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09. 03
그저께부터 목감기와 몸살이 함께 들이닥쳤다.
온몸이 쑤시고 특히 어제부턴 온몸의 감각이 너무 예민했다. 살갗을 한 겹 베어낸 상태로 생활하는 것만 같았다. 공부에도 집중이 안 됐고 앉아서 뭔갈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주말엔 푹 잔 다음, 병원에서 약을 받아 왔다. 약 처방 후에는 바로 카페에 갔다. 카페에선 계속 집에서 누워있고 싶단 생각밖에 없었다. 너무 아팠다.
도통 집중이 되지 않아 2시간 정도 꾸역꾸역 참다 집에 왔다. 오늘은 참 운도 따라주지 않았다. 점심을 먹으러 나가니까 맞춘 듯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또 첫 번째로 간 식당은 개인 사정으로 문을 닫았고, 두 번째 식당도 브레이크타임이었다. 뜨겁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겨우 갔는데, 울화가 치밀었다. 몸이 아파서인지 더 화가 났던 것 같다.
점심을 먹을 때 엄마와 이야기를 나눴다. 요즘 내가 하고 있던 생각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러고 보니 나는 너무 안 쉬네? 미래에도 이렇게 열심히만 살면, 그건 나에게 너무 가혹한 거 아냐? 나는 이렇게만 살고 싶지는 않은데..’
이 생각 속에는 현재 내 행동 패턴이 미래에도 반복될 것이라는 믿음이 담겨있다. 그 후, 쉰다면 어떻게 쉬고 싶은지도 생각을 해봤는데, 떠오르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나에게 왜 이렇게 못살게 구는 거지? 내 미래에 쉬는 모습은 왜 없는 거지?
…
쉬는 순간도 있어야 하지 않나?‘
나는 현재 내 삶에서 쉼을 전혀 느끼지 않고 있었다. 매번 달리는 나만을 느낄 뿐이었다. 이것을 마주하자 무언가 잘못됐음을 느꼈다. ’쉬어야 하지 않나‘ 생각했다.
‘쉼’ = ‘생각하지 않는 것’
나는 지금까지 쉰다는 것을 이렇게 정의해 왔다. 그렇기에 유튜브를 보거나 웹툰을 보거나, 현재에서 벗어나 아무런 잡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 나에겐 쉬는 것이었다. 아주 늘어져 누워있는, 정말 몸도 생각도 멈춘 것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한 시간 이상이 되면 —사실 한 시간이 되기 전에도 계속 시간을 확인한다. 남아있는 계획에 대한 찝찝함에 의해— 쉼은 본래의 뜻을 잃었다. 그 후로 쉼은 무언가에 쫓기는 상황에서, 그것을 애써 외면하고 도망치려는 발버둥이 되어버렸다.
진정한 쉼을 느끼는 시간은 줄어만 갔다. 나는 내가 나에게 너무 가혹한 것 같다는 생각까지 했다.
‘쉬고 싶은데, 쉰다는 게 뭔지 모르겠어.’
이런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채울 때, 나는 아프기 시작했다. 여태까지의 단서들로 난 내가 오늘 이렇게까지 아팠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1. 나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 쉬는 것이다.
2. 현재 나는 내가 쉬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3. 쉬지 않는 현재가 잘못됐다고 느낀다. (쉬어야 한다고 느낀다)
쉬어야 한다고 느끼는데 여러 요소들로 나는 너무 바쁘다. 아무 생각 않고 쉬기에는 나는 너무 할 일이 많다. 그런 내가 쉬기 위해서는?
별생각 없이 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으면 된다.
그 쉼은 바로 감기였다.
나는 감기 바이러스가 뛰놀 수 있는 상황을 손수 만들어 준 것이다. 그렇게 아파버리니, 공부 생각도 뒷전으로 옮겨갔고 그저 자야겠단 생각뿐이었다. 잠도 많이 안 왔지만 움직일 수가 없어서 누워만 있게 됐다. 오한 때문에 침대 밖에 살을 내비칠 수도 없었다. 정말 믿기 힘들지만, 아파서 누워있는 행동은 내가 생각해 온 쉼에 딱 들어맞았다. 나는 그렇게 아픈 동안, 내 정의대로의 쉼을 아주 충실히 해낸 거다.
이렇게 아프니, 내가 쉴 수 없는 이유인 공부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공부를 하는 건 에너지를 쓰며 열심히 사는 거니까, 쉬는 것관 완전히 반대의 주제다. 내가 쉬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공부가 가장 크니까, 이렇게 열심히 하는 이유에 관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 생각하면서 공부는 왜 열심히 해야 할까? 공부는 왜 해야 할까?
나는 거창한 의미들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 간단한 것이었다.
나는 공부를 하면서 내가 멋있다고 느낀다.
힘든 순간에도 포기 않고 끊임없이 탐구하고 해가는 나를 보면 정말 멋있다고 느낀다. 결과적으로 자존감도 높아지고 나를 아낄 수 있게 된다. 머리 싸매고 고민한 시간이 허무할 정도로 간단한 이유다. 하지만 이전에 생각해 낸 여러 의미들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동기부여가 됐다. 이게 진짜 이유였던 거다. 긴 말없이, 이것을 떠올리자마자 공부가 하고 싶어지는 이유. 그것들을 하는 내 모습이 멋있으니까. 그리고 지금의 나는 쉬는 대신 멋진 내 모습을 보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쉼은 사실 지금 필요하지 않았다. 또 통념적으로 쉬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였다.
쉰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그냥 내가 평온하면 되는 거 아니었던가.
그저 내 느낌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놓치고 있던 쉼이 너무 많은 것 같다. 글을 쓰는 것도, 그림에 푹 빠지는 것도, 배부른 채로 산책을 하는 것도, 슈와 노는 것도, 맛있는 걸 먹는 것도. 나에겐 당연한 것들이 행복이었다.
오늘 정말 다사다난했다. 나에게 쉰다는 의미가 이렇게 좁았다는 것, 아팠던 건 나의 쉬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단 것. 공부를 하는 이유까지도.
이것들을 모두 생각하고 정리하니, 약으로도 어떻게 되지 않던 열이 내리고 머리가 안 아프고 예민한 몸도 가라앉았다.
사실 나도 안 믿긴다.
도대체 생각이란 게, 믿음이란 게 이렇게까지 몸을 아프게 할 수 있다는 것. 아마 대부분 이해하지 못할 거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동안 직접 경험한 나조차 아직 어안이 벙벙하니까. 혹시나 저녁에 먹은 약의 효과가 지금 나타난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도 하면서.
내일 일어나서 몸상태를 꼭 살펴봐야겠다. 정말 내일 아프지 않으면, 생각의 힘이라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맞이한 아침, 정말 신기할만치로 가뿐했다.
코막힘과 목이 조금 부은 것 빼곤 모두 멀쩡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거지..? 정말 내 생각이 나를 그렇게 아프도록 만들었다고.?
생각의 힘은 정말 내 상상 이상이구나. 생각을 적극 활용해야겠다. 그리고 이 생각들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은 순수한 나만의 느낌(마음)에서 비롯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