 더더욱 국어교사인지라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음을 어찌하랴.


그래서 편도선 수술을 하라고 권하는데, 어떤 이는 하지 않는 게 좋다 하고 어떤 이는 하는 게 낫다 하니 아직(2001년)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진작에 수술해버릴 걸 못하고 있는 것은 불행하게도 잘 아는 이가 편도선 수술의 후유증으로 성대가 이상하게 돼 목소리가 거칠거칠하게 변한 걸 보게 된 뒤 망설이지 않을 수 없다.

43-2.jpg (어머니가 정성 다해 약을 달여주었거만...)


나는 목젖이 부으면 보통 닷새 간다. 첫날은 살짝 맛(?)만 보라는 듯 조금 아프다가, 다음날부터 사흘간 아무것도 하기 싫고 어떤 것도 맛이 없다가, 닷새 째 되는 날 비로소 아픔이 잦아진다. 그래서 목젖이 부어도 금요일쯤 부으면 괜찮은데 월요일이나 화요일 부으면 한 주일 내내 괴로움 속에 보내야 한다.

그런 괴로움이 희한하게도 울엄마의 괴이한 치료법에 의한 임상실험이 계속될 때는 일 년에 두세 번은 반드시 앓았는데, 당신이 병이 나면서 이상하게도 그때부터 편도선 또한 붓지 않았다. 그러다가 재작년에 한 번 붓고 있다가 한 해 쉬다가 오랜만에(?) 다시 부었는데 여태까지의 휴전을 앙갚음이라도 하려는 듯. 일요일부터 나흘이 지난 오늘 (그나마 오늘은 글 쓸 여력은 생겼지만)까지 잠시도 숨 고를 새 없이 엄청난 공세를 퍼붓고 있다.


원래 편도선은 피로하면 붓고, 부으면 몸살을 반드시 동반한다. 그래선지 주변 사람들은 날더러 ‘너무 많은 일을 하느라 무리해서 그렇다’라고 위안의 말을 하는데 어찌 그들이 내 사정을 알 것인가. 조금 여유 있다 싶으면 회식 핑계로 새벽녘까지 술 마시고, 머리 식힌다는 핑계로 낚시 가선 잡히면 잡힌 덕으로 안 잡히면 안 잡힌 이유로 몸을 학대했으니, 몸도 저 주인에게 앙갚음을 하는 것이리라.


43-4.jpg (편도선염에 술이 가장 안 좋음)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비 오는 날 우산 챙기지 않은 사람도,

된바람 부는 날 코트 입지 않은 사람도,

진눈깨비 내리는 날 하히힐 신은 사람도 아니라,

병을 불러들이는 사람이다."


울엄마가 맨 정신일 때 이런 말을 곧잘 하셨다.

"이눔아, 사내는 불알 두 쪽만 갖고댕기지 말고, 배짱과 거짓말도 괘춤에 넣어댕겨야 하는 기여."

아마 지금 살아계시면 이 말을 덧붙이시리라.

"아비야, 마스크도 꼭꼭꼭 챙겨댕기거래이."

오늘 엄마 생각으로 하루를 보내야겠다.


*. 사진은 모두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으며, 오늘 글은 '목우씨의 일기장(2021년 7월 6일, 2001년 4월 3일)'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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