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의 시간
1
점심시간이 되었다. 도시락도 챙겨 왔고 커피도 있다.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왔다. 아무것도 없는 하늘과 아무것도 없을 수 없는 비행기가 움직이고 있다. 자동차가 달리고 급유차 지정 자리에 몇 대가 서있다. 비행기가 움직인다. 자동차는 달린다. 그 안에 다 사람이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 사람이 있다. 어디에라도 있을 것 같은 그녀는 어디에도 없고.
2
카페에 앉아 밖을 바라보며 나는 멈춰 있었다. 음료를 주문해 두고 자리에 앉아서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내 몸은 멈춘 것처럼 보였지만 내 마음은 요동치고 있었다. 아이들이 떼를 쓸 때처럼. 이것 사 달라 저것 사 달라하고 싶은 일을 기어이 할 수 없을 때, 그것을 하지 못하게 하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해서 분노하는 것처럼. 내 마음이 그랬다. 내 마음의 움직임을 꺼내 놓았다면 아마 그런 아이의 것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산 사람을 살라고 하면서 살리는 방법을 모르는 것 같다. 아니 잃어보지 못했다고 해야 할까. 나는 37이 되어서야 매일 같이 보던 동료와의 이별을 경험했지만, 누군가는 또 누군가는 이미 겪어본 슬픔일 수도 있겠다. 이별을 겪고서 어떻게 생을 유지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실 그녀와의 추억을 공유한 우리가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었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물론, 내가 없던 자리에 일을 했던 직원들은 그랬을지 모르겠지만 남아있던 사람들도 홀로 슬픔을 겪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별은 때로는 뜻하지 않은 순간에 알 수도 없는 이유로 찾아온다지만, 어떻게라도 우리는 그녀를 애도해야 했다. 아름다웠던 그녀의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슬퍼하고 그래야 했다. 그러나 누군가는 지키고 싶어 했다. 그녀의 생이 가벼운 가십으로 남지 않게 하기 위해서 슬픔을 자신 안에 가두고 자물쇠를 잠가두었다. 그것이 그녀를 소중하게 지킬 또 다른 애도의 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남아있는 사람을 위해서 그녀를 충분히 애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떠나는 그녀를 위해서는 어쩌면 침묵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
3
며칠째 그녀의 이야기만을 쓰고 있다. 입을 다물고 마음을 잠가야만 해서 글로 밖에 쓸 수 없다는 걸 알린다. 며칠째 같은 슬픔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해본다.
4
그녀에게 카톡을 보냈다. 나는 아직도 생생한 그녀의 카톡 메시지를 바라보고 바라본다. 그녀의 동생이 답장을 보내왔다. 그 걸 본 나는 또 엉엉 울고 말 있다. 그가 나를 위로했다. 많이 웃고 행복하시길 바란다고. 그녀를 닮은 그가 말해주었다. 그녀가 보내준 이야기처럼 느껴져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이름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사진이라도 한 장 받아볼 수 있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녀를 잊고 싶지 않다. 그녀의 얼굴이 아직은 생생하다.
5
그녀의 글씨를 사진 찍어 두었다. 반듯하고 예뻤던 글씨를. 그 글씨를 보고 있으면 언제라도 웃으며 인사를 건네줄 것 같다.
6
괜찮으세요?
며칠은 괜찮지 않았지. 잘 때마다 생각나고.
나는 충분히 슬프고 싶다. 충분히 멈춰있고 싶고, 충분히 그리워하고 싶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일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나는 부양해야 하는 가족이 있고, 책임이 있다. 일을 하고 있으니 슬픔도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는 게 서글프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애도도 쉬는 시간에만 한다.
7
괜찮아요?
괜찮을 리 없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안부를 물었다.
8
식사 시간 끝
나는 슬픔을 다시 가슴속에 욱여넣고 일을 하러 간다. 울컥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일어난다. 나의 생에 주어진 책임을 다하기 위해. 걸어 들어가 본다. 죽음처럼 예측할 수 없는 미래 속으로.
9
검은 나비.
주차장으로 나가기 위해 회전문으로 들어갔다. 회전문에서 반바퀴 돌아 나와 걸어가는데, 나실 나는 온통 그녀 생각만 했다. 그때 검은 나비가 날아갔다. 아주 잠시. 돌아보니 사라진 그 나비가 그녀일까 생각했다. 아이처럼 울고 말았다. 혼자 슬프지 말고 나눠요, 했지만 괜찮던 사람을 또 울릴까 봐 오늘도 혼자 울었다. 생각해 보면 테리가 죽었을 때도, 벨라가 죽었을 때도 나비가 날아왔다. 몸이 사라져서 나비의 모습으로 인사를 한 걸까. 그렇다면 그것도 너무나 고마워서 역시 착한 그녀네 싶었다.
10
나는 나대로 흐르고, 모두가 각자의 삶대로 흘러간다. 오늘은 여럿이나 그녀의 행방을 물었고 나는 몰라요 도리도리만 했다. 그렇게 대놓고 사람들이 펑펑 울어놓고, 말을 하지 않는다고 모를 리 없는데. 그래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뭔가를 아는지 손끝이 스칠 때마다 마음이 그렇게 저릿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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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커피가 많이 남았다. 왜 이리 못 마셨냐고 말씀하셨는데 자꾸만 목이 메는 걸 어떻게 해요. 하고 말하고 싶었다. 오늘따라 먹어도 가슴이 답답하고, 배가 고프면 살아있다는 게 실감 나서 슬프다고.
12
카카오톡 프사를 바꾸었다. 파란 이불속 웃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 싫어서. 검은 옷을 입은 여자의 뒷모습이 그려진 그림으로. 그러고 나서 봤더니, 지해는 웃는 얼굴에 브이를 그린 사진을 프사로 바꾸었다. 나는, 그런 그녀가 정말 싫다.
13
하다는 아빠와 서울대공원에 갔다. 동물들을 보러. 오늘은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울고불고 떼쓴 게 통했다. 무엇이 남편의 마음을 돌렸을까. 사진 속 하다가 너무 행복해 보여서 내 슬픔에 행복이 스며들었다. 자꾸만 이렇게 아이들을 보다 보면 슬픔의 곳곳에 행복이 번지겠지. 그 힘으로 나는 또 살아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