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향가 이야기(제10편)

제10편 : 혜성가

♤ 향가 이야기 ♤



- 제10편 "혜성가" -


1705년 영국의 에드먼드 핼리가 ‘핼리 혜성’의 주기를 계산하여 다음 출현을 예견함으로써 혜성이 태양계의 천체임을 증명했습니다. 사실 그 전에는 혜성을 ‘홍수, 기근, 전염병 등을 불러일으키는 불길한 징조’로 여겼습니다. 당연히 신라인들도 혜성을 두려워 했겠지요.
오늘은 「혜성가(彗星歌)」를 소개합니다. 현재 10구체 향가 가운데 최초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참고로 보통 최초의 향가라 하는 「서동요」는 4구체 향가입니다. 그러니까 10구체만 두고 보았을 때 「혜성가」가 최초라는 뜻)




먼저 배경설화를 봅니다.
“진평왕 때 거열랑, 실처랑, 보동랑 등 세 화랑 무리가 풍악산(금강산)에 놀이를 가려 했다. 그런데 혜성이 나타나 심대성(신라 수도 ‘경주’를 상징)을 범하는 일이 생기자 낭도들은 이를 불길한 징조라 하여 풍악행을 중지하려 하였다.
이때 융천사가 노래를 지어 부르자 혜성의 변괴가 없어지고 때마침 일본의 군대도 되돌아가 도리어 복이 되었다. 왕은 전화위복이 되었다고 기뻐하여 화랑들에게 풍악에 보내어 유람하게 하였다. 융천사가 부른 노래는 아래와 같다.”

이어지는 향가 혜성가는 다음과 같습니다. (현대식 풀이는 학자들마다 조금씩 달라 이해하기 쉽게 임의로 풀이함에 양해를 구합니다.)

“예전 동해 바닷가
건달바가 놀던 성을 바라보고
‘왜병이 왔다’
봉홧불 피운 변방이 있었네

세 분 화랑께서 산행(山行) 오신단 말을 듣고
달도 부지런히 불을 밝히는데
길 쓸 별을 바라보고
‘혜성이여’ (하고) 사뢴 사람이 있구나

아아, 달 아래 떠 있더라
이보게들 무슨 혜성이 있단 겐가”


(당시 혜성을 본 곳으로 추정되는 첨성대)



노래와 배경설화가 바로 연결되지 않아 노래의 뜻이 조금 어렵게 느껴질 겁니다. 다행히 모든 학자들이 혜성의 출현을 불길함이 아닌 상서로움으로 해석해 다른 향가에 비해 해석의 논란이 적은 편입니다.
이 노래를 이해함에 먼저 ‘건달바’를 알아야 합니다. 원래 건달바(乾達婆 : 한자 발음은 '건달파'이나 '건달바'로 읽음)는 불교에서 '음악을 맡은 귀신'을 말합니다. 그 뒤로 노래 부르거나 춤을 추거나 하는 사람들을 건달파라고 했는데 현재 우리가 쓰는 '건달'도 이 말에서 유래했답니다.

그럼 ‘건달바가 놀던 성’은 어디를 말할까요? 현재 ‘금강산(당시 풍악산)'을 비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합니다. 그럼 변방을 지키던 군사들이 왜 ‘왜병이 왔다’ 하며 놀랐을까요? 금강산 쪽은 왜병의 침입할 곳이 아닌데...
이에 대한 해석으로 이곳에 신기루 현상이 일어나 사람들로 하여금 착각하게 만들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불교 문헌에서 '건달바성(乾達婆城)'은 음악을 담당한 귀신들이 사는 성이란 뜻 말고도 ‘신기루’를 가리킨다는 뜻도 있으니까요.
신기루는 바다 위에 빛이 굴절하기 때문에 엉뚱한 곳에 물상(物像)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입니다. 그러니까 어느 바닷가든(특히 경주 가까운 바닷가) 그곳에 왜병이 나타났는데 신기루 현상 때문에 금강산 가까운 곳(변방)을 지키던 군사들이 왜병이 쳐들어온 것 같아서 봉화를 올립니다. (기록에 따르면 금강산 가까운 바닷가에 신기루 현상이 가끔 나타났다고 함)

둘째 단락에 가면 혜성이 나옵니다. 왜병이 나타났다는 봉화가 올라오고 마침 혜성까지 나타나자 산행(山行) 놀이 가려는 세 명의 화랑도들이 취소하려 합니다. 헌데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혜성은 나쁜 별이 아니라 사람들의 길을 쓸어 줄 빗자루 같은 존재로 앞길을 살짝 밝혀주는 별입니다. 더욱 달이 훤히 떠 앞길을 밝혀 주려 중천에 떠 있는데 혜성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셋째 단락에 가면 혜성이 달 아래 있는 존재(덜 밝은 존재)인데 달이 있는 한 혜성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니 무슨 변고가 있겠습니까? 하고 되묻습니다. 결국 혜성은 요성(妖星 : 요사스러운 별)이 아니라 익성(益星 : 이익을 주는 별)으로 화랑도들이 가는 길에 ‘길을 쓸어주는 별’ 역할을 했습니다.


융천사가 이 노래를 부르자 혜성이 사라지고, 또한 쳐들어왔던 왜병도 자기 나라로 돌아갔답니다. 이렇게 보니 '혜성가'가 축사(逐邪 : 요사스러운 기운이나 귀신을 물리쳐 내쫓음)를 위한 주술적 노래임을 아시겠지요. 혜성이라는 요사스러운 별을 내쫓기 위한 노래이니까요.

다만 일반 축사와 다른 점은 의도적으로 요성(요사스러운 별)을 익성(도움을 주는 별)으로 바꿈에 있습니다. 즉 나쁜 '혜성'을 '길 쓸 별'이라고 좋게 말함은 일종의 ‘언어적 주술’입니다. 나쁜 말에다 주술을 걸어 좋은 뜻으로 바꿉니다. 머리 나쁜 애를 보고 “야, 이 바보야!” 하면 더욱 바보가 되지만, “너 어쩜 그리도 똑똑하니?” 하며 자꾸 좋은 점을 말하면 사람이 변합니다. 이런 걸 언어적 주술이라 합니다.




이 노래를 지은 융천사 이름에 ‘천사(天師)’가 들어가 있음으로 보아 하늘의 일을 관장하는 천문관이자 '주술사'였다고 봅니다. 또한 승려이기도 하고. 승려와 주술사,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느냐고 물으면 불교가 토속종교인 무속과 융합함을 보여주는 자료라고 합니다.
이 노래를 이렇게 ‘축사의 노래’ 아닌 전적으로 불교노래로 해석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없는 걱정을 만들어 냅니다. 즉 저도 모르게 미망(迷妄)의 세계로 빠져듭니다. 그럴 때 내가 깨끗하다고 여기면 거침이 없다는 ‘청정무애(淸淨無碍)의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또 이 노래를 역사적으로 밝히려 한 학자도 있습니다. 즉 ‘변방의 숲에서 군사들이 왜병이 왔다고 봉화를 올린다.’는 구절에서. 진평왕 당시에 왜병이 쳐들어왔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노래가 진평왕 때의 노래가 아니라는 설을 제기했습니다. ([일본서기]에 진평왕 때 왜병이 신라를 침범한 얘기가 나오나 그 책에 적힌 내용은 우리나라와 관련된 역사 이야기는 믿을 게 못 된다고 합니다.)

*. 사진은 모두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keyword
이전 09화향가 이야기(제9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