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객기 참사 희생자를 애도하며
비행기가 추락했다. 요즘따라 너무 많이 먹고, 먹어도 성에 안 차해하는 나를 위해 점심 도시락을 미리 열었다. 바나나 한 개와 계란 두 개 그리고 그릭 요구르트 약간. 이제 도시락통에는 방울토마토 네 개와 오이 스틱 두 개가 남았다. 책을 읽으며 앤디 워홀을 생각한다. 짐으로 가득한 우리 집을 떠올리고 워홀의 마릴린 먼로를 생각한다. 테이블을 정리하고 자리를 떠난다. 직원 출입구를 통해 보안구역으로 진입한다. 화장실에 들러 손을 씻고 양치를 한다. 매장으로 걸어간다. 걸음을 내딛는데 사방이 조용하다. 주류 매니저님의 얼굴이 달라 보인다. 다른 분인가? 분명 같은 분인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낯선 분위기였다. 모두가 처음 보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리고 영신 선배님과 수린이가 말한다. 방콕에서 무안으로 착륙하던 비행기가 추락했대요.
비행기 착륙 현황과 업무를 위해 켜 둔 노트북에서는 음악 대신 실시간 영상과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린다. 181명이 타고 있는 비행기에서 28명의 사망자가 확인되었다고. 앞으로 우리는 153명의 사망 소식을 확인해야 하는 건가요? 물으니 2명은 구조되었다고 알려주셨다. 비극이었다. 매장 안으로 방금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왈칵 눈물이 차올랐다. 그들도 이렇게 아주 피로하고 지친 표정으로 혹은 시원 섭섭한 표정으로 면세점을 지나치거나 들어왔을 테다. 그런데 그들은 이제 없다. 당연했던 일상으로의 복귀는 땅에 닿자마자 폭발해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은 이어진다. 마치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나는 눈물을 꿀꺽 삼키고 미소를 짓고 인사를 건넨다. 모두가 조심스러워진다. 손님들도 사뭇 조용하다. 그냥 그렇게 느껴진다. 그들이 정말 고요하게 지나가서인지, 내가 느껴지는 감각이 무뎌져서 인지 모르겠다. 오고 가는 사람들, 덜컹거리며 짐이 레일 위로 떨어진다. 덜컹 툭 덜컹 툭 심장이 요동친다. 쿵쿵 쿵. 쾅.
엄마가 보고 싶다는 하다를 데리고 남편이 우주와 함께 왔다. 비극을 접하고 나는 여기서 아이들에게 웃음을 지어 보인다. 나의 소중한 아이들. 소중한 생명들. 하다는 혼자 계단을 오르고 나머지 셋은 에스컬레이터를 탄다. 하다가 먼저 도착했다. 하다를 안아주었다. 우리 아기가 먼저 도착했네. 요란스러운 식사시간도, 음식을 흘리고 묻히는 아이들의 모습도 이상하게 슬프다. 어여쁘기만 하고 곱기만 한데 이상하게도 눈물이 날 것 같다. 우주는 사고 사실을 나에게 말해준다. 엄마 소방대원들이 어서 사람들을 다 구해주면 좋겠어요. 나는 같은 말을 반복한다. 비행기 사고에서 사람이 살 확률은 극히 드물어. 남편이 말한다. 소방대원도 사람이기 때문에 현장의 안전이 확보된 후에야 구조를 시작할 수 있어. 모두 소중한 생명이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소중하니까. 우리는 소중한 생명을 128명 잃었다. 확인되지 못한 생명까지 179명이다.
3시 30분이 되었다. 짐을 챙겨 나간다. 보안 구역을 통과하고 남편이 보낸 메시지를 확인한다. 전에 일했던 회사에서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8명의 전현직 직원. 동반 여행 추정. 전원 사망. 몇 개의 단어로 이루어진 문장들이 쾅하고 심장을 들이받았다. 내내 삼켰던 울음이 불쑥하고 차오른다. 애도를 함께할 수 없다. 홀로 삼켜야 한다. 차 안에서 오랫동안 직원들의 얼굴을 떠올려보았다. 흐릿해진 기억에서 단 한 명의 표정도 선명하지가 않다. 그 길로 다시 일하느라 보지 못한 뉴스를 시간을 거슬러 읽어 내려간다. 사망자의 수가 이렇게 줄어들기를 바라보았지만 헛수고였다.
시동을 켜고 집으로 향한다. 잔뜩 예민해져서는 필요도 없는 짜증을 부리고야 만다.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 여기에 있는데, 내일의 우리가 그러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는데. 어찌하여 인간의 삶은 이토록 불안전할까. 그리고 비극과 참상이 더해지는 중에도 우리의 삶은 계속 이어지는 걸까. 언제고 후회할 일을 이렇게 스스럼없이 하고야 마는 걸까.
삶에 찰싹 달라붙어 감히 돌아보지 못하는 죽음이 어느 순간 뒤집혀 나에게 찾아왔을 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러니까 이 글은 일종의 유서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느 날,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을 때 나는 늘 힘들었다. 그만두고 싶었다. 희망이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내가 죽는다면 너무 억울할 거야. 모든 게 다 좋아.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열망도, 더 살아보지 못한 아쉬움도 없어. 다만 내가 글을 쓰고 있다면, 단 한 권의 책을 내지 못하더라도 작가가 아니더라도 내가 쓰고 있는 사람으로 죽는다면 억울하지 않을 것 같아. <스토너>를 읽고 난 직후였다. 그러니, 나는 괜찮다. 그날 이후로 나는 언제나 괜찮다. 너무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는 그렇게 말해줄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우리도 너무, 너무 우리를 잃어버릴 정도로 슬퍼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더 깊은 우울이 우리를 망가트리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 삶은 이어진다. 누구의 삶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새로운 삶은 태어난다. 우리는 충분히 애도하고 우리를 충분히 돌봐야 한다. 우리의 삶에는 언제나 오늘을 살아내지 못한 사람들의 몫이 더해지므로.
2024년 12월 30일 04시 30분. 알람이 울린다. 네이버를 킨다. 사망자 179명.
179명의 생애에 애도를 표합니다.
한 시절 함께 했던 과장님, 팀장님, 직원분들.
한참 먼 곳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애도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