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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Apr 21. 2023

호주, 바닷가에서 전복 얻은 이야기

바닷길을 산책하니 이런 일도 생기더라.


오늘도 늦은 오후 산책에 나섰다. 집에서 차를 타고 5분쯤 가면 나오는 쿤야(Koonya) 바닷가다.

소렌토와 이어지는 뒷바닷가 길은 오랜 세월 거쳐 파도에 깎인 기암과 절벽들이 해안선과 어우러져 아름답기 그지없는데, 인적조차 드물어 조용히 사색하며 걷기에 좋다.

절벽 위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바닷길로 내려가는데 주변에 있던 10대 초반의 소년 세 명이 나를 쳐다보더니 한 명이 다가왔다. '무슨 일이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는 '전복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얼결에 그렇다 했더니 어른 손바닥 만한 전복을 불쑥 내민다.

'다이빙을 해서 한 마리 잡았는데 자기는 먹지 않는다'며 휙 건네고 돌아서 제갈길을 갔다. 짧게 '고맙다'는 말은 한 것 같다. 그렇게 묵직한 자연산 전복 한 마리가 갑자기 내 손에 쥐어졌다.


통화를 하며 몇 발치 뒤에서 걷던 남편은 소년들이 혹시 장난을 치는 건가 짧게 긴장을 하기도 했단다. 조용한 시골 동네고 소박한 소년들이지만 뉴스엔 종종 흉흉한 소식들이 들리니까..아무리 바닷가라지만 낯선 이가 불쑥 전복을 따다 주는 일은 흔하지 않으니까..

소년들은 아무일 없듯 사라졌고 나도 가던 길을 이어 걷는데 좀 전과는 사뭇 기분이 달라졌다. 예상치 못한 동행자가 산책길에 끼어든 것이다. 마땅히 집어넣을 봉지조차 없어 어정쩡하게 한 손에 올리고 걷는데 시선도 마음도 전복에게로 모아졌다. 싱싱하다 못해 시커멓고 단단한 생명체를 이리저리 들여다보다 바다를 배경으로 기념사진까지 몇 장 찍었다.


하늘은 푸르고 기울어가는 석양을 따라 바위는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이 바닷가 깊은 물 속 어느 바위에 딱 달라붙어 한 세월 살았겠지. 이 전복은..

그렇게 오롯이 사색하고 동행하여 긴 바닷길을 함께 걷다 집으로 데려왔다. 꿈틀대는 전복을.

소금물에 담갔다가 칫솔로 빡빡 씻어 검은 이끼를 다 씻어내니 순백의 속살이 탱탱하게 드러났다. 유튜브로 손질법을 찾아 내장도 분리하고 모래집도 떼어냈다. 쌀 두줌 넣어 죽을 끓이니 세식구가 한 그릇씩 먹을만 했다. 예정에 없던 맛있는 저녁 메뉴였다.

소년의 순수한 마음으로 인해 산책의 즐거움은 배가 됐고 바닷가 절경에 눈이 심심하지 않았으며 입까지 호강했던 쿤야 바닷가의 전복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전복 입장에서는 슬픈 공포 이야기이기도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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