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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Jul 20. 2021

호주, 세 여인이 손으로 깎아 만든 '동굴 속 저택'

쿠버 피디 로드 캠핑 중 만난 특별한 이야기

호주 오팔 광산 마을 '쿠버 피디'에서 들렀던 흥미로운 집 하나를 소개해 보겠다. 지난 글에서도 말했듯 이곳 사람들은 언덕 하나를 지정한 뒤 굴을 뚫고 들어가 동굴집을 지은 뒤 사는데, 그중에서도 여인 셋이서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손으로 파내 만든 동굴집이 있다 해서 가본 것이다.

주방-여기저기 홈을 파서 가전기구를 빌트인으로 들여놓았다. 마침 집주인이 저녁을 준비하던 중이라 고소한 기름냄새가 한가득.
안방, 건넌방

1970년대 즈음, 광산 붐을 타고 이곳에 이주한 페이란 젊은 여인은 자신이 살 집을 직접 만들기로 했단다. 그때만 해도 얼마든지 기계를 이용해 쉽게 굴을 팔 수 있었음에도 그녀는 망치나 도끼 등 오로지 손도구만을 이용했다. 무슨 생각에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도전하는 인생을 살기로 작정하고 젊은 여자가 이 척박한 땅에 온 이상, 내 힘으로 뭔가를 해보겠다는 의욕이 남다르게 솟구쳤던 것은 아닐까 싶다.

동굴이라 모든 공간엔 방문도 창문도 없다. 위아래 높낮이로 공간을 나누기도 하고 드레스룸이나 욕실은 간단히 커튼으로 가리기도 하고.. 그래도 전기 수도 인터넷까지 다 갖춰 있다.

동굴집은 일반 주택 이상이었다. 주방이며 거실이며 와인 저장방이며 게임룸이며 없는 게 없었다.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고, 방 하나 만들어 들어가 살면서 시간을 두고 한 칸씩 한 칸씩 늘려간 거란다. 나중에 두 여자 친구가 거들어 작업에 속도가 붙었고, 결국 이 저택은 세 여인이 손으로 만든 집이란 명성을 얻으며 지금까지 유명 관광지로 남게 된 것이다.

그녀는 여러 해를 이곳에 살며 직접 관광객들을 맞다가 노년에는 브리즈번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큰 호텔 사업을 했단다. 90을 바라보는 최근에야 기력이 떨어져 모든 사업에서 물러 났다고 한다.

복도-가구를 놓는 대신 벽을 조금 더 깎은 뒤 장식 공간으로 활용. 이곳 원주민들이 사냥할 때 던지는 부메랑을 모아 놨다.

놀랍게도 이 집엔 아직도 사람이 산다. 9년 전부터 관리자로 살고 있다는 노부부는 날마다 자기의 살림집을 대중에게 열어 보이며 가이드까지 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 지 놀랍기도 하고, 너무 피곤할 것 같기도 하고, 이 집에 대한 애정이 정말 대단한 것도 같고.. 어쨌든 사람이 살고 있는 생활공간이라 그런지 이 마을에서 둘러보았던 미술관이나 박물관 같은 다른 동굴 공간 보다도 오히려 동굴 주택에서의 삶이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그녀가 떠났을 때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서인지 약간 복고적이기도 하면서 나름 세심하고 삶을 여유 있게 즐겼던 여인의 향기가 집안 여기저기에 남아있는 듯했다.

그녀의 초상화가 그려져있는 게임룸, 당구대, 실내 수영장

집 안에 실내 수영장까지 있다는 게 제일 놀라웠다. 호주에서는 일반 주택에 실내 수영장 있는 게 크게 눈길 끌 일은 아니지만, 이곳은 사막에 가까운 건조한 땅이다. 게다가 동굴 속 아닌가... 애초에 그녀는 이곳을 야외 수영장으로 만들었단다. 그런데 물이 너무 빨리 증발해 버리고 마른 먼지가 날라들어 수질 관리도 어렵고 하여 지붕을 덮어버렸단다. 그러니 엄밀히 말하면 이 집에서 유일하게 동굴이 아닌 야외에 창까지 내고 있는 공간이다.

돌과 선인장으로 가꾼 조촐한 정원

어찌 보면 필요한 것 다 갖추고 세상을 밀어낸 채 자기만의 삶을 오롯이 즐기며 산 것도 같고.. 황무지에 온 삶을 바쳐, 재미난 프로젝트 하나 완성시킨 것도 같고.. 왜 좀 더 편히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여기 와서 이런 일을 벌였던 걸까 싶기도 하고... 여러 의문을 품게헸던 그녀만의 인생이 담긴 독특한 집이었다. 또 이런 환경적 역사적 배경 때문에 정신력이나 체력이나 호주의 보통 여인들이 남자 이상으로 강인한 것은 아닌가 생각도 해봤다. (2012년 10월 26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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