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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날

by 김정욱 Feb 05. 2025

3-11.  연숙은,


  장바구니를 두 팔로 감싸안고 집으로 내달렸다.

  45도 경사진 언덕을 올라 빌라 3층까지 숨이 턱에

도록 뛰었다.

  찬거리를 사러 나갔다 이웃집 언니를 만나 잠시 얘기를 나눈 것이 그만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6시 50분이면 민오가 현관에 들어 설텐데, 저녁식사 준비시간이 40분밖에 남질 않았으니 큰 일이다.  퇴근 하자마자 식탁은 차려져 있어야 했고, 된장찌개는 때 맞춰 보글보글 끓고 있어야 했다.

  연숙은 재빠르게 몇가지 일을 동시에 시작했고 끝내고 또 시작했다.


  "딩 - 동"


  절대 민오 스스로 문을 여는 법이 없다.

  벨소리 한 번에 문을 열어야 하고, 문 앞에 서 있다가 맞이해야 하는 것이 이 집만의 법.

  가장이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가족 모두는 현관에 기립하여, 누구 한 사람도 인상 쓰는 일 없이 맞이 인사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이 지구상에서 오직 이 집에만 있는 법은 이것 말고도 양손가락 꼽을 정도가 있는데, 식탁에서는 누구도 말을 해서는 안 되고, 음식 먹는 소리가 나도 안 되는 것도 그 중 하나였다.

  

  진아가 어쩌다 "엄마 -" 하면서 무심결에 말이 나온 적이 있었는데, 그 날은 저녁을 먹을 수 없는 거는 물론이고 어른 말을 새겨 듣지 않는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아빠를 무시하니 어쩌니 온 세상이 시끄럽게 되는 것이다.  진아와 연숙은 둘만 있으면 재미나게 얘기도 잘 하고 웃다가도 민오만 집에 있으면 두 사람도 입을 딱 붙이고 만다.  남편 스스로 제 입지를 뾰족하게 깍아 올려 불안하고 외롭고 고독하게 만드는 것이다.


  다른 집들은 딸과 아빠 사이가 화기애애, 러브러브 하지만 우리 집에서는 먼 나라, 딴 세상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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