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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282)

제282편 : 나태주 시인의 '기쁨'

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Mar 05. 2025

@. 오늘은 나태주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기쁨
                     나태주

  난초 화분의 휘어진
  이파리 하나가
  허공에 몸을 기댄다

  ​허공도 따라서 휘어지면서
  난초 이파리를 살그머니
  보듬어 안는다

  ​그들 사이에 사람인 내가 모르는
  잔잔한 기쁨의
  강물이 흐른다
  - [풀잎 속 작은 길](1996년)

  #. 나태주 시인(1945년생) : 충남 서천 출신으로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43년간 충청남도 여러 초등학교에 근무하다 퇴직한 뒤 공주문화원장 (15, 16대)을 역임했으며, 현재 나태주 ‘풀꽃문학관’에서 시를 씀.

브런치 글 이미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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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스개(?)로 엽니다. 제가 신동엽 시인을 아주 좋아하는데 인터넷에 ‘신동엽’을 검색하면 시인 신동엽은 없고, 개그맨 겸 진행자인 신동엽만 뜹니다. ‘나태주’ 하고 검색하면 그나마 가수 나태주보다 시인 나태주가 먼저 뜸을 위안으로 삼아야 할까요?


  “자세히 보아야 / 예쁘다 // 오래 보아야 /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란 「풀꽃」이란 동시가 유명하기 때문에 그렇겠지요. 그래도 아쉬움은 남습니다. 시인 신동엽, 이분이 어떤 시인인데... 「껍데기는 가라」를 통해 껍데기 노릇 하는 인간들은 '다 꺼져라!' 하며 절규했건만.


  시로 들어갑니다. 사실 오늘 시는 아래 해설 없이 읽어야 시의 맛이 살아납니다.


  “난초 화분의 휘어진 / 이파리 하나가 / 허공에 몸을 기댄다”


  난초잎을 가만 들여다보면 여느 식물들의 잎과 다른 부분이 보입니다. 별로 튼튼하지도 않고 길이도 짧지 않건만 잎이 곧게 쭉 뻗습니다. 헌데 사군자 그림을 보면 언제나 난초의 끝부분은 살짝 구부러진 모습입니다.


  다른 까닭 있는지 모르나 아무래도 잎이 꼿꼿이 뻗은 모습보다 살짝 휘어진 그림이 더 멋있어 그런지. 이때 쓰는 말이 ‘낭창낭창’이지요. ‘가늘고 긴 줄이나 잎이 탄력성 있게 흔들리다’는 뜻입니다.


  어느 날 시인의 눈에도 낭창낭창 휘어진 난초잎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파리가 살짝 휘어진 우아한 난초를 보는 순간 문득 이런 마음이 듭니다. 살아오면서 억울하거나 후회스러운 무거운 마음을 난초잎에 실어보기로. 그러자 난초 이파리가 화자의 마음을 아는 듯 한쪽으로 기웁니다.


  “​허공도 따라서 휘어지면서 / 난초 이파리를 살그머니 / 보듬어 안는다”


  참고로 오늘 시는 동시가 아닙니다. 생각의 깊이를 담은 시입니다. 가끔 동시인은 동시만 쓰는 게 아님을 보여주듯이. 난초잎이 허공에 기대자 화자의 무거운 마음을 읽었는지 허공도 따라 휘어집니다. 이러면 허공과 난초는 둘이 아닌 하나가 됩니다.


  우리네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마치 허공에 내던져진 삶처럼 보입니다. 자칫하면 어디로 떠다닐지 모를. 하지만 허공이 받쳐줍니다. 이때 허공은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로운 영혼을 막지 않으면서 떠받쳐주는 그런 존재입니다.


  허공을 굳이 의인화하면 의지할 만한 사람도, 믿을 수 있는 사회도 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내가 마음놓고 기댈 수 있는 그런 존재. 시인은 그런 사람을, 그런 사회를 꿈꾸며 썼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들 사이에 사람인 내가 모르는 / 잔잔한 기쁨의 / 강물이 흐른다”


  난초와 허공이 교감하여 난초는 허공에 몸을 기대고, 허공은 난초를 보듬어 안습니다. 그러면 사람인 나는 국외자 또는 방관자가 됩니다. 자연의 이치든, 우주의 섭리든, 아님 우리 인간의 운명이든, 방관자인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기쁨의 강물이 흐릅니다.


  흙탕물이 강 상류에서 흘러가다가 어느 시점에 이르면 자정(自淨) 작용을 통하여 맑게 변합니다. 우리 사회도 그렇게 됨을 표현하려 함인지. 그래서 시인 박용철은 1938년 발표한 「시적 변용에 대해서」란 글(1938년)에서 시인을 ‘하느님 다음가는 창조자’라 했는지도...


  한 편 더 배달합니다.


     - 사과 -


  둥글다

  붉다

  안아주고 싶다

  우리 엄마.

  - [엄마가 봄이었어요](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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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둘째 사진은 서양란의 하나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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