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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별 Jul 21. 2023

감정의 시각화

도대체 감정이란 게 뭐길래


우울하다

조금 오랜만에 이 감정에 손을 대는데, 사실 아직도 모르겠다. 내가 정말 우울한 걸까. 하지만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그저 행동하면 언젠가 해결될 것들이 너무 행동하기 싫다는 거다. 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걸까. 해도 안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꽤나 들어차 있어서일까. 아니면 이미 그것에 대한 내 마음이 굳게 닫혀버려서일까. 결국은 해야만 할 것들이다. 지금 회피한다 해도 결국은 강제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 올 거다. 그래서 그런가.. 그렇기에 더욱, 그 강압의 순간이 오기 전까지 마주하지 않으려는 걸까. 성장하고픈 마음이 외면하고픈 마음에게 져버린 걸까.


내 마음을 돌아보지 않은 지 꽤 되었다.

무언가 내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바로 나였다. 어떤 상황이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표현할 수 있었는데 내 불안이 불안을 더욱 많이 만들어내고야 말았다. 사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만들어낸 환상 속으로 스스로 빠져버린 것을. 이 부질없는 환상 속을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만 같다. 맞춰지지 않는 레고를 억지로 조립하는 기분만 그득그득, 들어차있다. 마치 지구 반대편으로 유배라도 당해진 듯, 이렇게나 이질적인 곳에서 아무하고도 말이 통하지 않는 경험을 하고 있는 것만 같다.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데 도대체가 아직도 나는 그 문을 열지 않았다는 거다. 심지어는 아주 가까이에 있을지 모르는 그 문을 찾고 싶은지조차 명확하지 않다. 이곳의 방황을 묵묵히라도 이어가는 것이 아직 내가 이 철렁한 곳에 있고 싶다는 걸 드러내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니 이젠 나 자신을 증오하게 된다. 정말 나는 이곳에서 둥둥 떠다니는 신세로 지내고 싶은 걸까.

나는 이미 문을 열 손잡이를 잡아 봤던 걸지도.


모든 것은 불명확하다.

그러한 것을 해나가며 명확하게끔 만드는 것. 그리고 그런 몰입의 과정을 거치면서 가지고 있었던 불안과 같은 감정들은 사라지게 된다. 너무나 알고 있는 사실이고 나로선 지겨울 지경이다. 그렇기에 정말 미쳐버릴 것만 같고 돌고 돌아 또 자책이란 것을 일삼게 되는 거다. 그리도 쉬웠던 행동이 지금은 왜 그리도 안 되는 건지. 괴리에 부딪힌 내 마음은 또 쉽게 울적해졌다.


감정이라는 게 참 일장춘몽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때는 참으로 힘나던 때였다. 희망에 가득 찬 눈을 가지고선 나는 무엇이든 해내리라 꿋꿋이도 행동했다. 그래서 그 춘몽에 잠겨있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현재의 길을 거니기에도 바쁜데, 개꿈 같은 춘몽에서 허송세월을 보내겠다는 그들의 선택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워낙 내 길을 가는 것에 혈안이 되어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지만, 이해할 필요도 없었지만. 이제는 내가  선택을 한 사람이 되었다.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리도 이해하지 못했던 그들에 포함되어서야, 속하고서야 알게 된 것이 있다. 나에게 이 춘몽의 시작은 선택지조차 없이 자연스러웠다는 것. 정말 예전의 내가 스치듯 보았던 그들은 선택이라는 것을 했던 걸까? 지금 이 사람들에게, 나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


끝도 없이 펼쳐지는 너무나 긴 꿈이다. 몽롱한 하루 속 몽롱한 정신의 흐름은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없게 한다. 아무런 제약이 없어서 정말 아무런 것도 없다고 느끼게 된다. 


그래서 그냥 걸었다.

밤중에도 신호에 맞춰 차들이 오고 갔다. 무엇도 담겨있지 않던 내 눈에 킥보드를 가득 실은 파란 트럭이 흐릿하게 담겼다가 건져졌고 이 깊은 밤에도 버스 한 대는 종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렇게 내 눈에 담겨간 각기 다른 차들 끝에 적막이 도착했다. 이제 내 눈엔 이상하리만치 적적하고 조용한 풍경만이 덩그러니 담겨 있을 뿐이었다. 자연 말고는 느껴지지 않는 공간. 비가 오고 간 흔적을 비추는 달빛이, 공기가 온몸 사이사이로 추적거리며 달라붙긴 해도 덥진 않은 오늘의 밤이, 왜 이리도 좋았던지. 차분하고 습한 오늘의 풍경이 마치 나를 감싸안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랬던 걸지도.


나누었던 대화는 기억이 안 날지언정, 내 눈에 담긴 것들은 생생하리만치 아름다웠다. 그럼에도 나중을 생각하게 된다. 그래봤자, 며칠만 지나면 이 공기는 또다시 여름이란 걸 알려줄 거라는 걸. 오늘은 없었던 일로 여기듯 옷도 바꿔 입을 테고. 이것을 배신이라며 아쉬워할 처지는 아니지. 나도 마찬가지일 거야. 또다시 그 춘몽 속에 존재하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시선 속에서 웅성일 거야.



이 밤에 문자로 이해하지 못할 시시껄렁한 말들을 늘어놓는 친구에게 답장하는 나는 더 희미해진다. 그 친구에게 화나는 건 단순한 화풀이에 불과할 거라 굳이 티 내지는 않았다. 나는 이미 이 글에 화풀이를 하고 있는 중이니까. 화풀이 대상에 그 친구를 포함시킨다면 아마 억울하겠지. 마른하늘에 날벼락같은 상황이려나. 그래도 내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보고 늦게 어딜 다니냐는 친구의 질문에 만큼은 솔직하게 답했다. 그냥 좀 울적해서 걸었다고. 이 걸음이 끝난 지금, 집에 들어오고서 홀린 듯 이 글을 쓰게 된 것도 비슷한 이유일테지. 이 춘몽 속에서 무어라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이것마저 하지 않으면 내 목소리를 잊을 것만 같았다. 나의 숨을 느끼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이 혼란스러운 곳에서 나를 되찾고 싶었다.



이 춘몽은 분명 하룻밤 꿈에 불과할 테지.

문을 열고 나가면 지금의 감정은 대부분 까먹을 거니까. 하지만 춘몽을 꾸는 시간 동안 현실의 시간이 하염없이 흐르고 있다는 건 조금 문제가 된다는 거야. 내가 원하는 건 이게 아니잖아, 그건 확실하잖아. 기억되지 않는 꿈같은 건 이제 그만 꿔야 할 것 같아. 나는 시간 여행자가 아니라서 지나간 시간 같은 것들을 손볼 수가 없고 도저히 넘볼 수가 없으니까. 시간은 날 봐주지 않으니까. 나만 거꾸로인 채로, 점이 되어가는 시간의 뒷모습만 응시한 채로, 남고 싶지는 않으니까. 


내 감정을 서툴게나마 정주행 했다.

이번 춘몽에서 볼 것은 끝났다. 스며든 옷깃의 춘몽마저 글 속으로 증발해 버렸다. 이번 춘몽을 매듭짓고 문을 열어 현실에 발을 디뎌야 할 차례다. 나는 이 춘몽이 더 이상 길어지다 못해 늘어지는 건 원하지 않으니까. 늘어진 카세트테이프는 도저히 무슨 소리인지 알아먹을 수가 없으니까. 이제 새로운 소리를 창작할 때가 되었다는 거야. 



꾹꾹 가둬두었던 우울과 절망과 죄책감 같은 것들을 다 방출하고서야 외면해 왔던, 괴리에 싸인 문을 열 힘이 나는 사람.

난 한순간도 빠짐없이 매번 이런 사람이었다.


나에게 있어 감정의 시각화는 현실을 마주할 핵심 요인이 된다. 느껴지는 현재의 감정을 하나의 대상이나 직관적인 개념으로 연결 짓고 그것들로 가득 찬 나만의 세계를 마음껏 꿈꾸는 행위로 해방감을 느끼는 나. 그러고 나면, 정말 놀랍게도 현실로 통하는 그 문을 열 마음이 동하는 사람이다. 난 나의 감정을 나만의 감성으로 시각화하며 확장하고서야 빠져나올 마음이 동하는 사람.


겹겹이 막아두었던 감정을 게워냈다.
나는 춘몽에 잠들었던 나를 또 한 번 깨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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