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와 '안미안'

목우씨의 '두줄시'(제6편)

* '돼'와 '안미안' *



안돼 안돼 안돼 안돼 돼 돼 돼 돼

미안 미안 미안미 안미안 미 안미안




<함께 나누기>



제가 근무하던 학교를 오가던 길에 대기업이 있었는데, 그 회사 정문에 ‘하면 된다’라는 글자가 크게 새겨진 구조물이 달렸습니다. 그 회사뿐 아니라 온 나라가 ‘하면 된다’라는 정신 무장을 강조하던 때도 있었지요.

이 말 자체는 상당히 긍정적인 면을 담았습니다. 하다가 지쳐 포기하려 할 때 용기를 북돋워주는 말로. 그럴 때는 아주 효과적입니다. 포기보다는 도전을 강조하는 힘에 이끌려 다시 덤벼들어 성취할 경우도 있으니까요.


헌데 ‘하면 된다’에서 ‘안 되는 걸 되게 만들어라’로 진화(?)하면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습니다. 억지와 강압이 끼어들어 더 이상 도저히 힘(시간ㆍ능력)을 낼 수 없는데도 마구 밀어붙일 때 쓰는 말로 탈바꿈했습니다.

시에서처럼 ‘안 돼’ ‘안 돼’ ‘안 돼’란 말을 반복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안’이 빠지면서 ‘돼’만 남게 됩니다. ‘안 돼’가 ‘돼’로 바뀐 상황인데, 여기서도 ‘돼’는 긍정과 부정이란 양날의 검을 지녀 때론 용기를 북돋워주거나 폭력적인 말이 됩니다.


세상에는 되는 일과 안 되는 일이 분명 따로 있음에도 일 시키는 자는 지시ㆍ명령이 주는 쾌감에 도취돼 마구 밀어붙입니다. 요즘 뉴스에 오르내리는 사건 가운데 ‘안 되는 걸 되게 만들어라’와 같은 유형의 일들 참 많지 않습니까?

먹고살기 급급해 불도저로 마구 밀어붙여야만 했던 시기에선 ‘하면 된다’가 미덕이었을지 몰라도, 이젠 ‘되면 한다’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미안도 그렇습니다. ‘미안’ ‘미안’ ‘미안’ 하고 거듭 읽다가 잠시 쉬어 읽는 짬을 놓치게 되면 ‘미안’이 ‘안미안’이 됩니다. ‘미안’이 ‘안미안’이 되는 순간 우리네 보편적이며 상식적인 삶이 무너지게 됩니다.

정말 상대에게 미안한 짓 했음에도 시치미 뚝 뗀 체 ‘안미안’한 척 하는 경우를 자주 보지 않습니까. 잘못을 저지르면 사과함이 상식이요 예의임에도 그걸 무너뜨리는 경우가 요즘 들어 더욱 늘어났습니다.


‘내로남불’, 아직 국어사전에는 등재되지 않았지만 나무위키나 오픈사전에서는 이미 쓰여 그 뜻과 용례까지 소개되었습니다. 짐작컨대 새로 국어사전 편찬한다면 꼭 들어가리라 예측합니다. 왜냐면 너무 우리 귀에 익숙한 말이 되었기 때문이지요.

성경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남의 눈에 있는 티끌은 보면서 네 눈의 대들보는 보지 못하느냐’ 남의 작은 잘못은 잘 지적하면서 나의 큰 잘못을 모르는 사람을 두고 한 말씀인데, 가끔 내로남불과 같은 경우에 쓰이기도 합니다.




예전에 이런 말을 하고 지내다가 자리(신분)가 바뀌면 전혀 다른 말을 합니다. 만약 그럴 경우라면 최소한 “미안합니다”가 먼저 나와야겠지요. 이어서 “전에 제가 한 말과 행동이 지금 생각하니 잘못돼 사과드립니다.” 라는 말을 꼭 붙여야 할 터.

미안 미안 미안이 '안미안'으로 바뀌는 현실이 참 안타깝습니다. 아니 저 자신도 그런 짓 하지 않았나 반성해 봅니다. 다만 한 가지는 저에게 약속합니다. ‘하면 된다’란 말을 쓰지 않을 것이며, 미안이 ‘안미안’이 되는 경우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 둘째 자료는 Jtbc(2010.06.17) [손석희의 앵커 브리핑]에서, 넷째 자료는 [강원도민일보](2017.06.27)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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