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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가 잇는 것

거기, 다리가 있었다. 그리고 그 다리가 잇는 것은

by 이덕준

공항으로 가는 길에 다리가 있다. 공항에서 나오는 길에 다리가 있다. 입구이자 출구인 그 앞에 다리가 하나 있다. 수많은 날, 출퇴근을 하고 다리 밑을 지나면서 나는 그것이 다리인지, 터널인지, 아니 사실은 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니 무엇을 위한 다리였는지도 생각해 봤을 리 없다.

며칠 전 출근을 하는데, 그 다리 위에서 비행기를 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비행기를 보았고 다리의 존재를 실감했다. 어둠이 깔린 그 시간에 대부분의 비행기는 주인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혹은 전날 아이가 만들어 놓은 주차장에 열 지어 세워놓은 자동차 장난감들처럼 잠을 자고 있는 모양새인데 그날은 그 다리 위로 비행기가 지나가고 있었다.

비행기의 속도가 어땠을 것 같나? 그 다리를 순식간에 지나갔을까? 아니다. 비행기는 아주 느렸다. 얼마나 느렸냐 하면, 멀리서부터 비행기가 그 다리를 지나가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내 차가 그 다리 밑을 지날 때까지도 비행기는 움직이고 있었다. 달리지 않았다. 그저 움직이고 있었다. 비행기는 가장 빠른 ‘탈 것’인데 그건 하늘에서나 통하는 소리였군. 하고 혼잣말을 했다. 다리 위에서 어디론가 이동하는, 그러니까 나는 것이 목적이 아닌 비행기의 속도는 탈 것 중 가장 느리다고 할 만큼 느려 보였다.

‘뒤뚱거리는 펭귄 같네.’ 사람들은 비행기를 새에 비유한다. 나도 비행기가 새 같다고 생각한다. 남극에 사는 펭귄 같다고. 빙판에서는 느린 걸음이지만 바닷속으로 다이빙하면 누구보다 빠른 새. 우리가 언제나 빠를 필요는 없지. 빨라야 할 때 빠르면 아닌 때는 느려도 괜찮지. 나는 아직 빨라야 할 때를 찾지 못한 펭귄이야. 그래서 이렇게 뒤뚱 거리는 거야. 포기하지 않으면 곧 바다가 나오겠지. 그때가 되면 주저하지 않고 나는 뛰어들어갈 거야.

비행기가 달리기 시작한다. 덜커덩 덜컹. 비행기가 지면에 닿았다. 덜커덩 덜컹. 우리는 이미 서로 손을 잡고 있다. 무섭지만 표정은 그렇지 않은 남편과, 무섭지만 무섭지 않다고 하는 우주와, 그저 즐거워하는 하다와, 그런 아이들을 보는 것이 즐거운 내가. 우리는 비행기가 하늘로 솟구칠 때, 땅으로 향할 때 이렇게 손을 잡아 준다. 우리 아빠 손을 잡아주자. 우리가 그 비행기에 타고 있었던 한 가족이었다면 우리 넷은 하나가 되어 있었겠지. 손을 꼭 잡은 채로. 무서워하지 마. 이건 롤러코스터 같은 거야. 영화 같은 거야. 우리 이따 보자. 사랑해. 하며.

비행기가 하늘로 다이빙을 해 끝없이 잠수했다. 이윽고 수면으로 돌아온 것은 꼬리뿐이었다.

어느 날 그 자리에 무지개가 하나 떴다고 했다. 사람들은 그것이 천국을 향한 다리라고 했다. 사실이든 아니든 나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그 다리의 끝은 천국이어야 했다. 비행기의 몸통이 꼬리도 없이 무지개를 건넌다. 천국이었다.



쓰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집니다. 나를 위한 글과 이 일상적인 글을 발행해도 되는 것인가 자꾸만 의문이 들어요. 아픔을 써보기로 했습니다. 당분간은 침잠하는 기분에 젖은 채로 이렇게라도 고통을 나누어 보겠다는 마음으로요.


비행기 참사 희생자의 명복을 빕니다. 희생자 유가족에게도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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