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학년 교사의 시간
8월의 어느 날, 발령소식과 함께 임명장을 수여받았다.
‘드디어 나도 선생님이 되는구나!’
설레기도 했지만, 걱정도 가득했다. 4년 간 실습을 통해 아이들을 만나고, 수업시연도 해봤지만 학급을 운영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학부모님이나 학생들한테 저경력 티 내지 마."
먼저 발령이 났던 선배들의 조언에 바짝 긴장을 했다. 풀세팅한 정장을 입고, 구두를 삐걱이며, 도보로 헐레벌떡 출근하는 모습을 누가 중견 교사라고 생각하겠느냐 싶겠지만, 그때는 그렇게 하면 어른스러워 보일 줄 알았다.
갓 발령 났지만, 노련한 교사처럼 보이고 싶었던 나는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잡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어디서 주워들은 ‘첫날, 첫 주는 웃지도 말고 확실히 잡아야 돼.’라는 말을 염불 외우듯 입 속으로 되뇐 채 교실에 들어섰다. 내가 맡게 된 아이들은 40년간 근무 후 퇴직하신 선생님이 1학기 동안 지도해 주셨던 반이었다.
‘만만해 보이지 않겠어!’
교실문을 열자, 먼저 도착해 있던 아이 몇 명이 날 호기심 어린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선생님이 이제 우리 반 선생님이에요?”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고개를 치켜들며 여유로운 척 대답했다.
“흠흠. 네, 선생님이죠.”
다행히 이전 선생님이 잘 지도해 주신 덕분에 아이들은 나의 별다른 지도 없이도 조용히 아침 독서를 했다. 쉬는 시간에도 저희끼리 삼삼오오 모여 종이 접기나 그림 그리기를 하며 놀았다.
‘아, 혼낼 게 없잖아!? 애들이 너무 말을 잘 듣네... 어떡하지?’
천방지축일 줄 알았던 아이들이 너무 말을 잘 들어서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점심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내게 물었다.
“선생님, 평소처럼 손 씻고 줄 서요?”
“어?! 으, 응...”
아이들은 나에게 누구부터 먹을 차례인지 알려주기도 하고, 내 손을 잡고 따라오라며 급식실 위치도 알려줬다. 나는 그렇게 1학년 아이들의 친절한 안내 속에 점심식사를 했다. 밥을 먹고 나서도 교실로 들어와 어색함에 컴퓨터만 두드렸다.
‘이렇게 하루가 끝나는 건가...’하는 생각도 잠시, 5교시 시간이 다가왔다. 28명으로 가득 차야할 교실은 절반 정도의 아이들밖에 없었다.
‘옳지! 이거다! 군기를 확 잡아야겠어!’
나는 있는 힘껏 무서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아이들에게 얘기했다.
“지금 안 온 친구들은 모두 어디에 있는 거죠!?”
“놀이터요!”
“데려올까요?”
나는 ‘선생님 지금 화났어!’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눈치 빠른 아이들이 친구들을 쏜살같이 데려왔다.
“지금 들어오는 친구들은 모두 교실 뒤편에 서세요.”
나는 마지막 한 명이 도착하는 그 순간까지 무서운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교실에는 정적만 흘렀다.
‘좋아! 나 지금 아주 무서운 선생님 같겠지!?’
마지막 아이가 교실 뒷문을 빼꼼 열더니 내 손짓에 뒤편으로 섰다. 56개의 두려운 눈망울은 몸을 베베 꼬며 내가 무슨 말을 할지만 기다렸다.
“여러분, 선생님은 약속을 안 지키는 사람을 아~주 싫어해요.”
“네~”
‘아냐, 그거 아냐. 너무 착하게 대답하지 말란 말이야.'
“흠흠, 뒤에 서있는 친구들, 대답해 보세요. 우리는 5교시 수업이 있어요. 그. 런. 데. 지금이 몇 시죠!?!?!?!?”
내 질문에 아이들 시선이 모두 교실 시계로 향했다. 시계는 수업시작 시간을 훌쩍 넘어 1시 1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교실 뒤편의 아이들은 시계를 보더니 고개를 연신 갸웃거렸다.
“1시?”
“3시?”
"모르겠어요."
터질 것 같 던 내 얼굴은 바람 빠진 풍선이 되었다가 이내 홍당무가 되어버렸다.
“여, 여러분, 시계 볼 줄 모르나요?!........ 그렇겠네? 그렇구나?!”
당황한 내 질문에 축 처진 세모 눈썹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는 아이들. 아이고야, 나 진짜 실수했구나. 시계도 볼 줄 모르는 꼬꼬마 녀석들을 데리고 나는 똥 군기나 잡으려 한 꼰대 교사였던 것이다. 그것도 발령 첫날부터.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얘들아, 선생님도 교사가 처음이라. 그때는 정말 미안했어.’
[이해를 돕기 위한 정보: 각 학년 교육과정에서 배우는 것]
1학년 : 몇 시, 몇 시 30분(몇 시 반) 개념 알기
2학년 : 몇 시 몇 분 개념 알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