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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Feb 07. 2023

뉴질랜드 크루즈 여행은 이렇더라.

2주간의 항해를 마치고.

지난 1월 크루즈 여행을 다녀왔다. 호주 멜번을 출항해서 뉴질랜드를 남섬부터 북섬까지 돌아본 뒤 다시 멜번으로 돌아오는 2주의 일정이었다. 시드니에서 출항해 인도양의 몇몇 섬들을 둘러보는 카니발호를 탔던 첫 크루즈 여행 뒤 (코로나가 막 발발하던 4년 전이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집에 도착하고 보니 전 세계로 번지는 코로나와 특히 일본 크루즈에서 발병한 코로나가 큰 뉴스가 되고 있어 얼떨떨했던 기억이 있다.) 두 번째이다 보니 좀 더 파악이 되고 여유도 생겨 이런 종류의 여행에 대해 간단히 정리를 해보고 싶어졌다.

멜번항에 정박해 있는 프린세스호. 3500명의 승객과 1500명의 스탭들이 일하는 초대형 크루즈다.

1. 크루즈는 비싼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객실의 등급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리는 밑에서 두 번째 등급이랄 수 있는 창문이 있는 3인용 객실을 예약했다. (최저가의 객실은 창문이 없는 내부의 객실이다.) 수백 개의 객실이 있는 만큼 남아도는 객실을 채우기 위한 세일이 일 년 내내 있는데, 심지어 방학이라 성수기인 지난 1월 조차도 50% 세일가에 예약이 가능했다. 수십 개의 크루즈 할인 여행사를 구글에서 서치 할 수 있다. 미국계열 대행사가 많고 영어를 주로 쓴다. 성수기가 아닐 때는 80% 세일가도 흔하게 보인다. 내 주변의 은퇴한 호주 노인들 중엔 크루즈 마니아들이 종종 계신데, 이런 상품을 찾아다니며 호화호식 여행을 저렴하게 다닌다. 잘 찾아보면 한국 여행사의 패키지여행 가격으로도 크루즈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단, 출항지까지 가는 비행료가 추가되겠지만.)

객실은 널찍하고 안락하고 하루에 2번씩 청소도 해주어 매우 편안했다.
여객 터미널에서 간단한 출국 수속을 하면 동그란 버튼 모양의 승선 신분증을 주는데, 크루즈 내외부의 정보를 터치 스크린으로접속,  예약하고 신용카드를 대체할 수도 있어 간편하다.
승선 수속이 끝나면 트렁크는 스태프들이 객실로 날라다 주고 우리는 바로 환영을  받으며 배도 둘러보고 크루즈를 시작한다.
저녁을 먹고 수영장 옆의 선배드에 누워 영화를 보며 망망대해의 석양을 감상했다.

2. 크루즈 배마다 다른 개성이 있다.


카니발과 프린세스호를 비교하자면 전자는 어린아이가 있는 가족들이 이용하기에 좋다. 초대형 수영장과 워터파크가 있고 아기들을 돌봐주는 시설이 있고 온 가족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디. 프린세스에도 이와 유사한 시설과 프로그램이 기본적으로 있지만 어른들이 조용히 편안하게 휴식하는 것에 좀 더 집중하고 있어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프린세스호를 처음 탔을 때 노약자가 많아서 놀랐다. 휠체어를 타고 가족이나 간병인과 여행 중인 이들도 종종 눈에 들어왔다. 좀 심심한 듯 하지만 개인적으론 이번에 탄 프린세스호가 더 마음에 들었다. 배 구조상 인파가 잘 분배되어 덜 소란스럽고 레스토랑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일들도 거의 없었다. 목적지를 보고 고르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배마다 누구를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짜고 서비스를 하는지 알아볼 필요도 있다.

첫날밤, 선장이 주관한 환영 샴페인 파티. 첫 크루즈땐 모든게 새로웠는데, 어느새 여유가 생겨 한잔 얻어 마시며 사진 찍고 나 좋은데로 논다.
아침 저녁으로 갑판을 산책하며 바다를 즐겼고 구석에서 조용히 책을 읽기도 했다.

3. 크루즈엔 유익한 프로그램이 많다.


멜번에서 뉴질랜드의 첫 항구에 도착하기까지 3일 동안 배 안에서 무엇을 할까? 여행 동선을 짤 일도 없고 숙소를 옮길 일도 없고 끼니를 걱정할 것도 없으니 하루가 오롯이 내 앞에 놓여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체조, 댄스, 건강 세미나, 아트 경매 등등 모든 분야를 망라한 프로그램이 문화센터처럼 운영된다. 

내 경우엔 매일 저녁 극장에서 하는 뮤지컬 마술쇼 콘서트등 다양한 공연을 즐겼고 뉴질랜드 현지인이 하루에  한 곳 씩 정해 앞으로 여행할 도시의 역사나 문화등을 소개하는 세미나에 참석했다. 낼모레면 도착할 그 도시의 현지인만 아는 작은 갤러리나 아이스크림 집까지 상세하게 안내해 주니 얼마나 유익한가!

마오리족 여인이 독특한 춤과 음악으로 그들만의 문화를 소개했던 것도 좋았고, 25년간 크루즈를 탔다는 필리핀 수석 셰프가 직접 주관한 쿠킹쇼도 그들만의 애환이 느껴져 애틋하고 감동이 있었다. 비이탈리안 최초로 이탈리아 요리 협회 전문가 자격을 받았다는 화려한 경력의 그는 그야말로 밑바닥에서 눈물로 요리를 시작해 수십 명의 요리사를 지휘하는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5천 명의 세 끼니를 매일 마련한다는 것이 보통 일인가! 배를 탈 때 보니 쇼핑한 식료품만 대형 컨테이너로 수십대였다. 크루즈의 최고 지도자인 선장과의 대화 시간엔 질문과 대답이 끊이질 않았다. 은퇴할 나이가 지났다는 노신사가 5천 명의 인생을 책임지며 배를 모니 그의 어깨는 또 얼마나 무거울까? 그의 소탈함과 정연한 말솜씨 넘치는 유머를 들으며 멋진 리더 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냥 흥겹게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슬슬 이동하며 배 안에서 일하는 이런저런 현장의 사람들을 만나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크루즈의 재미랄 수 있겠다.


4. 밥밥밥


그러나 누가 뭐래도 크루즈의 최대 매력은 밥일 것이다. 삼시세끼 새참 야식까지 원하는 대로 세계각국의 진미를 최고 수준의 셰프가 요리해 주니 말이다. 멜번에서 이런 코스 요리를 이런 서비스를 받으며 먹자면 100불 이상은 내야 하지 않을까? 메뉴판을 보고 가격 걱정 없이 먹고 싶은 대로 다 시킬 수 있으니 먹으면서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나중엔 이런 정찬이 지겨워 덱에서 피자 한 조각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난 대식가가 아님에도 먹은 것만 따져도 본전 뽑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4.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이유는?


크루즈 여행에서 찜찜한 건 빈국의 저임금 노동자가 열일을 한다는 것일 게다. 대부분은 필리핀등 동남아시아 혹은 루마니아등 동유럽에서 온 노동자들이다. 카니발을 탔을 땐 젊은 노동자들이 지쳐 빠진 얼굴로 애써 웃으며 엄청난 일을 하고 있어서 당혹스러웠다. 프린세스호의 노동자들은 다행히 한결 여유로운 모습이었는데 20년 이상 배를 탔다는 중년의 웨이터들도 많았다. 일 년 중 10달은 일하고 두 달은 쉰다는 이들은 코로나로 2년간 배를 못 탔을 때 힘들었다며 다시 배로 돌아와 너무 좋다고 했다. 끝없는 중노동만이 기다라고 있는 이 배가.

필리핀 젊은 여인이 아침저녁으로 방청소를 하고 나갔다 오면 침대를 정리해 놨다. 시스템을 파악한 뒤 '오늘은 청소 안 해도 됨' 메시지를 문 앞에 종종 남겼다. 그녀의 노동량이 줄었으려나.

도서관에서 책을 보다가 라운지에서 재즈 콘서트를 즐기고 석양을 바라보며 핫스파를 했다.

이 배에는 다국적 승객들이 몰렸으나 호주인이 주를 이루었고 출항지가 어느 곳인지 어느 국민이 주를 이루는지에 따라 분위기가 또 많이 다르다고도 한다. 배 안의 어느 코미디언이 그걸 풍자해서 사람들을 웃겼다. 

한국의 부산항에도 대형 크루즈가 정박한다. 인천항에서 크루즈 서비스를 해보겠다는 정치가의 개발 계획도 있는 듯하다. 어쨌든 기회가 된다면 한 번씩 타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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