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데서, 높은 데서

목우씨의 '두줄시'(제7편)

* 밝은 데서, 높은 데서 *


밝은 데서는 어둠이 보이지 않고,
하늘에선 안 보이더니 땅에 내려서자 보이는 너, 꽃


<함께 나누기>

한여름 관광지로 동굴만 한 곳이 있을까요? 거기 들어가면 시원하다 못해 추위까지 느끼니까요. 해서 여름이 되면 꼭 동굴 한 군데쯤 방문하는데 올해는 놓쳤군요. 환선굴, 만장굴 고씨굴도 좋지만 인원 제한이 있는 삼척 대금굴을 가보려 했는데...
밖에서 동굴 안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 불이 환히 켜져 있지 않는 한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거꾸로 동굴에 나올 즈음이면 빛이 들어오면서 어렴풋이 보이다 입구에 이르면 환히 보입니다. 아주 단순한 이치인데 우린 가끔 잊어버립니다.

(동굴 밖에서 안을 보면 '캄캄' 세상)


그러니까 밝은 데선 어둠이 보이지 않으나 어둠 속에선 밝음이 보입니다. 이를 두고 정진규 시인은 [별]이란 시에서 이리 노래했습니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별들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에게만
별들이 보인다"

내가 지금 어둠 속에 사는지 밝음 속에 사는지 알아보는 실험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길 가다 노숙자들이 보이는지, 보일 때 지갑을 여는지. 이웃에 독거노인이 사는지, 산다면 마주칠 적마다 따뜻한 인사 한 마디 건네는지.
늘 밝은 대낮에만 살아온 사람은 어둠의 실체를 모르고 삽니다.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에도 사람 산다는 사실 잊고 사는 사람들... 그와 반대로 밝은 데 살아도 이런 모습이 제대로 보인다면 그가 꿈꾸는 지향점은 두루두루 함께 어깨 두르며 사는 세상이겠지요.


(동굴 안에서 밖을 보면 빛을 보임)


가끔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갑니다. 높은 하늘을 날 때는 아래를 봐도 막막하다가 육지에 가까워지면 논밭이 보이고 집이 보이고, 더 내려오면 차도 보이고, 사람도 보이다가 땅에 발을 디디면 고 작은 민들레꽃도 보입니다. 아니 눈을 들이대면 민들레 홀씨도 보이고.
늘 높은 데 사시는 분은 높은 하늘을 나는 기분에 취해 살겠지요, 그러면 꽃도 사람도 보이지 않을 터.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어쩌다 보이면 손 내밀기보다 뿌리칠 일만 생각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니.


(눈을 아래로 줘야 민들레꽃이 보임)


가훈으로 거실 한가운데 흔히 달린 '낮은 데로 임하소서', 참 의미 깊고 깔쌈한 말입니다. 살면서 허리를 펴고 고개를 꼿꼿이 들어야 할 때가 분명 있습니다. 다만 허구헌 날 목에 깁스한 것처럼 고개 쳐들고 다니면 곤란하겠죠.
어둠을 보려면 어둠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처음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겠지만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형체 잡힌 뭔가가 보이게 됩니다. 하늘에 높이 떠있는 한 민들레꽃을 볼 수 없습니다. 땅에 내려와 눈길을 아래로 줄 때 비로소 꽃이 보입니다.

오늘 글은 글벗님들에게 보내긴 하지만 제대로 된 대낮의 쾌감을 모르면서 대낮에 사는 양 폼 잡는 겉멋만 잔뜩 든 저에게 쓰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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