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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래 Oct 13. 2021

한국어 학급의 최대 경사, 한글날

한국어 학급의 일상

  초등학교 학급 교육과정은 달력과 맞물려 돌아간다. 교육과정이란 본디 한 해의 계획이기에 시간의 흐름과 뗄 수 없다. 그런데 교육과정 내용 역시 떼려야 뗄 수 없다. 그 이유는 달력에 적힌 많은 것들이 수업 주제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생각보다 훨씬 촘촘하게 많은 기념일은 아주 훌륭한 주제다.


  일반적으로 초등학교에는 계기 교육이 있다. 특정 명절, 기념일이 다가오면 그에 대해 학습을 한다. 계기에 맞춰 교육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추석 즈음이면 추석 이름의 유래와 역사를 배우기도 하고,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는다. 추석 명절의 과거와 현재 모습을 비교하기도 하고 외국의 명절을 찾아보기도 한다. 하나의 계기를 통해 무궁무진한 활동을 한다.


  내 책상 위의 탁상달력의 페이지가 어느새 많이 넘어갔다. 절반이 훌쩍 넘어 3페이지만 남았다. 10월에 이르니 한국어 학급 최대 기념일이 보인다. 한국어 학급의 최대 기념일은 설날도 추석도 아니다. 한글날이다. 한글은 한국어 학급의 근원이자 모태이기에 어떠한 기념일보다 더 의미 있다. 개천절, 석가탄신일, 크리스마스와 같다. 최대 기념일에 맞추어 한국어 학급 아이들을 위한 수업을 준비하다 보니 한국인인 나도 모르던 한글날의 이야기가 많았다.


1. 한글날의 의미


  한글날은 세종대왕이 1446년 훈민정음해례본을 통해 한글을 반포한 날을 기리는 기념일이다. <세종실록(世宗實錄)> 28년(1446) 9월 조의 ‘이달에 훈민정음이 이루어지다(是月訓民正音成).’라고 한 기록을 근거로 하였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북한도 한글날이 있는데 북한의 한글날은 의미가 조금 다르다. 대한민국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반포한 날을 기준으로 하였다면 북한은 한글을 창제한 날을 기준으로 한다. <세종실록(世宗實錄)>의 1443년 12월 30일 자의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으셨다.’의 기록을 근거로 날짜도 정했다. 기록의 날짜가 정확하지 않으니 1443년 음력 12월 15일을 양력으로 바꾼 1월 15일을 기념일로 한다고 한다. 반포한 날과 제작한 날 중 어느 날을 기념해도 한글날로써 의미가 있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론 한글이 백성을 위한 문자로 출발한 것을 생각해보면 반포한 날을 기념하는 것이 취지에 맞다고 생각한다.  


2. 한글날의 역사


  한글날의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다. 한글날이 처음 정해진 것은 1926년이다. 조선어학회(현 한글학회)의 주도로 음력 9월 29일이자 양력 11월 4일을 ‘가갸날’로 시작했다. 날짜는 <세종실록(世宗實錄)>의 한글 반포 기록을 기준으로 하였고 ‘가갸날’의 명칭은 아직 한글이라는 명칭이 공식적으로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글의 첫 완성자 가갸를 사용했다고 한다.


  1928년엔 주시경이 만든 ‘한글’이 보편적으로 사용되어 ‘가갸날’에서 ‘한글날’로 명칭이 바뀌었다. 얼마 뒤 1931년은 음력이 아닌 양력 날짜로 바꾸면서 10월 28일로 정해졌다. 이 과정에서 음력-양력 계산 차이로 10월 29일이었다가 한 번 더 바뀌었다.


  1940년 지금의 한글날이 완성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훈민정음해례본이 최초로 발견되었다. 그 안에 한글이 완성되고 반포된 시기가 기록되어 있었는데, ‘정통 11년 9월 상한(正統 十一年 九月 上澣)’에 정인지가 썼다고 되어 있었다. <세종실록>의 9월 이달이라는 시기에서 9월 상한 이라는 시기로 특정된 것이다. 그래서 1945년 광복 후 ‘9월 상한’을 9월 상순의 끝인 음력 9월 10일로 잡고 그것을 다시 양력으로 환산한 10월 9일을 한글날로 정했다. 이 당시 광복 후 민족의식을 높이고자 하는 의도와 맞물려 한글날을 국가적으로 기념했다고 한다.


  한글날은 다른 기념일에 비해 변화가 많았다. 앞서 본 대로 명칭과 날짜의 변화와 중요도의 변화가 있었다. 내 어린 시절 기억으론, 작년에는 쉬었던 한글날이 올해 갑자기 안 쉬는 날이 된 적이 있다. 똑똑히 기억하는 이유는 내 생일이 한글날과 비슷했기 때문에 한글날을 내 기념일처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글날을 쉬면서 마치 대한민국이 내 생일을 축하해주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쉬지 않았다. 서운했던 게 기억난다. 자료를 찾아보니 그때가 1990년이다. 당시 인식으로 공휴일은 산업 생산에 방해가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공휴일을 축소하게 되었고 한글날이 제외 대상이 되었다. 다른 기념일에 비해 중요도가 낮았던 것이다. 그러다 2006년, 한글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다시 공휴일로 편입하게 되었다.


3. 한글날의 의미


  세계적으로 문자를 기념하는 날을 성대하게 하는 나라는 없다. 유독 한글은 크고 작은 부침 속에서 살아남아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을까? 한글은 다른 언어와 달리, 만든 이와 시기가 명확하다. 그래서 기념일을 제정하기에 좋은 조건이다. 하지만 단순히 명확하다는 그 이유보다 더 큰 이유가 있다. 한글의 의미 때문이다.


  한글은 모두를 위한 것이다. 남녀노소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평등하게 사용할 수고 한글을 사용하면서 모든 사람이 어우러진다. 만민을 평등하게 대하는 홍익인간을 건국이념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철학과 딱 맞다. 더욱이 대한민국은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민족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커 한글은 그 자체로 상징적이다.


  한글은 한국 문화의 집약이다. 많은 무형·유형의 문화의 원형이며 토대다. 한글을 사용해 문화를 창조하고 전수하기에 한글은 문화를 담는 그릇이다. 최근 K-Culture가 세계적 관심을 받고 있는데 세계인의 관심이 영화, 음악에서 멈추지 않고 한글을 익히거나 한국어를 배우는 것으로 이어지는 이유는 한국 문화의 밑바탕이 한글이기 때문이다. 한글날은 곧 한국문화 기념일이라 할 수 있다.


  요즘 어느 때보다 한글날에 큰 관심이 있다. 한국 문화를 조금이라도 접한 모든 세계인이 즐길 수 있는 기념일이 된 것이다. 앞으로도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한글로 이어져 한글날이 세계인의 축제가 될 길 바란다. 다만, 우리 반 아이들에겐 이 마음이 전해지지 않은 것 같다. 내 설명에 시큰둥하다. 하긴 매일 머리 싸매고 공부하는 한글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을 것이다. 한글 미술 작품이나 만들자 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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