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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용 Oct 14. 2024

몽골 패키지여행

나는 최근 몽골로 패키지여행을 다녀왔다. 자유 여행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몽골이라는 지역과 일주일이라는 조건은 자유 여행에 적합하지 않았다. 몽골의 자유 여행에 문제는 역시 이동이다. 외국인은 국제운전면허증이 있어도 운전이 안 되고, 대부분 관광지가 수백 킬로미터 떨어져 있지만 시외로 대중교통은 이용하기가 어렵고, 길을 안내해 줄 내비게이션도 없다. 사실상 자유 여행이 불가능한 셈이다.

유럽 도시는 좀 더 있었을지도?

나는 10개 국가의 20개 도시를 여행했지만, 그중 패키지여행은 몽골과 홍콩 단 두 번이었다. 몽골은 앞서 말한 이유로, 홍콩은 학교의 장학 프로그램으로 다녀온 것이기에 자유 여행이라는 선택이 불가능했다. 자유 여행만 다녀 보았던 터라 나에게 패키지여행이란 무엇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고, 필요치 않은 기념품을 강매하고, 비싼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다만 몽골을 꼭 가보고 싶었기에 다른 방법은 없어 패키지여행을 떠났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번 몽골 패키지여행이 특별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패키지여행에 대한 나의 생각은 편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패키지여행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다름 아닌 관계였다. 이제껏 다닌 여행을 떠올려 보면 친구나 연인, 서로 성향을 아는 사람과의 여행만 다녔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던 12명과 7박 8일을 함께 했다. 나는 여행하게 될 12명의 동행자를 몽골 공항에서 처음 만났다.


나를 제외하고는 전부 수도권에 살고 있었고, 나이도 다양했고, 당연히 직업이나 관심사도 달랐다. 무엇 하나도 비슷하지 않은 사람들의 조합과 우리나라와는 확연히 다른 문화와 자연, 서울에서 부산을 왕복하는 거리쯤은 우스운 이동 거리 등은 내가 경험한 자유 여행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아마 평소에 나라면 절대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 몽골 패키지여행에 있었다.


특히 모르는 사람과의 여행은 생각지도 않았을 테다. 성향에는 여행 방식, 삶의 지향, 성격 등이 포함된다. 이를 잘 아는 사람과 여행에서도 다툼은 흔하다. 그런데 7박 8일간의 여정은 기간도 짧지 않은 데다, 패키지여행은 중간에 불만이 있어도 인원 교체가 어렵고, 12명 각각의 성향을 맞추기는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더군다나 나는 일상에서도 강직한 성향 탓에 다툼이 많아 모르는 사람과의 여행은 더욱 선택하기 쉽지 않다.


완전히 같은 사람은 당연히 없다. 대부분은 정체성을 드러내면서도 다른 사람과 맞춰가면서 산다. 하지만 나는 자신만의 색을 진하게 보여주는 것을 매력적으로 여긴다. 이를 테면 술 마시다가 노래를 부를 때, 모두가 아는 대중가요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뮤지컬 넘버를 부른다. 기껏 몽골까지 가서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며 사진 찍을 때, 나는 온전히 눈과 뇌에 담는다. 나는 몽골에서의 시간이 갈수록 다른 사람과 다름을 느낄 뿐이었다.

제 플리를 공개합니다.

그럼에도 몽골 여행에서 다른 사람과 맞추려고 노력했다. 이를 테면 나는 음악 듣는 것을 병적으로 좋아하는데, 좋아하는 만큼이나 취향이 뚜렷하다. 몇 시간씩 이어지는 이동에서 블루투스 스피커를 연결해 함께 듣기보다, 이어폰을 끼고 따로 음악을 들었다. 다만 어쩔 수 없이 내 음악을 연결해야 할 때가 있으면, 한 곡이 끝날 때마다 다른 사람이 알만한 노래를 틀었다. 흘러나오는 나만의 음악 취향에 다른 사람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기 싫었기 때문이다. 내 나름 최소한의 노력, 최대한의 배려인 셈이다.


여행은 곧 자유라고 생각하기 쉽다. 사실 지구라는 차원에서 보면 여행지 역시 지켜야 할 장소임이 틀림없지만, 분리배출조차 안 하게 된다. 보행 신호 체계가 제대로 되지 않는 여행지를 비판하며 무단횡단을 한다. 밤새도록 시끄럽게 노는 것은 어딜 가나 하면 안 되는 행동이지만, 오늘이 생에 마지막인 것처럼 논다. 여행지에서 만큼은 나를 속박하는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만끽한다. 다만 자유 여행에 책임은 각자 양심에 따른다. 책임과 자유 여행은 친하지 않다.

나야, 몽골 사막.

반면 패키지여행은 적절한 구속과 함께 있는 듯하다. 처음 보는 사람과 문제없이 여행하기 위해 적절한 배려를 하고, 가이드 안내에 따라 차질이 없도록 규칙과 시간을 지키고, 현지 가이드와 가까워지면 여행지가 나와 전혀 관계없는 곳이 아니게 되며 일말의 책임을 갖는다. 내게 여행은 정체성을 마음껏 내어 보이는 자유에 가까웠다. 하지만 패키지여행에는 자유와 구속이 함께 공존했고, 적절한 구속은 책임과 친하다.


나는 패키지여행을 단지 비싸다고만 생각했다. 다녔던 곳의 대부분은 짧은 영어와 몸짓으로도 충분히 소통이 가능했고 여행을 도와줄 가이드가 필요치 않았다. 하지만 자유 여행이 가능한 이유는 이미 돈 대신 필요한 것이 많았다. 소통이 가능한 나라를 여행하는 조건, 다른 나라 사람에게 적극 다가갈 용기, 여행하는 곳의 역사책을 읽는 사전 지식 같은 것 말이다. 돈 때문에 패키지여행을 배제하도록 한 가난도 일종의 구속인 셈이다.


내가 경제적 독립을 쟁취한 뒤에 처음으로 해외를 갈 수 있었기에 패키지여행은 선택지에 없었다. 몽골 여행도 자유 여행이 가능했다면, 몇 푼 아끼고자 패키지여행을 선택하지 않았을 테다. 자유라는 긍정 관념으로 위장한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패키지여행으로만 얻을 수 있는 참된 구속, 나의 정체성을 또렷이 알게 되며 다른 사람과 관계 맺기와 배려, 책임 있는 자유가 패키지여행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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