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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289)

제289편 : 김승희 시인의 '좌파 우파 허파'

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Mar 18. 2025

@. 오늘은 김승희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좌파/ 우파/ 허파
                               김승희

  시곗바늘은 12시부터 6시까지는 우파로 돌다가
  6시부터 12시까지는 좌파로 돈다
  미친 사람 빼고
  시계가 좌파라고, 우파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바빠도 벽에 걸린 시계 한번 보고 나서 말해라

  세수는 두 손바닥으로 우편향 한번 좌편향 한 번
  그렇게
  이루어진다
  그렇게 해야 낯바닥을 온전히 닦을 수 있는 것이다

  시곗바늘도 세수도 구두도 스트레칭도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면서 세상은 돌아간다
  벌써 구두의 한쪽은 좌파이고 또 다른 쪽은 우파이다
  그렇게 좌우는 홀로 가는 게 아니다
  게다가 지구는 돈다

  좌와 우의 사이에는
  청초하고도 서늘한, 다사롭고도 풍성한
  평형수가 흐르는 정원이 있다
  에덴의 동쪽도 에덴의 서쪽도
  다 숨은 샘이 흐르는 인간의 땅
  허파도 그곳에서 살아 숨 쉰다
  - [도미는 도마 위에서](2017년)

  #. 김승희 시인(1952년생) : 광주 출신으로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불의 여인’, ‘언어의 테러리스트’, ‘초현실주의 무당’이란 말을 들으며, [소월시문학상] 수상자이며, 서강대 교수로 재직하다 퇴직. 언어유희를 잘 활용하여 시대와 현실을 풍자하는 시를 잘 쓴다는 평을 받음.


(좌파 우파 말고 대파 쪽파도 있음)(좌파 우파 말고 대파 쪽파도 있음)



  <함께 나누기>

  지금은 쉬지만 어반스케치에 잠시 맛 들인 덕(?)에 그림물감을 샀는데, 모두 48색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색깔이 그리도 많은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어떨까요, 언제부턴가 흰색과 검은색만 있는 사회 즉 흑백논리에 갇혀 살고 있습니다.
  흰색과 검은색 사이에 무려 46 가지 색 더 있음에도 말입니다. 노랑, 빨강, 파랑, 초록, 자주, 분홍, 하늘색은 자취 없이 사라졌습니다. 오늘 시는 그런 우리 사회를 비트는 내용입니다. 특히 저처럼 한쪽만 고집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시이기도 합니다.

  만약 좌든 우든 한쪽만 주장하며 거기에 매달리며 사는 사람들에겐 좀 아픈(?) 시이기도 할 겁니다. 정치적인 내용을 담은 시는 일부러 싣지 않으려 했는데 양쪽을 다 비트는 시라 그냥 올립니다.

  "시곗바늘은 12시부터 6시까지는 우파로 돌다가 / 6시부터 12시까지는 좌파로 돈다"

  시계가 세상에 처음 나온 뒤부터 시곗바늘은 분명 시계 방향이라는 한 방향으로 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12에서 6으로 올 때까지는 오른쪽으로, 6에서 12까진 왼쪽으로 도는 것인 양 생각합니다.
  이를 시인은 좌파 우파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미친 사람 빼고 시계가 좌파라거나 우파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겠지요. 아침에 일어나 스트레칭할 때도 오른쪽만 아니면 왼쪽만 하는 사람 없습니다. 혹 나는 좌파라서 왼쪽만, 나는 우파라서 오른쪽만 한다는 사람은 더더욱 없을 터.

  “세수는 두 손바닥으로 우편향 한번 좌편향 한 번 / 그렇게 / 이루어진다”

  세수도 마찬가집니다. 두 손바닥을 펴서 오른쪽으로 한번 왼쪽으로 한번 골고루 씻어야 낯바닥을 온전히 닦을 수 있습니다. 그걸 두고 좌파니 우파니 가르는 사람 없겠지요. 그러고 보니 세수도, 시곗바늘도, 구두도, 스트레칭도 좌우로 왔다 갔다 하건만...

  “게다가 지구는 돈다”

  당연하게도 오른쪽 구두를 두고 우파 구두, 왼쪽 구두를 두고 좌파 구두라고 할 사람은 없습니다. 혹 좌파라고 해서 왼쪽 구두만 신고 우파라고 해서 오른쪽 구두만 신는 사람 있습니까. 또 구두의 한쪽은 좌파이고 또 다른 쪽은 우파라 할 사람은 더더욱...
  지구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자전하고 있으므로, 지구상에서 보면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걸 보고 좌파니 우파니 하고 주장한 지구과학자가 있었습니까. 그냥 지구는 돌 뿐이건만, 그에 대해선 아무도 딴지 걸지 않건만.

  “좌와 우의 사이에는 / 청초하고도 서늘한, 다사롭고도 풍성한 / 평형수가 흐르는 정원이 있다”

  아득히 넓은 평원 바라보면 왼쪽도 보이고 오른쪽도 보입니다. 그 사이에 강물이 흘러 그 평원을 기름지게 하고 온갖 동물들의 낙원이 생겼습니다. 오른쪽만 보고 낙원이네 왼쪽만 보고 낙원이네 하지 않습니다. 그 평원 지탱하는 물(평형수, 허파)이 흐르기에 낙원이라 합니다.

  “에덴의 동쪽도 에덴의 서쪽도 / 다 숨은 샘이 흐르는 인간의 땅 / 허파도 그곳에서 살아 숨 쉰다”

  흑백논리의 지옥에서 벗어나 그 가운데 흐르는 평형수(허파)를 발견해야 우리는 제대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좌우가 아닌 그 중간의 녹색지대, 즉 평형수가 흐르는 평원이 올바른 시계방향이고 행복 방향이며, 허파가 건강하게 숨 쉴 수 있는 공간입니다.


  불과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가운데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습니다. 허나 이제는 좌파 아니면 우파로 바뀌었습니다. 말로써는 ‘아직 나는 좌도 우도 아니다’라고 주장하지만 그가 보는 방송과 유튜버, 그가 읽는 신문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이제 얼마 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선고가 헌재를 통해 내리겠지요. 어느 쪽이든 그 뒤에 다시 극단적인 대립이 옴은 여실합니다. 수레는 오른쪽 바퀴와 왼쪽 바퀴가 모두 온전해야 제대로 갈 수 있다고 깨친 이들의 말을 잘도 인용하지만 현실에선 적용하기를 꺼려합니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좌와 우가 서로 견제와 보완을 하면서 제대로 굴러가게 해야 한다는 말도 듣습니다. 그런데 어느 사이에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식의 극단적 대립만 남았습니다. 시인 말처럼 좌와 우 사이에 다른 게 존재함을 잊었습니다.

  좌파와 우파 사이에 허파가 있다.
  좌파보다 우파보다 허파가 더 소중하다.
  좌파 우파가 없어도 허파가 잘 돌아가면 살아남는다.
  좌파 우파 대신 허파라는 평형수를 되살려내야 한다.

  시인은 이 말을 전하려 이 시를 씀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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