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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83)

제183편 : 윤석산 시인의 '입적'

@. 오늘은 윤석산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입적(入寂)

윤석산


"이만 내려놓겠네."


해인사 경내 어느 숲 속

큰 소나무 하나

이승으로 뻗은 가지 "뚝" 하고 부러지는 소리


지상으론 지천인 단풍

문득

누더기 한 벌뿐인 세상을 벗어 놓는다

- [적.寂](2018년)


*. 입적 : 불교에서 스님이 돌아가심을 가리킴. ‘열반’도 같은 뜻.


#. 윤석산 시인(1947년생) : 서울 출신으로 1967년 [조선일보](동시)와 1974년 [경향신문](시)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천도교 서울교구장을 역임하였고, 한양대 국문과 교수로 봉직하다가 정년퇴직 후 명예교수로 계심

그리고 제주대 교수로 근무한 뒤 퇴직한 윤석산 시인(1946년생)과는 동명이인인데, 같은 시인인 데다 나이도 비슷해 혼동하기 아주 쉬움




<함께 나누기>


마음씀을 머리에 두느냐, 복부 아래에 두느냐에 따라 상심(上心)과 하심(下心)으로 나눔을 아십니까? 일반적으로 상과 하로 나눌 때는 ‘상’이 좋고 ‘하’는 나쁘다는 등식이 보통인데 상심과 하심은 이와 정반대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씀을 머릿속에서만 굴리면(다른 말로 '잔머리 굴리면') 상심이요,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려는 자세면 하심이 됩니다. 한 사람에게도 상심과 하심의 변화가 일어나는데, 일시적으로 흥분할 때는 ‘상심’이다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면 무게중심이 아래로 내려가 ‘하심’이 됩니다.


불교에서는 하심의 상태로 두는 일, 즉 ‘방하심(放下心)’이라 하여 '마음 내려놓는 자세'를 굉장히 중시합니다. 탐욕도 성냄도 시기ㆍ질투 등 온갖 번뇌를 모두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는 편한 자세니 모든 수행자가 꿈꾸는 경지가 되겠지요.

그러고 보면 모든 번뇌 다 내려놓고 이승을 떠나게 되는 순간이야말로 방하심의 최종 단계가 아닐까 합니다. 오늘 시에서는 스님이 먼 길 떠나는, 즉 입적이 아니라 오랫동안 해인사 한 자리를 지키고 섰던 소나무 한 가지가 뚝 부러져 떠남을 노래합니다.


"이만 내려놓겠네."


늘 '마음 내려놓는다' '마음 비운다' 하며 말로 글로 표현하면서 실제로는 더욱 꼭 붙잡고 있는 우리 아닙니까? 이승에 소풍 왔다가 하늘로 돌아갈 때 아주 담담하게 ‘이제 내려놓고 가게 돼서 정말 홀가분하다’고 말할 수 있을는지.


“큰 소나무 하나 / 이승으로 뻗은 가지 "뚝" 하고 부러지는 소리”


꼭 도 닦는 수행자가 아니더라도 죽음이란 ‘이승으로 뻗은 가지 하나가 부러짐’과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죽는 자가 내는 소리는 딱 한 음절만 필요합니다. “뚝!” 그럼에도 대부분의 중생은 남겨두고 떠남이 아쉬운지 마구 소리를 질러대지요.


“지상으론 지천인 단풍 / 문득 / 누더기 한 벌뿐인 세상을 벗어 놓는다”


이 장면에서 혹 평생 한 벌로 버틴 '누더기 승복(僧服)'의 대명사인 성철 스님을 떠올릴 글벗님들이 꽤 되실 겁니다. 어쩌면 스님은 이리 생각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굳이 이 누더기조차 남길 필요가 있을까 하고. 주인이 없어지면 누더기도 사라졌으면 하는.

시인의 눈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어떻게 온 산을 물들이는 단풍을 나무들의 누더기로 보았을까요. 하기야 잎이 붙어있으면 나무 역시 번뇌에 싸이게 됩니다. 바람이 불면 떨어져 나가지 않을까, 비가 적게 오면 목마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보면 우리는 너무나 많은 짐을 지고 세상사에 애면글면하며 살아갑니다. 굳이 그 많은 짐이 필요 없음에도. 그래서 시인은 가급적 불필요한 짐들은 내려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편하게 살아가라는 의미로 이 시를 지었지 않았을까...


한 편 더 배달합니다.


- 밥 나이, 잠 나이 -


지금까지 나는 내 몸뚱이나 달래며 살아왔다.

배가 고파 보채면 밥 집어넣고

졸립다고 꾸벅이면 잠이나 퍼 담으며

오 척 오 푼의 단구, 그 놈이 시키는 대로

안 들으면 이내 어떻게 될까보아

차곡차곡 밥 나이 잠 나이만, 그렇게 쌓아 왔다.



*. 첫째 사진은 [강원도민일보](2014. 02.20)에서, 둘째는 연합뉴스(2003.09.16)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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