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두줄시'(제5편)
* 짝사랑 *
불빛만 보면 한사코 달려드는 하루살이들,
도도히 외면하는 가로등 아래 시체만 쌓여간다
<함께 나누기>
우리 집 바로 아래 가로등이 있고, 요즘 가로등 주변으로 하루살이와 나방들이 얼마나 날아드는지... 다음날 아침 나가보면 땅바닥에 깔려있는 무수한 하루살이 시체들. 볼 때마다 징그러움 넘어서 처연함마저 느낍니다.
문득 하루살이가 가로등 불빛을 찾아드는 까닭을 생물학자가 볼 때는 달리 말하겠지만, 그 불빛을 좋아해서 즉 짝사랑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 가로등은 그렇게 달려드는 하루살이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요? ‘저 미친놈들이...’ 하며 자꾸만 피하고 싶은데 피할 수도 없으니.
짝사랑을 국어사전에서 찾으면 ‘한쪽만이 상대를 사랑하는 일’로 나옵니다. 이때 한쪽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상대가 모르고 혼자만 사랑한다는 전제가 깔려야 짝사랑이 됩니다.
그런데 혹 짝사랑이란 낱말에 의문이 가지 않습니까? ‘짝 + 사랑’ 즉 짝이 있는 사랑인데 왜 짝이 없는 ‘홑사랑’이란 뜻을 담았을까요? 원래 짝사랑은 외짝사랑에서 왔다고 합니다. 평안도 출신 이광수의 소설 [유정]에 ‘외짝사랑’이 나오는데, 북쪽 말이 발음하기 불편해서 앞의 ‘외’가 탈락하여 짝사랑이 되었다는 설이 꽤나 신빙성 있어 보입니다.
짝사랑이라 하면 왠지 모르게 이루어질 수 없는 애달픈 사랑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지 않습니까? 특히 짝사랑이 심해져 상사병으로 이어진 여러 옛이야기들. 그래서 낭만을 떠올릴 겁니다. 헌데 옛날과 지금의 짝사랑은 차이가 너무 큽니다.
최근에 본 뉴스만 해도 짝사랑하던 아가씨에게 연인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해치려 했다거나, 짝사랑한 여인을 찾아가 만나 달라했다가 거절당했다고 그녀의 집을 찾아가 행패 부렸다거나. 여인의 뒤를 쫓아다니다시피 사진 찍어 보관해 둔다든지 몰래 그녀 집에 들어가 옷가지 등을 훔쳐간다든지 등.
이런 경우를 짝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요? 순수한 사랑이 없는 대신 상대를 괴롭히거나 위험에 빠지게 만드는데 말입니다.
그에 비해 우리 선조들의 짝사랑은 여러 문헌에 나옵니다만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담겼습니다.
가장 오래된 신라 「지귀설화(志鬼說話)」를 한 번 볼까요? ‘지귀’라는 사내가 우연히 지나치는 선덕여왕의 행차를 보고 여왕에게 반했습니다. 허나 워낙 지체가 다른 사이. 가까이 다가가 말 한 번 붙여볼 수도 없어 여왕을 사모한 나머지 시름에 젖어 몰골이 점점 초췌해져 갔습니다.
그 말이 여러 입을 통해 여왕의 귀에 들어가자 조용히 한 신하를 불러 지귀에게 알릴 글을 써 보냈습니다.
“짐이 내일 영묘사에 가서 분향을 할 것이니 그대는 그 절에서 짐을 기다려라.”라고.
지귀는 다음날 영묘사 탑 아래에서 여왕의 행차를 기다리다가 계속된 노동에 저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졌고, 여왕은 절에 이르러 분향을 마치고 나오다 지귀가 잠든 모습을 보았습니다. 깨울까 말까 하다가 하도 곤히 잠든 모습에 여왕은 팔찌를 빼어 지귀의 가슴에 두고 궁으로 돌아갔습니다.
이후 잠에서 깬 지귀는 가슴에 놓인 여왕의 팔찌를 보고 잠든 자신을 크게 후회하며 번민하던 중 마음속에서 불이 일자 자신의 몸을 불태웠답니다.
우리는 ‘사랑을 불태우다’는 표현을 종종 봅니다. 열정적인 사랑에 들어맞는 표현이지만 사랑 자체가 불태움이요, 짝사랑은 특히 더 그렇습니다. 밤마다 하루살이가 가로등 불빛을 보고 죽을 줄 모르고 달려드는 건 어차피 하루밖에 살지 못할 삶이라, 사랑하는 가로등에 자신을 불태우려 하는 마음이 들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짝사랑이 힘든 가장 큰 이유는 나는 가슴이 찢어지도록 힘든데 그 상대는 그 사실조차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혼자 앓다 끝나는 경우도 대부분이며, 그게 상사병으로 악화되면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있답니다.
이제는 사랑도 외짝사랑도 다 안드로메다 성운에서나 이룰 수 있는 나이가 되었는지라, 오늘밤에도 불빛 찾아 날아드는 하루살이가 부럽게 느껴집니다.
첫째, 가로등 향해 달려드는 하루살이
둘째, 우리 텃밭 가에 핀 상사화
셋째, KBS뉴스(2022.09.21)에서
넷째, [고전, 사랑을 그리다]란 책에서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