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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가 이야기(제13편)

제13편 : 원왕생가

♤ 향가 이야기 ♤


- 제13편 「원왕생가」 -


오늘은 신라 문무왕 때 광덕(廣德)이 지었다는 10구체 향가인 「원왕생가(願往生歌)」에 대해 얘기하려 합니다. 그럼 배경설화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문무왕 때 불도(佛道)를 닦는 아주 친한 벗이 둘 있었는데 그 이름은 광덕과 엄장이었다. 두 사람은 항상 약속하기를 "누구든지 먼저 극락세계로 가는 사람은 서로에게 꼭 알리기로 하자."고 하였다.
광덕은 분황사 서쪽에 은거하면서 짚신 삼는 일로 업을 삼으며 처자를 거느리며 살고, 엄장은 홀아비로 남악에 암자를 짓고 농사일에 힘쓰면서 지냈다. 그러던 어느 해 광덕이 엄장에게 "나는 벌써 서방으로 가니 그대는 잘 있다가 속히 나를 따라오라."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

이에 엄장은 광덕의 아내와 함께 유해를 거두어 장사를 지낸 뒤, 광덕의 아내에게 동거하기를 청하자 그녀가 허락하였다. 그런데 밤에 엄장이 정을 통하려 하니 광덕의 아내는 정색을 하며 말하기를,
“죽은 남편은 당신과 달리 10년 동안 한 번도 동침하지 않고 오직 수도에만 전념하였다. 헌데 지금 당신은 이런 추한 행동을 하려 하니 정토를 구하기는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했다.

이에 엄장은 부끄러움을 느끼며 물러나와 곧 원효법사의 거처로 찾아가 득도의 길을 묻자 원효는 정관법을 지어서 권유하였다. 그 뒤 엄장은 몸을 깨끗이 하고 크게 뉘우쳐 한마음으로 관(觀)을 닦은 결과 그 또한 서방정토(극락)로 왕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노래가 이어집니다.

“달이 어째서
서방까지 가시겠습니까.
무량수불 전에
보고의 말씀 빠짐없이 사뢰소서.

서원 깊으신 부처님을 우러러 바라보며,
두 손 곧추 모아
원왕생 원왕생
그리는 이 있다 사뢰소서.

아아, 이 몸 남겨 두고
48대원 이루실까”


([삼국유사] '원왕생가' 부분)



첫째 단락에선, 달님이시여 서쪽(서방정토, 극락)으로 가실 때 무량수불(극락에 계신 아미타불)에게 나에 대해 좋은 말씀을 해주십시오. (즉 달이라는 초월적 존재에게 의탁하여 자신의 뜻을 아미타불에게 전해 줘 자신도 극락으로 가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을 표현)


둘째 단락에선, 아미타불을 우러러 보며 두 손 모아 ‘왕생극락’을 빕니다. 이때 외는 ‘원왕생’은 ‘원왕생극락(극락에서 다시 살기를 소원함)’의 준말입니다. (단, 죽고 난 다음에 원왕생을 바람이 아니라 당장에라도 원왕생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 달라는 간절함이 담겨 있음)


셋째 단락을 그대로 해석하면 ‘나를 원왕생시켜 주지 않는다면 아미타불께서도 48대원을 못 이룰 겁니다.’ 하는 협박의 의미로 보입니다. 허나 앞의 문맥과 연결시키면 내가 열심히 도를 닦을 테니 달님이시여 꼭 아미타불에게 전해 달라는 간절함을 표현하려는 의도가 더 강합니다.

*. 아미타불의 48대원 : 아미타불이 전생에 도 닦는 비구(比丘)였을 때, 48가지 이루어야 할 덕목을 세우고 오랫동안 수행을 한 결과 그 원을 성취하여 부처가 돼 극락세계를 다스리게 되었다고 함.

그런데 이 노래의 작가를 두고 논란이 많습니다. 그 까닭은 배경설화 맨 끝에 붙은 다음 한 문장 때문입니다.
'其婦乃芬皇寺之婢盖十九應身之一德嘗有歌云'
‘(광덕의) 부인은 분황사의 계집종인데, 실은 관음보살의 십구응신(十九應身)의 하나였다. 그런데 광덕에게 일찍이 「원왕생가」라는 ‘노래가 있었다.’

여기서 '一德嘗有歌云', 즉 ‘광덕에게 노래가 있었다’는 구절이 문제가 됩니다. 만약 ‘있었다’가 아닌 ‘지었다’로 끝맺었으면 작가는 당연히 광덕인데... 헌데 ‘있었다’로 돼 있으니, ‘광덕에 관한 노래가 있었다.’로 해석하면 작가는 여럿이 될 수 있습니다.
우선 광덕의 처가 떠오르고, 또 두 사람이 아닌 제3자로 당시 무애행을 실천하러 다니던 원효대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원왕생가'의 배경인 분황사 모전탑)



그리고 이 노래의 배경설화를 가만 읽어보면 한 편의 소설 같습니다.


주인공만 두고 보면 짚신을 삼는 광덕, 절에서 허드렛일 하는 계집종인 아내, 농사를 짓는 엄장. 이 세 사람은 아주 평범한 인물들입니다만, 에피소드가 엮어져 극적 요소를 지닌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짚신을 삼는 광덕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면서 극적인 시작됩니다. 광덕은 비록 하찮은 직업을 가졌지만 불교의 도리를 깨치려는 인물입니다. 특히 아내와 십여 년 동안 한 번도 동침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즉 육욕을 이겨낸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게다가 아내는 분황사 계집종의 신분이면서 관음보살의 화신이라고 나옵니다. 이는 관음보살이 천한 몸을 하고 속세에 와 중생을 제도했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엄장이 끼어듭니다. 광덕과 그의 처에 비하면 아주 세속적인 인물입니다. 죽은 지 얼마 안 된 친구의 아내에게 육체적 욕망을 드러내니까요. 그러나 광덕의 처에게 가르침을 받고 개과천선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세 사람 모두 소설적 구성에 적합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 노래에 얽힌 이야기가 당시 신라 사회에 퍼져 있던 불교신앙이 현실지향적인 '기복신앙'을 벗어나 왕생극락을 추구하는 내세지향적인 '미타신앙'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되기도 합니다.


*. 자료 사진은 모두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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