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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자장가 소동

3월 초 1학년 점심시간

by 온 아무

초등학교에서 주어지는 점심시간은 보통 1시간 내외이다. 10분 정도 주어지는 쉬는 시간과는 차원이 다른 보상(?)에 누구보다도 점심시간을 기다리지만, 아쉬운 것은 1학년은 스스로 시계를 볼 줄 모른다는 것.


그래서 맛있는 메뉴라도 식단표에 쓰여 있는 날이면 어떤 학생들은

아침활동이 끝나자마자 점심시간이냐 물어보고,

1교시가 끝나도 점심시간이냐 물어보고,

점심시간이 올 때까지 점심시간을 물어봐서, 나는 미안하게도 '점심시간이 아니라는 잔인한 현실'을 수도 없이 알려주어야 한다. (질문.. 그. 그만....)


"점심시간입니다. 책상 위 정리하고 손 씻고 줄 서세요."


그렇게 고대하던 점심시간을 알리면, 아이들의 설렘은 분주함으로 바뀐다. 보통 15분 타이머를 켠 뒤 손을 씻고 줄을 설 수 있도록 안내하면 아이들은 그 15분 동안 치열하게 바글바글한 복도를 뚫고 화장실에 가서 줄을 서고(그 와중에 쎄쎄쎄를 하고), 손을 씻고(그 와중에 비누거품으로 장난을 치고), 교실로 돌아오면 45분 정도가 남는다.


자, 이제 45분 남았으니 급식실에 가면.... 아이들은 1시간 동안 밥을 먹는다.....(!?!??)


시간 계산법이 이상한 것 같지만 일학년의 시간은 이렇게 흘러간다. 젓가락질로 고군분투하는 아이, 밥알을 세고 있는 아이, 연신 불난 입을 식히며 물 마시러 27번 정도 왔다 갔다 하는 아이, 입속에서 무한 생성되는 음식을 주체 못 하는 아이 등 각양각색의 이유로 학기 초에는 점심시간을 초과해서 밥을 먹는다. 놀랍게도 수업에 늦어도 아이들은 개의치 않는다. 왜냐고? 우리 반에 걸려있는 아날로그시계를 볼 줄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Cf: 학기 초가 지나 디지털시계를 사주시는 학부모님도 계시는데, 게임기능이 있는 워치는 비추한다. 그 안에 들어있는 게임이 하고 싶어서 수업에 집중을 못한다.


원래 식사 속도가 느린 나로서는 식단표에 짜요짜요나 요구르트 같은 것이 나오면 거의 전교 꼴등으로 밥을 먹게 된다. 아무리 비장의 무기인 가위를 지참한 뒤 고군분투 해도 중간중간 쏟아지는 문제, 다툼 등을 해결하다 보면 밥을 절반도 못 먹고 버리게 된다.


그럴 땐 꼭 어렸을 적 나처럼 밥알을 세고 있던 마지막 학생 한 명이


"선생님은 왜 밥 남겨요?"라고 물어본다. (선생님도 먹고 싶어..)


마지막으로 녀석의 식판을 검사한 뒤 손에 대롱대롱 매달듯 나오며 급식실을 탈출하곤 한다. 초조한 내 마음과 달리, 어느새 하나 둘 내 주변으로 모인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엉거주춤 걸어가다 보면 수업시작 시간을 넘겨 교실에 도착하기 일쑤다.


그렇게 점심시간이 끝나면 3월은 이 닦을 틈도 없이 5교시가 시작된다. 1학년도 5교시를 하나요? 종종 받는 질문이지만 일주일에 3회 이상 운영을 해야 정규 수업 시수를 빠듯하게 소화할 수 있다. (학교에 따라 3월 입학 초기 적응활동 기간에 오전 수업만 운영하는 학교도 있다.)




그날도 학기 초의 그런 날이었다. 빠듯하게 점심을 먹고 난 뒤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나른한 오후. 창가로 들어오는 따사로운 햇살에 아이들은 일광욕하는 고양이들 마냥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한 명이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자 도미노 넘어가듯 너도 나도 하품을 했다.


“여러분~ 졸려요?”


물어 뭐 하랴. 꿈뻑꿈뻑 눈을 비비며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 중 한 명이 물었다.


“선생님, 학교는 낮잠 왜 안 자요?”


아직 유치원(혹은 어린이집)에서 낮잠 자던 티를 채 못 벗은 질문.


“학교는 원래 낮잠 시간이 없는데 어쩌지요?”


이그. 궁색한 대답이다. 원래라는 게 어딨나. 이 세상에 원래라는 건 원래 없다.


“선생님, 졸려요.”


졸려하는 아이들 데리고 10분 더 공부한다고 인생이 얼마나 달라지랴. 그래, 못 나간 진도는 내일 좀 더 나가지 뭐.


“얘들아, 그럼 우리 딱 10분만 자고 청소하고 갈까요?”

“네!!”

“안 자는 사람 있으면 다시 공부할 거예요~!”


마음에도 없는 엄포를 놓으며 아이들을 바라봤다. 자리를 돌아다니며 잘 자나 둘러보는데 나은이가 소곤거리며 말했다.


“선생님, 자장가 불러주세요.”

“자장가?”


끄덕끄덕-


아이도 없는 나에게 자장가만큼 낯선 게 또 있겠느냐마는...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곡 하나. ‘엄마가 섬그늘에’였다. 나는 별생각 없이 나은이 옆에 쪼그려 앉아 나지막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그때였다.

옆에 있던 훈이 표정이 심상치가 않다. 잔뜩 찌푸린 미간, 벌렁벌렁 넓어진 코평수. 커다란 눈동자에 눈물방울이 가득 맺혔다. 이내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린 중저음의 굵직한 울음소리가 교실에 울려 퍼졌다.


“으엄-마--아아아 보고 싶어------- 으어엄-므 아아 아----------- ”


‘울음소리 + 엄마’라는 훈이의 자극은 도화선이 되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온 교실을 울음 폭탄으로 만들었다. 스타카토처럼 한 음절 한 음절 엄마를 부르며 어깨춤을 추는 녀석들까지.

.

.

.

.


‘....... 얘... 얘들아.... 너희 엄마 돌아가신 거 아니라.. 그냥.. 선생님이 노래 부.. 른 건데...’


이렇게 깨우려던 건 아닌데... 공포의 ‘엄마가 섬그늘에’ 때문에 꿀 같은 5교시의 10분은 진땀 나는 10분으로 바뀌었다. 나는 그 뒤로 다시는 아이들에게 ‘엄마가 섬그늘에’를 들려주지 않는다.


절.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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