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04일 휴무의 기록

부고

by 이덕준

1


어린이날 이브



5일은 남편 회사 행사를 참여하기로 하고, 오늘은 하다가 어제 가고 싶다고 했던 서대문구 자연사 박물관에 가기로 했다. 남편은 아침에 갑자기 서울대에 가보자고 했고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서 그냥 가기로 한 곳에 가기로 했다.

남편이 찾은 밥집이 북엇국 집이었는데 그것도 싫었다. 아토피가 심한 우주가 밀가루, 고기, 설탕, 우유 등을 먹지 말라고 하니 우리의 점심 메뉴의 폭이 확 줄었기 때문에 한 선택이었지만. 가는 길에 신촌이 있어서 이 근처에서 밥을 먹자고 했다. 쌀국수는 괜찮겠지 싶어 쌀국수를 먹으러 갔다.

커피를 힌 잔 하러 가면서 신촌을 구경했다. 신촌은 처음이지. 어때?, 하고 남편이 물어왔다. 그냥 서울에 있는 충장로(광주의 번화가)네.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여기는 원래 이렇게 피아노를 치곤 해. 그렇구나. 했다. 마침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OST가 흘러나왔고 우리는

잠시 그 연주에 발걸음을 묶어 두었다. 노래가 끝나고 박수를 치고 싶었는데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어떤 이가 비어있는 피아노 의자로 다가가 않았다. 그의 모습에서 예사롭지 않은 연주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의 연주를 듣고 싶었지만 남편은 이제 그만 들을 거지? 하며 이미 생각해 둔 카페로 걸음을 옮겼다.

주차장 근처에는 장천 초등학교와 주차장이 있었는데 네모 반듯한 운동장을 보고 있으니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도 몸은 편하지 않았다. 운동장의 끝에는 은행나무가 열을 지어 서있었고 그 아래에는 벤치가 있었다. 벤치가 끝나는 곳부터는 클라이밍 기구와 미끄럼틀이 있었다. 네모난 운동장의 오른쪽으로는 농구 골대가 있는 농구 코트, 왼쪽엔 텃밭. 그 앞에는 축구 골대가 있었다. 한 가족은 농구를 했고 10대 청소년 둘은 원반 던지기를 했다. 그들의 이모라는 사람이 오고 나서 원반이 주인을 잃은 채 운동장에서 굴러다녔다.

그 원반을 발견한 건 하다였고 하다는 원반을 거의 집어던지다시피 했지만 그래도 따사로운 일요일의 오후였다.

서대문 지연사 박물관에 도착했다. 4명의 티켓을 끊고 1층에 들어갔다. 아까부터 울리던 알람을 그림을 그리겠다고 앉아있는 하다를 옆에 두고 확인했다. 부고 알림이 떠있었다.



2


원빈


하얀 원반이 하늘을 높이 던져졌다가 바닥에 추락했다. 몇 번이고 원반은 던져졌고 또 추락했다. 운이 좋으면 누군가의 손에 붙잡혔다가 다시 던져졌다. 아무런 보장이 없는 높이로 치솟았다: 원반은 원래 그런 것이니까. 우리는 가지고 놀던 원반을 바닥에 두고 떠났다. 내일은 또 누가 그걸 던지고 놀겠지. 부서질 때까지 원반은 던져질 것이다.


3


모든 관계에 있는 것. 끝



어떤 이가 비어있는 피아노 의자로 다가가 않았다. 그의 모습에서 예사롭지 않은 연주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의 연주를 듣고 싶었지만 남편은 이제 그만 들을 거지? 하며 이미 생각해 둔 카페로 걸음을 옮겼다.

가끔, 아이들이 다 크고 나면 나와 그는 더 이상 함께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생각하는 대로 말을 하고 움직이고 그래야만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조금 늦더라도 발걸음을 붙잡는 것에 시간을 할애하는 사람이다. 여행 중에 힘이 들면 계획하지 않았던 카페라도 들렀으면 하는 사람. 오늘의 하루를 돌아볼 여력을 남겨두는 사람인데 그는 그렇지 않다. 앞을 본다. 앞만 보고 주변은 보지 않는다. 아무래도 나는 그의 주변에 있는 사람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아마도 그래서 우리의 끝에 그는 슬픔이 허전함을 이기지는 못하겠다는 짐작을 해본다. 사실 그렇다고 하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는데 우리는 지금 서로에게 의미보단 필요에 의한 존재라서. 그렇다.



4


그녀


어째서 너의 이름이 이 문자에 있는 걸까. 그녀가 출근을 하지 않은 첫날, 정신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그럴 애가 아닌데. 왜 늦지?” 아무리 기다려도 연락이 닿지가 않았다고 했다. 다음날 내가 전해 들은 이야기는 그녀의 교통사고 소식이었고 고민하다 보낸 카톡의 1은 사라지지 않았다. 괜찮기만 하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이렇게 다시 닿지 않을 인연이 되더라도.

그녀는 2002년에 태어났다. 승무원이 되려고 대학교에 진학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나와 같이 근무하고 있었다. 그녀를 처음 봤을 때, 이 친구는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닌데 왜 여기에서 일할까. 했다. 매번 그녀는 더 좋아졌다. 내가 매장에 필요한 제품을 진열해야지 생각하면 그녀 손에는 이미 그 물건이 들려있었고, 청소를 좀 해볼까 하면 먼지떨이가 손에 있었다. 재고 조사를

해야지 하고 있으면 어느새 재고 목록을 출력해서 들고 있었다. 몇 박스씩 담배가 나오면 조용히 와서 물건을 정리해 주고 박스를 접어들고 갔다.

얼마 전 서로 박스를 정리하겠다고 했다가 그녀가 들고 있던 칼에 손이 베었다. 아직 덜 아문 그 상처를 보니 손가락이 아니라 마음이 욱신거렸다. 너무 미안해하던 그 눈빛. 그녀는 말이 많이 없었지만 누군가가 건네는 이야기에 늘 호응해 주었다. 말이 술술 나오게 하는 사람이었다랄까. 아마 그녀는 내 생각보다 나를 더 많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예쁜 영화의 얼굴을 보면 어릴 때 얼마나 예뻤을지 짐작이 됐다. 까맣고 동그란 눈으로 염마 옆을 지켜주고 동생과 놀아주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매번 나는, 나는 정말 딸을 가지고 싶어. 너같은 딸. 이 말을 수없이 했고 그럴 때마다 영화는 수줍게 웃었다.

그런 그녀가 별이 되었다. 5월 4일에. 영원히 어린 딸로 남으려는 듯이. 애처롭게 호들갑스럽게 기도라도 해볼 걸 그랬나. 한 장의 사진으로도 남지 않은 그녀를 마지막으로 만나러 간다. 마지막 인사를 하러.



5


그녀는 꽃 사이에 있었다.


현금이 없었다. 식장에 ATM기는 있었지만, 인출은 할 수 없었다. 지폐부족. 남편과 내 쌈짓돈을 꺼내어 단위를 맞추었다. 마음과 달리 턱없이 모자란 액수였다. 옷은 검정 청바지에 검정 민소매. 하얀 셔츠와 검은색 가죽 재킷. 그나마 다행인 건가 싶었지만 오늘따라 번쩍이는 재킷이 싫었다. 부의 봉투를 꺼내어 이름과 소속을 쓰고 조의 예의를 되뇌고 들어갔다.

봉투를 넣고 이름을 적고 신발장에 신발을 넣었다. 그녀와 닮은, 예쁜 그녀의 언니가 앉아있었다. 허둥지둥하며 올려진 국화에 손을 대었다가 아버님의 제지로 바닥의 화병을 보았다. 꽃을 꺼내어 올리고 묵념을 했다. 아무래도, 절을 할 수가 없었다. 아버님께도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너무 예뻐서 많이 좋아하고 아꼈다고도, 위로의 말도. 그냥 거기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사진을 보는데, 왜 네가 거기에 있니. 하는 마음만 들었다. 식사를 권하고 음료를 권하셨지만 아이들이 기다린다고 하고 나왔다. 그녀의 가족들을 보니, 장례식장에 가니 내가 오히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가족들 앞에서 울고 싶지는 않았지만 허둥지둥 신발도 찾지 못하는 사이 이미 눈물이 눈앞을 가렸다. 신을 구겨 신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아무래도 지난 며칠간 가족들은 그녀가 떠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통곡이 메워진 슬픔을 보았다. 나는 그녀를 볼 때마다 어린 모습이 보여서, 그녀 같은 딸을 낳고 싶다고 해와서 부모님의 심정이 어떨지 알 것 같았다. 그래도 그 마음을 내가 전부 다 헤아릴 순 없을 것이라 눈물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배려이자 성의였다.

나도 실감이 나질 않는데 출근하면 그 예쁜 모습으로 조용히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녀에 대해서도, 그녀의 죽음에 대해서도 나는 아는 것이 거의 없다. 내가 아는 건, 그녀를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것. 집으로 돌아가며 나는 그녀가 낸, 손가락의 상처를 오래도록 만졌다. 흉이라도 생겼으면 해서. 그렇게라도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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