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기 Sep 07. 2023

미얀마 '로드 트립' -'바간'으로 가는 길

생애 최고 '럭셔리' 여행이란?

지인이 기사 딸린 렌트차를 타고 호텔로 픽업을 왔다. 바간은 멀어서 아침 일찍 가야 한다며 9시에 출발하자던 그가 10시 넘어서 왔다. 아침 일찍 일어나 체크아웃까지 하고 호텔 마당에서 기다리던 우리는 마땅히 연락할 길도 없어(그는 핸드폰이 없다.) 동네를 몇 바퀴 돌면서 기다렸다. 뒤늦게 나타난 그는 길이 막혔다며 몹시 미안해했고 분주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렌터카가 8인용 기아 카니발인 데다가 에어컨도 잘 나오는 등 예상외로 상태가 좋아 놀랐고 지인의 먼 친척뻘인 기사가 한국말도 잘했다. 그는 한국어는 사무실용(화이트 칼라), 공장용(블루칼라), 교회용으로 나뉘는데 자기는 공장에서 배워 거칠다며 한국어 하기를 쑥스러워했다. 4년을 한국 공장에서 일하며 욕을 먹거나 억울한 일을 당한 건 아닌가 싶어 조심스러웠는데, 내색을 안 하는 건지 좋은 이야기를 주로 한다. 한 번씩 하는 한국말이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였다.

지인의 둘째 딸도 같이 왔다. 대학을 졸업한다는 21살의 아리따운 그녀는 아빠랑 여행을 떠나는 것도 처음이고 양군을 벗어나는 것도 처음이라 했다. 하긴 나도 어렸을 땐 경주로 수학여행 한번 떠나는 것을 얼마나 거창하게 여겼던가.

그렇게 친구 같기도 이방인 같기도 한 특이한 조합의 6명은 2박 3일 바간 여행을 같이 떠나게 됐고 차에 올라탔다. 복잡하던 시내를 벗어나 개통한 지 얼마 안 된 고속도로로 들어서니 사방이 뻥뻥 뚫려 길이 훤했다. 가로등과 도로 표지판이 없는 것을 빼고는 시원하게 잘 닦여 있었다. 그런데 눈을 씻고 봐도 상행이던 하행이던 다른 차가 없었다. 6-7시간을 질주하는 동안 도로가 비현실적으로 거의 비어 있었다. 지인도 기사도 무슨 이유인지 알지 못했다. 호주도 인적 드문 아웃백을 가면 몇 시간을 달리는 동안 다른 차를 못 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보다 더했다. 전세 버스도 아니고 전세 비행기도 아니고 자그마치 '고속도로'를 전세내서 달려본 내 생애 최고의 럭셔리 여행이 아닌가 싶었다.


창밖의 풍경은 대체로 목가적이고 한가롭고 평화로웠다. 좀 더웠지만 하늘은 맑았고 공기는 청량했다. 논과 밭은 비옥해서 이름 모를 작물들이 풍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삶은 팍팍한지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이 즐비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기름진 땅을 보며 처음 3-4시간은 "가난해도 굶는 사람은 없겠구나." 생각했다. 6.25 때 한국에 군량미를 지원했던 나라이기도했으니. 5-6 시간이 지난 뒤부터는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 풍요로운데도 국민이 가난한 이유는 뭘까?"

100% 천연 오가닉 미얀마 뷰티 체험. 어떤 나무를 돌에 갈아 물에 개어 선크림으로 쓴다.

아직도 소나 말, 혹은 물소가 쟁기를 끌어 땅을 갈고 수레를 끈다. 어쩌다 대형 트랙터를 본 적도 있지만, 기계화는 먼 나라 얘기다. 봉이 김선달처럼 물동이를 양쪽에 짊어지고 다니는 이들도 심심치 않게 봤다. 고속도로를 좀 벗어난 어느 구간에서는 길을 닦는 공사 중이었는데, 사람들 손엔 호미 정도의 기본적인 도구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흔한 수레도 없는지 사람들은 시멘트 부대를 어깨에 짊어지고 줄지어 땡볕을 걸었다. 땅을 고르고 모래를 깔고 포장을 하는 모든 과정을 맨몸으로 맨손으로 하는 것이었다. 노동이란 단어가 너무도 고급스럽게 느껴질 만큼 노예처럼 작업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그러니까 미얀마의 어떤 도로는 100% 손으로 만든 핸드메이드, 수제 도로인 것이다. 이 나라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기계 몇 대 들여오면 온 국민이 개고생에서 벗어날 수 있고 생산성을 얼마든지 높일 수 있었을 텐데 그 오랜 세월 나라를 폐쇄하고 서로 싸우는 일에만 열을 올렸다. 다행히 최근 몇 년간 많이 개방되고 있다지만.

마침 이 즈음에 노르웨이 국왕이 미얀마를 방문했는데 군정부가 깔끔한 신수도(나중에 가보니 번듯한 건물만 세워진 사람들이 살지 않는 텅 빈 유령 도시였다.)만 보여주자, '가난한 국민들은 어디다 다 감추고 여기만 보여주는 거냐'라고 항의를 한 것이 기사로 실렸다며 지인이 아침 신문을 읽어줬다.

그런 반정부 기사가 신문에 실리냐고 놀라워했더니 그 정도 언론의 자유는 있다며 또 당연스러워했다. 어쨌든 미얀마가 많이 변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서너 시간을 달린 뒤 점심을 먹기 위해 휴게실에 들렀다. 화장실에 갔다가 기절할 뻔했다. 내가 가본 세상 어느 도시의 공중 화장실 중에서도 최고로 깨끗했다. 변기는 반짝이고 세면대에 물 한 방울 허투루 떨어져 있지 않았다. 너무 깨끗해서 기이 했다. 화장실 청소에 목숨이라도 걸었나 싶었다. 아시아 최빈국 미얀마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이런 화장실을 만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말이다.


군사정부가 관광사업에 투자를 집중하기로 하고 고속도로를 새로 닦으면서 주변 환경에 바짝 신경 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미얀마는 이웃나라인 태국과 비교했을 때 비슷하거나 우월한 자연환경과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음에도 무능한 정부로 인해 손님을 다 뺏긴 처지였는데 뒤늦게 박차를 가하려는 건가.


깔끔한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었다. 식사 체계는 한국과 비슷하다. 주메뉴를 시키면 몇 가지 반찬과 국물이 딸려 나온다. 상추 고추 생가지등 모둠 야채를 멸치젖국 같은 소스에 찍어 먹는다. 국물은 순수한 미원 맛.

한국도 과거엔 그랬지만 이들의 MSG 사랑은 유별나서 국물에 한 스푼 크게 떠서 넣기도 하고 (난 저 하얀 가루가 설탕일까, 소금일까 궁금했는데) 야채를 미원에 찍어 먹기도 한다.


그렇게 장장 7시간을 달려 바간에 도착했다. 막판에 길을 좀 잃어 해가 다 져버렸는데, 바간을 잘 안다며 자신 있어하던 지인이 여기가 어디냐며 당황해하는 것이었다. (GPS도 없던 시절이다.) 하긴 전기가 귀한 미얀마는 해가 지면 사방이 어두워 분간하기가 어렵다. 숙소를 어디에서 찾냐며 정신없어하는데, 차에서 내리니 주변에 있던 낯선 장정 서넛이 나타나 지인을 데리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한참 뒤 나타난 그는 미안해하며 현지인들의 도움으로 두 개의 모텔에 방을 하나씩 간신히 잡았단다. 남은 방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의 우려와는 달리 방은 매우 넓었고 저렴했고 (1박 3만 5천 원) 온수 시스템이 시원찮았지만 괜찮았다.

첫날 물이 안 나온다고 했더니 주인 여자가 와서 고분고분 말을 하며 일일이 손을 봐주고 진심으로 미안해했다. 다음날은 그녀가 와서 손을 봐도 온수가 안 나왔다. 그녀는 늦은 밤 보일러공을 불러 수를 써보는데 달라지는 게 없었다. 근데 그녀가 추레한 보일러공에게도 어찌나 점쟎게 얘기를 하는지 놀라웠고 (갑에게도 을에게도 다른 게 없는 이 사람들의 정중한 태도. 이건 뭐지?) 진심으로 일을 처리하는 게 마음에 들었고, 한낮에 물동이 지고 다니는 이들도 여럿 봤고, 가이드북에서 보니 이 나라 호텔에서 온수가 나온 지도 얼마 안 된 일이라 하고.. 그래서 군말 없이 찬물로 샤워했다. 바간은 겨울인데 낮은 덥지만 밤은 그래도 쌀쌀하다.


늦은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식당을 찾기도 마땅찮았다. 모텔 바로 옆에 밥집이 있어 간단하게 먹었다. 이 집은 식당이라기보다는 옷가게였는데 밥을 달라 사정하니 그럭저럭 차려준다. 옷가게와 식당을 겸업하는 컬래버레이션이라 해야 하나. 미얀마에 가면 소고기 카레를 먹어보라길래 주문했는데 좀 시큼하고 별로였다. 찬이 간소해서 미안했는지 주인장 여인은 자기들이 먹으려 만들었다는 후식도 챙겨 주었다.


하루 종일 붙어 앉아 여러 얘기를 나누며 밥을 같이 먹으며 여행했던 이 이상한 조합은 이렇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바간의 아침. 어제는 깜깜해서 뭐가 뭔지 보이는 게 없었는데 멀끔하고 소박한 마을이 내 앞에 나타났다. 관광지이고 숙박업소가 몰려 있어서인지 아침은 건너편 에덴 모텔 옥상에 가서 먹으라 했다. 길을 건너고 3층 계단을 하나씩 올랐더니 초가지붕에 단출한 식탁이 몇 개 놓인 스카이라운지가 나타났다.ㅎ


식빵과 계란 프라이, 버터와 딸기잼 한 숟갈씩, 수박과 바나나,  믹스 커피. '삼시 세끼'를 찍는 것도 아니고 너무도 단출한 주방에서 그녀는 나무를 태워 불을 지피고 계란을 지지고 커피물을 끓이느라 분주했다. 손님이 많은 것도 아닌데 서비스는 더뎠다. 그 느림이 좋았다. 이 얼마나 대단한 정성인가 싶어 믹스커피 한잔도 보약처럼 황송했다. 그래서인가 맛도 너무 좋아서 아침마다 커피를 두 잔씩 느긋하게 다 마셨다. 나는 커피를 두 잔씩 마시는 경우가 없고 단 커피를 좋아하지 않아 믹스커피를 입에 대지 않는데 말이다.


그렇게 식사를 하며 내려다보니 이곳 사람들도 분주하게 아침을 맞고 있었다. 줄 맞춰 학교에 가는 아이들,

자전거를 타거나 오토바이에 온 가족이 매달려 가기도 했다. 어디론가 무슨 일을 하겠다고 집을 나서는 사람들. 이곳의 아침도 세상의 모든 아침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 신선하기도 감사하기도 했다. 그 공기가 좋았다.


이젠 나도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 바간의 첫날 아침. 이제 다시 길을 나서자. (2015/1/15 씀)

이전 11화 미얀마-볼수록 믿어지지 않는 나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