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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가 이야기(제12편)

제12편 : 안민가

♤ 향가 이야기 ♤


- 제12편 「안민가」 -


[삼국유사] 소재 향가 14수 가운데 한 작가가 두 작품을 지은 경우가 두 번 있습니다. 월명사는 '제망매가'와 '도솔가'를 지었고, 충담사는 '찬기파랑가'와 '안민가'를 지었습니다.
오늘은 신라 경덕왕 때 충담사가 지은 10구체 향가 「안민가」를 소개하려 합니다.

먼저 배경설화를 보겠습니다.

“경덕왕이 신하들에게 영복승(榮服僧 : 영험한 도를 얻은 스님)을 데려오라고 하자 신하들은 영복승을 화려하게 옷을 입고 외모가 그럴 듯한 승려인 줄 알고 그런 사람을 데려왔는데, 왕은 자기가 바라는 영승(榮僧)이 아니라고 돌려보냈다.
그러는 중에 누더기옷을 입고 앵통(櫻筒 : 등에 지도록 물건 담은 통)을 진 다른 승려가 남쪽으로부터 걸어오자, 왕이 그 승려를 기뻐하며 맞이하며 이름을 물으니 충담이라고 하였다.


왕이 그대의 「찬기파랑가」가 뜻이 매우 높다는 소문을 들은 바 있는데 사실이냐고 묻자, 충담이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이어서 왕이 백성을 다스려 편안하게 할 노래 [理安民歌]를 지어달라고 충담에게 요청하니, 충담은 ‘이안민가’를 짓지 않고 「안민가」를 지어 바쳤다. 왕이 이를 아름답게 여겨 그를 왕사로 봉하였으나 사양하였다.”

이 배경설화에서 원래 왕이 바라는 노래는 백성을 다스려 편안하게 하고자 (理安民)한 의도가 담겼다면, 충담은 백성을 편하게(安民) 하는 노래로 바꾸었습니다. 그 차이점은 왕은 백성 다스림에 목적을 둔데 반하여 충담사는 백성의 편안함에 두었다는 점입니다.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 중인 삼화령삼존불상)



노래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임금은 아버지요,
신하는 사랑하실 어머니요,
백성은 어린아이로다! 하신다면
백성이 사랑을 알 것입니다,

꾸물거리며 사는 중생이
이를 먹어 다스려져
'이 땅을 버리고 어디 가시렵니까?' 한다면
나라 안이 유지될 줄 알 것입니다.

아,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한다면
나라 안이 태평할 것입니다.”

'안민가'는 향가 가운데 드물게 유교사상을 담은 노래입니다. 충담사라는 승려가 지은 작품이기에 더욱 특이합니다. 읽어보셔서 아시겠지만 주제가 국태민안(國泰民安)이라는 말로 함축됩니다. 그러기 위해선 임금과 신하와 백성이 한뜻으로 나가야 함을 내세웁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논어에 공자가 정치의 덕목을 말하면서 “君君臣臣父父子子”라 했습니다. 풀이하면,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하면 나라가 태평스러워 진다는 뜻입니다.

그럼 승려가 유교적 노래를 지음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 노래 창작 당시 신라가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각종 지진과 가뭄 등의 천재지변에다 외척이 득세하여 왕권이 위협받는 등 정치적으로도 위태로워서 나라의 안정이 꼭 필요한 시기였습니다.
승려도 부처의 제자이기 이전에 신라 백성의 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불교적 내용보다는 君과 臣과 民의 의무를 강조한 노래를 지었으리라 여깁니다. 그러다 보니 '안민가'는 예술성보다 교훈성을 담은 노래가 되었습니다. (단, 이 노래도 불교적으로 또는 주술적으로 보는 학자도 있습니다만 그 내용은 생략합니다.)

그리고 제5구에 해당하는 “꾸물거리며 사는 중생이”가 잘 이해 안 되실 겁니다. 가장 논란이 많은 구절이기도 합니다. 다른 분들은 ‘대중을 먹여 살리기에 익숙해져 있기에’라고 해석합니다. 이 둘만 봐도 전혀 다른 의미가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아직 어느 한쪽도 정설로 굳어지지 않았습니다.


(경주 남산 삼화령에 있는 연화좌대)


이 작품을 끝내면서 향가의 작가에 대하여 잠시 언급합니다. 앞에서 두어 번 작가 대부분이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작가 이름을 그가 한 행위와 연결시켜 의도적으로 만든 듯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즉 향가 작가들의 이름을 살펴보면,

<도천수관음가>의 희명(希明) - 5세 아이의 득명(得明 : 눈뜸)을 희원(希願 : 바람)한 사람.


<안민가>의 충담(忠談) - 신하로서 왕에게 충성(忠誠)스런 말(談)을 한 사람


<혜성가>의 융천(融天) - 혜성의 요괴를 없애고 천체(天體)의 운행을 융화(融和) 조절한 사람


<서동요>의 서동(薯童) - 마(署)를 캐어 팔아 생업을 유지한 아이(童)


<우적가>의 영재(永才) - 산도둑 무리를 만나 뛰어난(永) 설법과 재치(才致)로 회개시킨 사람


<원가>의 신충(信忠) - 신하로서 왕과 맺은 신의(信義)를 지키고, 충성(忠誠)을 보인 사람


<원왕생가>의 광덕(廣德 또는 그의 처) - 친구 엄장에게까지 넓은(廣) 덕(德)을 베푼 사람


<도솔가> <제망매가>의 월명(月明) - 피리를 잘 불어 달(月)까지도 멈추게 해 세상을 훤하게(明) 만든 사람


<처용가>의 처용(處容) - 얼굴(容)이 나타나는 곳(處)에서는 역귀가 나타나지 못하게 만든 사람

*. 사진은 모두 [금강신문] (2011년 10월 7일)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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