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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별 Oct 03. 2023

과거가 필요한 순간


시간이 정말로 너무 없었기에, 불안이라는 쓰나미가 경보 단계에 돌입했다. 그래서인지 지금껏 쌓아온 것들도 한꺼번에 물거품 속으로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도대체 언제쯤 갑작스러운 불안에 말려들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런 말은 조금 오글거리는 것 같기도 하지만, 나는 너무 여리고 약하기만 한 존재 같다.


이번에 윤리와 사상 공부를 하면서 여러 사상가들이 말하는 행복, 또는 불안이라는 감정을 없애는 방법들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덕분에 시야도 넓어졌고 불안할 때 정말로 써먹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난 아직 잘 모르겠더라. 결국 불안이 이겼고, 하루하루의 불안 지수가 너무나도 급변했다.


아직도 불안을 완전히 다스리기엔 덜 능숙한 것 같다.



여기까지 적고선 엄마와 오늘도 마찬가지인 산책에 나섰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큰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 불안은 내 마음에서 나온 거니까
내가 거두어들일 수 있잖아.
그런데 하루 전엔 정말 주체가 안되더라고.
.. 이건 어쩔 수 없는 것 같기도 해.


불안한 내 마음을 어떻게 추스를지, 불안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두며 이야기를 이끌었다. 그러다가 한 가지 알게 되었다.


불안한 이유를 전부 소거해 보니까 전 날 그렇게 불안했던 이유가 정말 하나밖에 안 남던데..

나는 갸웃하며 말을 이었다.

그냥 내가 시험 문제를 모르기 때문에.
그런데,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거잖아.

그럼 이 불안도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거야? 이번처럼 불안해하는 것 밖엔 못하는 거야? 만약 그렇다면 그 기복 때문에 빼앗기는 시간과 에너지가 너무 고통스러워.




그렇게 이야기를 주고받고 하다 보니, 놓치고 있던 부분을 발견했다.


불안을 어떻게 없애지?

나는 어떨 때 불안하지 않지?
나는 어떨 때 만족스럽지?


공부를 해 온 시간만큼, 시험을 봐 온 시간만큼 나는 불안하지 않던 때가 존재했다. 그건 내가 경험해 본 명확한 사실이었다. 그래서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을 완전히 돌려봤다. 불안하지 않던 때를 떠올리는 것. 그러자 답은 너무 쉬웠다.


공부를 하는데 내가 다 안다고 느낄 때.


그런데 이번에 내가 불안했던 건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전부를 했지만 그럼에도 내가 못 한 것이 있을 거라 생각했고, 그 생각의 중심에는 어떤 지문이 나올지 모른다는 불안이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불안은 내가 건드릴 수 없는 부분이다. 나는 불가능한 것을 이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렇게 나를 에워쌌던 그 생각 속에서 한 발짝 물러섰다. 그러고 나니,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었구나’ 싶었다.


흰 도화지에 내가 할 수 있는 한 아름답게 그려놓고서는 불가능한, 이상적인 무언가를 갈망하고 있었다. 노력의 전부를 쏟아부은 나의 작품이 아니라, 그 무언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렇게 보아도 보아도, 볼 수 없는 무언가를 보려 했다.



불안은 내가 느끼는 감정이기에 내가 만들어 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기에 나는 내가 만든 감정이니 내가 다시 수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불안 깊숙한 곳에는, 모순적이게도 내가 수거하지 못하는, 즉 해결이 불가능한 것들이 존재했다. 이것을 알게 되자, 불안을 없애자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부분은 해결책이 정말 없기 때문에.


불안은 없애야 하는 감정이야,
불안은 있으면 안 돼

나는 매번 그렇게 생각했고 불안은 뿌리를 뽑아 삭제시켜야 하는 것으로 인지했다. 그만큼 나는 불안을 극도로 미워했다.


불안을 없애야 하는 것으로만 보면,
없앨 수 있는 방법을 갈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찾아지지 않는 문제도 존재한다. 그럴 때는 불안하지 않았던 과거의 나를 돌아봐야 한다.


과거에 불안하지 않던 나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지?
그때의 나는 어떻게 했더라?

오늘 이 질문은 내게 정말 중요했다. 경험은 무엇보다 확실성을 가지니까.


새로운 문제 해결 방법이 있을 거란 가정은 더욱 그 불안만 생각하게 하고, 더욱 그것에 파묻히게 만든다. 불안하지 않던 과거의 나를 떠올리고, 어떻게 살았는지를 돌아보는 것은 무엇보다 내게 맞는 방법을 알게 한다. 결국, 나에게 해결책이 있었다는 거다. 불안해서 나를 믿지 못한 게 아니었다. 나를 믿지 않아서 불안했다.


오늘은 그 무엇보다 과거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과거를 보고서, 나는 나를 믿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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