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편 헌화가
♤ 향가 이야기 ♤
- 제11편 「헌화가」 -
우리나라에서 문헌 상(작품 포함) 가장 미인은 누구일까요? 그러면 사람들이 여러 미녀 이름을 댈 겁니다. 춘향이니, 심청이니, 황진이니, 장녹수... 중국이라면 4대 미녀인 양귀비, 서시, 왕소군, 초선이라 하겠지만.
저는 단 한 여인의 이름을 댑니다. ‘수로(水路) 부인’이라고. 왜냐하면 산신령이 반하고 용왕이 반한 여인이 있었던가요? 바로 오늘 다루려고 하는 향가 「헌화가」에 그 수로부인이 나옵니다. 이 여인을 두고 산신령도 용왕도 반했으니까요.
헌화가는 신라 성덕왕 때 한 노인에 의하여 불려진 4구체 향가입니다. 4구체는 모두 네 작품으로 '서동요', '헌화가', '풍요', '도솔가'가 있습니다.
배경설화를 봅니다.
“성덕왕대 순정공(純貞公)이 강릉 태수로 부임해 가다가 어느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그 곁에는 높이 천 길이나 되는 돌산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바다에 닿아 있는데, 그 위에 철쭉꽃이 많이 피어 있었다.
부인 수로가 그 꽃을 보고 좌우 사람들에게 누구 꺾어 바칠 자가 없느냐고 물었더니 모두가 사람의 발길이 닿을 수 없으므로 불가능하다고 대답하였다. 마침 그 곁으로 암소를 끌고 가던 노인이 수로부인의 말을 듣고 그 꽃을 꺾어 바치면서 노래를 지어 바쳤다고 하는데, 그 노인이 누구인지는 모른다.”
노래는 4구체답게 아주 간단합니다.
“붉은 바위 끝에 (피어난 꽃을)
암소 잡은 (나의) 손을 놓게 하여
나를 부끄러워하시지 않으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겠습니다.”
그러니까 붉은 절벽 끝에 꽃이 피어 있는데, 만약 그대 수로 부인께서 (다정한 말로) 암소 잡은 내 손을 놓게 권하신다면, 나는 서슴없이 저 절벽이 아무리 험하더라도 올라가 꽃을 꺾어 바치겠나이다.
어떻습니까? 제 풀이에 따르면 평범한 노래가 아니라 여인에게 바치는 구애의 노래 아닙니까? 남들이 오를 수 없는 높은 절벽에 목숨 걸고 올라가도록 만든 수로 부인의 정체가 몹시 궁금합니다. 왜냐하면 배경설화의 뒤에 이런 얘기도 실렸으니까요.
"다시 이틀 동안 길을 가다가 바닷가 정자에서 점심을 먹는데 갑자기 용이 나타나 부인을 끌고 바다로 들어갔다. 아내를 잃은 순정공이 발을 동동 구르며 땅을 치며 어쩔 줄 몰라 하는데 마침 지나가던 늙은이가,
"그렇게 뒹굴고만 있지 말고 마을 사람들을 동원하여 노래를 부르시오. 그러면 아내를 찾을 수 있을 것이오."라고 일러 주었다.
이때 부른 노래가
“거북아 거북아 수로(水路)를 내놓아라
남의 아내를 빼앗아 간 죄 얼마나 큰가
네가 만일 말을 듣지 않고 내놓지 않으면
그물로 잡아서 구워 먹으리라”
속칭 '해가사(海歌詞)'입니다.
이밖에도 수로 부인은 자태 용모가 빼어나게 아름다워 깊은 산, 큰 못을 지날 때마다 여러 번 신물(神物)에게 붙잡혀 갔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 수로 부인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당연히 한 개인의 부인으로 여기지는 않겠지요.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녀를 무당으로 보고 있습니다. 즉 수로 부인이 바다용에게 납치되었다가 나왔을 때 옷에서 나는 이상한 향기로 하여 무적(巫的) 병을 앓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수로 부인을 무병이 일어 접신하는 무당으로 간주하였습니다. 게다가 현대 무녀들이 신선이 벼랑에 있는 꽃을 꺾어 주는 꿈을 꾸면 신기(神氣)가 더 오른다는 속설이 있답니다.
다음으로 노인은 누구일까요?
첫째, 스님이라는 설입니다. 소를 끌고 가는 노인은 다년간 잃었던 자기의 심우(心牛 : 마음의 소)를 붙들어 자기법열(自己法悅)을 즐기면서 그립던 본향(本鄕)으로 돌아가는 운수(雲水)의 행객이요 ‘선승(禪僧)’이라 했습니다.
둘째, 신선이라는 설입니다. 노옹이 끌고 가는 암소를 도교에서 '곡신(谷神)은 죽지 않으니 이를 일러 현빈(玄牝)이라 한다.'라고 하면서 ‘검은 암소’로 보아 예사 늙은이가 아니고 ‘신선’이 분명하다고 하였습니다.
셋째, 생명을 무릅쓰고 절벽을 기어올라 꽃을 바쳤다는 측면에서 화랑도의 기백을 지닌 은퇴한 늙은 화랑이라는 설,
그러다 보니 노래의 성격도 다양하게 추리하고 있습니다.
첫째, 불교에서 ‘심우(尋牛)’라는 말이 있는데 승려가 도(本性)를 찾아감을 목동이 소를 찾아 나섬에 비유하고 있다. 즉 소의 자취를 보게 되는 견적(見跡), 소를 보게 되는 견우(見牛), 소를 얻게 되었다는 득우(得牛)의 경지에서 ‘견적(見跡)’의 상태에 있음을 드러내는 노래다.
둘째, 무속(巫俗)과 관련됨으로 보아 수로부인이 접신(接神)의 과정을 겪어가는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 즉 굿을 하면서 부르는 무가(巫歌)의 하나다. 지금도 무당이 치성을 드리는 공간은 낭떠러지 아니며 바닷가를 택하며, 이때 꽃을 바침은 꽃이 주술적 상관물이기 때문이다.
셋째, 남성 화자가 여인에게 꽃을 꺾어 바치는 구애의 언어 형태로 따라서 이 노래는 신화적 인물이 인간(여성)에게 바치는 구애의 노래이다.
<뒷이야기 하나>
이 「헌화가」 배경설화의 위치를 놓고 강원도 영동지방에 자리한 두 도시가 은근히 신경전 벌이고 있는데 바로 강릉시와 삼척시입니다. 시작은 강릉시가 과거 7번국도 ‘안인 - 정동진 - 옥계’ 쪽의 구간의 도로명을 "헌화로"로 붙여 관광객 유치를 꾀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삼척시에서는 "동해안에 해안절벽이 강릉에만 있냐?" 하면서, "강릉에 가는 길목 중간이었으니 아마 그 자리는 삼척이었을 것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삼척시 임원항 부근에 아예 “수로부인 헌화공원”을 조성해 놓았는데, 저도 한 번 갔다 왔습니다. 볼 만합니다.
관광 때문에 지자체끼리 싸우는 경우가 한둘 아닙니다만 좀 볼썽사나운 모습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 첫짜 사진은 문화컨텐츠닷컴에서, 둘째는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