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50506화의 기록

실감

by 이덕준

1


5월인데, 너무 추웠다. 5월인데 하늘이 흐렸다. 네가 이곳저곳에 가는 듯이. 나의 하늘을 가린 듯이 하늘은 그런 색이었다. 아무리 재킷을 여며도 한기가 서렸다. 네가 옆에 있는 듯이.



2


기억할 수 있는 것


우리가 널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널 떠올리면 생각할 수 있는 색은 무엇이 있을까. 검은색밖에 없다. 길고 찰랑 걸렸던 검은색 긴 머리칼. 우리가 늘 입는 검은색 옷과 검은색 신발. 손바닥만 한 작고 단정한 검은색 가방. 그날도 너는 검은색 옷을 입고 있었을까. 네가 다른 색옷을 입는 일을 했다면, 그래서 너의 옷장에 화려한 색이 가득했다면, 그래서 네가 그날도 눈에 띄는 색으로 외출을 했다면 어땠을까. 누가 도로 위의 너의 생을 건져주진 않았을까. 세상 모든 것들의 변수를 찾아보게 된다. 살았더라면 살아주었더라면 하며. 왜 하필 어여쁜 너여야만 했을까 하는 이기적인 마음까지 든다.

나는 네 언니를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네 언니는 아기를 낳고 있었다고 해. 네가 떠나던 날 너의 언니는 너의 조카를 낳았다고 해. 세상에 이렇게 예쁘고 착한 이모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조카가 슬퍼서 나는 또 울어버렸지 뭐야.



3


어째서



다섯 박스가 나온 물건을 정리하다가 갑자기 멈춰버린 정신 선배는 이야기했다.


-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어떻게 사람들은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또 이렇게 살아가는 걸까. 내가 감성적인 사람이라 이렇게 힘들까.


-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살지 못하는 게 맞는 거 아닐까요? (손끝의 상처를 보여주며) 여기, 여기 이렇게 흔적이 남았는데, 상처는 남았고 그녀는 사라졌는데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어요? 그럴 순 없어요.


- 다들 말로 다 하지 못하고 사는 걸까. 다들 살아야 하니까 사는 거겠지.


정신 선배는 자꾸만 웃음이 나온다고 했다. 웃겨서 나는 웃음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실소가 나온다고. 세상이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싶다고.


우리는 다시 말없이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대화는 묵념이었고 우리의 침묵은 애도였다.




4



나는 그녀의 죽음이 궁금하다. 어째서 그녀가 죽어야만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뭐라도 해보고 싶은데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왜 그녀를 그렇게 데려가야만 했느냐고 물어보고 싶은데 아무도 답을 해줄 수가 없다. 해소되지 않는 슬픔에 대한 원망이 커져만 간다. 온 세상으로 화살이 뻗친다. 소리 없는 곡소리가 비수처럼 하늘에 날아가 꽂혀댔다.



5



그녀가 떠나고 나니까 나는 죽음 뒤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어졌다. 죽음 뒤의 세계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생각해 보면 죽음 뒤의 세상은 또 다른 이름의 미래였다. 아무리 애써도 알 수 없고 예상할 수도 없는 것. 나는 그녀가 내일에 존재하고 있을 거라고 믿기로 했다. 우리는 그래서 만나지 못하는 거라고.



6


존재에 대한 고찰


존재에 대한 고찰의 이야기를 했었다. 그날, 존재에 대해 처음 의문을 품었던 사람은 존재를 잃어버린 사람이었을 거라고 했다. 그녀는 존재했을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일하는 사람들과 있으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 그녀는 존재했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그녀는 없던 사람이 되었을까. 그녀가 사라졌다는 것 외에 모든 것이 그녀의 존재를 증명해 주고 있다. 그녀와 삶의 한순간을 스쳤던 사람들은 마음이 욱신 거리고 있고 내 손의 상처는 더디게 아물고 있다. 그녀를 만났던 이 매장도 곧 리모델링에 들어간다고 하고 그녀의 손길이 닿았던 물건들도 다른 사람들 손에 붙들려 이 매장을 떠나갈 것이다. 그녀가 머물렀던 자리, 그녀가 걸어왔던 길도 언젠가는 모두 허물어질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다. 너무나 생생해서 당장에라도 빚어낼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언젠가는 울지 않고도 그녀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오겠지. 이 슬픔이 존재의 증명이 되지 않는 날이 오겠지. 그런 날이 되면 더 자유로워지겠지. 그녀는.




7


일을 하며 자꾸 울컥거리게 된다. 자꾸만 목을 가다듬게 된다. 만약, 누군가의 머리에 보이지 않는 먹구름이 있다면 소중한 누군가를 잃었을까 생각해 주면 좋겠다. 이상한 사람이 와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와도 그런가 보다 하게 된다.





8



오늘도 욱신 거리는 몸을 일으켜 세워 앉았다. 피부가 며칠째 난리라서 어쩌지 싶었다. 거울을 보며 한숨이 나왔다. 하다는 어제 자기 친구 앞에서 우리 엄마는 뚱돼지라고 나를 놀려댔다. 그러자 하다의 친구도 나를 더러 뚱돼지라고 했다. 아이들의 천진한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러나 돌아서서 이제 아이들의 행사에는 참여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젯밤 우주에게 물었다. 우주는 혹시 엄마가 창피하냐고. 우주는 그렇지 않다고 나를 안아주었다. 나도 말없이 우주를 안아주었다. 우주는 오늘 즐거웠어?라는 질문에 우주는 그렇다고 말해주었다. 선물이 없어도 괜찮았어?라는 질문에는 말이 없었다. 우주야 엄마는 엄마가 우주에게 선물이라면 좋겠어. 엄마가 보낸 시간이 우주에게 선물이었으면 좋겠다. 우주가 태어나고 나서부터는 엄마는 특별히 갖고 싶은 것도 특별히 가고 싶은 것도 없어졌어. 우주가 너무 큰 선물이라 그래. 우주가 갖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것도 없길 바라서 하는 이야기는 아니야. 다만 엄마는 우리가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사실은 선물인 거야. 사랑해.라고 말해주었다.


우주는 내 말을 이해했을까. 언젠가는, 선물 대신 받은 나와의 시간을 기억해 줄까. 하다는 뚱돼지라고 놀린 오늘의 나를 어떻게 기억해 줄까. 사랑만 남았던 엄마를 기억해 주면 좋겠다. 나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사랑의 상징이 다면 좋겠다.



9



퇴근 전, 해주시는 말씀.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산 사람은 살아야지. 그러니까 너무 우울해 있지 말고.


그 말이 모두 나를 위한 것임을 알았지만 그 말에도 나는 그녀가 떠올라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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