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디지털 저장 강박(Digital Hoarding)'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디지털 저장 강박이란, 디지털 환경에서 수많은 기사, 음악, 영상의 북마크를 하거나, 메모, 사진 등을 잔뜩 모아두어 골치를 앓는 행동을 뜻한다. 강박의 문제는 단순히 모으거나 버리지 못하는 행위 자체가 아닌 듯하다. 만약 모은 것을 분류하고 정리해서 활용하면 맥시멀 리스트로의 삶을 살 테다. 강박은 활용하지 못할 정도로 모으는 것보다, 모은 것으로 골치를 앓는 것에 방점이 있다.
디지털 저장 강박을 알게 되며 나 역시 저장 강박이 있음을 알았다. 디지털 저장 강박은 나를 대신하여 기억할 디지털 공간인 컴퓨터나 스마트 폰이라는 주체가 있다. 그러나 나의 경우는 디지털 공간이 아닌, 직접 기억하는 것에 몰두한다. 디지털 저장 강박이 '새로운 정보를 디지털 공간에 저장하는 것'이면, 나의 저장 강박은 '새로운 정보를 나의 뇌에 저장하는 것'이다.
나는 새로운 정보를 무한히 얻고, 기억하려 한다. 하지만 누구도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다. 사람의 뇌는 필요치 않은 정보를 삭제함으로써 새로운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 컴퓨터와 비슷하다. 만약에 정보를 삭제하지 않으면, 뇌는 과부하될 것이 분명하다. 지금도 몸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쓰는 곳이 뇌인데, 정보가 축적되기만 한다고 가정하면 잠도 안 자고 매시간을 먹는데만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나는 전부를 온전히 기억하고 싶다.
기억하는 것에 더해 모으는 것도 등한시하지 않는다. 나는 기억할 정보를 탐닉한다. 나에게 정보의 유용함이나 재사용 가능성은 중요치 않다. 정보 수집 기준은 내가 이제껏 알지 못한 정보라는 사실만 중요하다. 몽골 여행을 갔을 때 일이다. 땅이 넓은 몽골의 특성상, 관광지로 이동하기 위해 매일 수 시간의 차량 이동이 필요했다. 나는 가이드 바로 뒷자리를 선호했는데, 다른 사람은 차에서 잠을 잤지만 나는 주변을 관찰하거나 가이드와 몽골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내가 경험한 것과 전혀 다른 생태계, 문화, 삶의 양식 등 모든 것이 궁금했다. 이를 테면 유목하는 사람도 의무 교육 대상인지, 예금이나 적금 금리는 얼마인지, 평균 월급과 한 끼 식사 비용은 얼마인지, 어떠한 산업 구조로 수입을 주로 얻는지 등 궁금한 것이 끝도 없었다. 몽골 여행을 하는 도중이나 한국에 돌아와서 다시 쓸 수 있는 정보랄 것은 없다. 뇌 입장에서는 삭제해야 할 불필요한 정보를 계속 처리하는 강노동을 매일 해야만 한다.
함께 여행을 갔던 사람은 "어떻게 몇 시간씩이나 궁금한 것이 끊이지 않을 수 있어? 그것도 매일."이라고 내게 물었다. 사실 나는 되묻고 싶었다. '이렇게나 다른 데, 어떻게 하나도 궁금하지 않을 수 있지? 모든 것을.' 하지만 사람은 애초에 모든 정보를 관리하거나 활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호기심을 조절하는 것이 합리적인 행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을 알지만 나는 호기심을 조절하지 못해 불합리한 삶을 살고 있다.
심지어 뇌가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애써 모은 정보를 모두 기억하지도 못한다. 나는 기억력이 다른 사람보다 좋은 편인데, 그럼에도 모든 것을 기억할 리 없다. 여기에 큰 문제가 있다. 그것은 수집한 모든 정보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신을 스스로 채찍질하는 것이다. 잊은 정보는 채워 넣으려 노력하고, 언젠가는 쓸모 있을지 모른다며 다시 암기한다. 이 과정에서 또 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느낀다.
나는 불안의 정도가 다른 사람보다 높다. 불안이 관계로 나타날 때는 유기 불안을 느끼고, 습관화된 불안은 항상 새로운 정보를 찾고 기억을 상실하지 않으려는 저장 강박으로 나타난다. 저장 강박을 가진 사람은 과거의 어떤 사건으로 마음에 상처를 받았거나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의 방어기제기도 하다. 이를 테면 배우자의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 건강에 대한 불안을 건강식품을 저장하는 행위로 대체하거나,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의 아픔을 동물에게 위안받으면서 동물을 수집하는 행위가 그렇다.
저장은 과거 아픔을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절박함에서 비롯되어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인 셈이다. 문제는 과거의 트라우마를 해소하지 못해서 저장 행위를 반복하는 것이다. 내가 열 살 때, 세상에서 가장 믿은 사람인 어머니의 떠남으로 아픔을 가졌다. 나는 그때 후회했다. 부모님이 이혼 예정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지만, 다시금 부모님의 사이가 좋아 보였기에 방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나를 떠났다. '내가 더 세밀하게 알았다면, 부모님 이혼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조금만 더 빨리 알았다면, 어머니가 못 떠나게 학교라도 결석하고 붙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나는 여태껏 우울했고, 불안했고, 후회했다.
<한낮의 우울>에서 작가인 앤드류 솔로몬은 "우울증은 과거 상실에 대한 반응이고, 불안은 미래 상실에 대한 반응"이라고 말했다. 나는 해결할 수 없는 과거를 후회하며 우울했고, 소중한 누군가를 잃지 않기 위해 불안에 떨며 새로운 정보를 모으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인정하지 않고, 이제껏 왕성한 지적 호기심으로만 치부했다. 나의 정서적 가난은 불안으로 소비하지 못할 양의 정보를 끝없이 모으고, 호기심으로 착각하게끔 해야만 온전하게 살 수 있는 삶의 방식을 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