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 - 자신의 이야기를 1,000자 써오기
나는 늘 나에 대한 이야기를 써왔다고 생각했다. 늘 자유로운 것을 추구한다고, 형식이나 주제에 얽매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돌연 간 마주한 ‘나의 이야기를 마음껏 써보세요’라는 과제를 마주하고 있자니 마치 처음 서핑보드를 쥐고서 쏟아져 내릴 것 같은 파도 앞에서 서있는 기분이다. 계속 계속 밀고 들어오는 바다는 어느새 저 멀리 멀어져 있다. 나의 어떤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 나의 과거, 나의 현재, 아니면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미래가 나인가? 미래로 달리는 지금이라는 무한의 시간에 갇혀 버린 듯 막막해졌다.
자 어디서부터 시작해 볼까? 음, 내가 왜 이 이야기를 시작하려는지부터 시작해 볼까. 분명 아름다운 가을 날이었다. '세상의 가을은 이토록 아름답구나. 정말 아름답지 않은 순간이란 하나도 없어. 내일은 꼭 이 모습을 기록해야겠다.' 그러나 그날의 가을을 기록하지 못했고 그날 밤 비가 왔다.
비가 내가 걷고 사는 세상을 온통 적시고 난 뒤, 가을은 색을 잃었다. 여름을 간신히 담아내었던 명랑함을 잃었다. 겨울을 한 방울 떨어트린 듯 세상은 차갑고 어두워졌다. 마치 나의 나날처럼. 비가 오기 전으로는 절대로 돌아갈 수 없을 것처럼. 띵동 알람이 울렸다.
-------------------------
[00도서관 수강생 모집!]
프로그램 안내 및 공지
프로그램명 : 문화프로그램, 문화특강 수강생 모집!
안녕하세요! 오늘은 00도서관의 따끈따끈한 행사 소식을 가져왔습니다!
1. 심리학 특강
- 심리학자 허용회와 함께하는 자존감 수업!
- 11월 20일, 오후 7~9시 도서관 소극장에서 진행됩니다.
- 선착순 30명 모집!
- 신청 필수! 아래 링크를 참고하세요.
2. 영양제 특강
- 약사 염혜진과 함께하는 내게 맞는 영양제 찾기!
- 11월 27일, 오후 7~9시 도서관 소극장에서 진행됩니다.
- 선착순 30명 모집!
- 신청 필수! 아래 링크를 참고하세요!
3. 에세이 쓰기
- 밀리로드(밀리의 서재 글쓰기 플랫폼)를 활용한 에세이 쓰기
- 중학생 이상 참여 가능! 선착순 15명 모집!
- 11월 20일부터 12월 18일까지 매주 수요일 오후 7~9시!
- 밀리의 서재 오리지널 작가 이성혁 작가와 함께합니다.
- 신청은 아래 링크 참고해 주세요.
(중략)
- 문의 전화 : 032-000-0000]
------------------------------
에세이. 단 한 글자였을 것이다. 하루 종일 가슴이 콩닥거렸던 이유는. 아마도 이 단어를 만나기 위해서였을까? 나는 이성혁 작가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나는 그의 강의를 듣고 싶었다. 다만 쓸 수 있다면, 읽히므로 인하여 나의 글이 생명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작은 것을 소망했다. 어쩌면 나아갈 길을 알게 될 수 있을지도 몰라.
수많은 사람들이 캐리어를 끌고 오고 갔다. 어떤 아이는 소리를 질렀고, 그의 부모는 몸을 낮추었을 것이다. 카페에서는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고 또 누군가를 지쳐 앉아있고 나와 같은 사람은 발걸음을 급하게 옮겼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걸음을 멈추고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거 신청해 봐도 돼?' '한 번 해봐요. 여보가 해보고 싶은 분야잖아. 얼른 신청해.' 만약 언젠가 내가 작가가 된다면 그 지분의 90%는 아마도 당신일 거야. 하고 생각했다. 말로 꺼내지는 않았다.
'내가 작가가 된다면'이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르는 두려움에.
그리고 오늘이 왔다. 운동을 마치고, 차를 끌고 나왔던 새벽만큼 어두워진 길을 달린다. 새벽 출근 준비를 하며 온통 까만 색인 옷을 입고선, 나의 직업이 무엇인지 알리고 싶지 않아 일부러 밝은색코트를 꺼내 입었다. 외투는 숨기에 딱 적당히 좋은 공간을 마련해 준다. 달팽이의 집처럼, 거북이의 등딱지처럼. 잠옷에도 롱 코트 하나면 감쪽같이 아이들 등 하원을 할 수 있다. 어쩌면 외투가 아니라 그것을 입을 수 있는 가을과 겨울은 숨바꼭질에 제격인 계절이 아닐까. 그래서 드러내야 하는 여름보다 숨기 쉬운 이 계절이 좋았는지도 모른다.
알 수 없는 '첫'은 언제나 사람을 긴장하게 만든다. 준비되지 않은 대로 서투른 대로, 준비되지 않은 그냥 그대로 발을 디뎌 보는 것.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 처음이겠지. 그러니 이 어색함도 미지의 것을 알고자 하는 이 노력도 모두 괜찮다.
어두운 밤 길, 나의 길을 밝히는 생각은 두 가지였다. 강의를 하는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강의를 들으러 온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까. 3층,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나와 비슷한 색의 코트를 입은 중년의 여성이 서 있다. '안녕하세요.' 한 마디가 나오지 않았다. ‘아, 혹시 나와 같은 강의를 듣는 사람일까? 아닐지도 몰라.’ 나는 고개를 돌렸다. 아이들과 있을 때면 누구에게도 쾌활하게 인사를 잘 건네는 나도 사실 혼자 있으면 이렇게나 쑥스럽다.
어디인지 모르는 강의실을 찾아서 잠시 헤맸다. 강의실에는 베이지색 니트에 어두운색의 안경을 쓴 한 남자가 앉아있다.
그를 앞에 두고서 직접 물어봐도 될 이야기들을 굳이 네이버와 밀리에서 검색을 해본다. 강의가 시작되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들었다. 나와 비슷할 때 태어나 한때 비슷한 경험을 했고 지금은 작가가 된 그의 이야기를. 강의를 들으러 온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각자에게서 들었다. 나에 대한 이야기도 꺼냈다. 코트 속 비밀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다음 주에는 이 코트를 입지 않아도 괜찮겠다 생각했다.
왜일까.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이 고요함을 깨야 한다는 비장한 마음이 드는 것은. 이 적막함을 깨고 한 걸음 더 편안한 수업이 되기를 바라는 이상한 의무감이 드는 것은. 그런 마음이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 사이에 새어 나왔다. 아마도 그것은 내 열망의 바람이었으리라. 책과 글이라는 것. 이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었구나. 나만이 아니었음을 그래서 삽시간에 아직 이름도, 얼굴도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서 끈끈한 무언가가 피어오르며 따끈한 애정이 꿈틀했다.
강의를 듣고서 며칠 내내 어떻게 뒷이야기를 쓸까 고민했다. 내 첫 페이지는 어떤 모습이면 좋을까. 어떤 장면이 펼쳐지면 더 극적일까. 그리고 잠시 스스로 웃기다고 생각했다. 이건 영화가 아닌걸. 나는 대단한 작가가 아닌걸. 이건 어떤 소설이나 에세이가 아닌걸. 그러니 아무렇게나 시작해도 괜찮지 않겠어? 그렇게 이렇게 아무렇게나 아무 데서나 내 삶이 흘러가고 이어가는 방식,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