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인물 사전
국민 MC 유재석에게 한 후배가 물었다.
언제부터 그렇게 자신감이 생겼느냐고.
데뷔 후 꽤 긴 세월 주목받지 못했던 유재석은 카메라 앞에서 자신감을 잃어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일이 많았다. 생방송 중 심하게 더듬어 사고를 쳤던 장면은 아직도 동료들이 두고두고 놀릴 만큼 유명하다. 그런 그가 어느 순간부터 능수능란하게 프로그램을 이끌기 시작했다. 그 변화의 힘은 어디서 온 것일까?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유재석은 이렇게 답했던 것 같다.
오랜 무명의 시간 동안 힘들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다 보니 어느 순간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겼고, 그때부터 더 잘할 수 있었다고. 끝까지 남는 사람에게는 기회가 오기 마련이고, 오래도록 그 일을 하고 싶다고도 했다.
방송인으로서의 유재석도 참 좋지만, 그의 이런 마음가짐도 정말 배우고 싶다.
요즘의 나는 그림에 대해 아주 약간의 자신감이 생겼다. 내가 엄청나게 잘 그린다거나, 언젠가 대가가 될 거라 믿는다는 뜻은 아니다. 나보다 잘 그리는 사람이 세상엔 넘친다는 것도 알고, 내 그림이 그렇게 대중적이지 않다는 사실도 안다.
난 참 심하게 겸손한 타입이다. 겸손하다 못해 자신감이 부족하고, 자기 비하에도 쉽게 빠진다. 그래서 정말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는 일 앞에서도 자주 망설이고, 스스로를 의심할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었다. 잘 못해도 그림을 그리는 내가 좋았다. 계속 그리고 또 그렸다. 처음에는 선생님 밑에서 수동적인 자세로 배우기만 했다. 내 그림에 대한 절대적 평가권을 한 사람에게 주고, 그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하다 보니 자신감이 자꾸 떨어졌다. 하지만 독립하고 대학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하면서 조금씩 자신감이 붙게 되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 스스로 주제와 소재, 방향, 시간 등을 주체적으로 정하고 그 작업들을 하나씩 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내가 이런 정도는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을 쌓아갈 수 있었다. 교수님들로부터 비교적 객관적인 입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이제 학교 공부는 마무리되었고, 다시 혼자 그림의 세상에 던져졌다.
대학원 진학과 개인전 사이에서 고민하던 끝에, 이번에는 개인전을 선택했다. 무모한 도전이었다. 울타리 안에 안전하게 있기보다는 길바닥 한복판에 서 보자는 마음이었다.
예상대로 쉽지 않은 길이다. 매일이 고민의 연속이지만, 동시에 참 뿌듯하다. 한 작품, 한 작품 해내고 있는 나 자신이 기특하고, 새로운 작품을 시작할 때마다 이번에도 결국 내가 해내게 될 거라는 믿음이 쌓이고 있다. 대학원 대신 개인전을 선택한 것을 아직까지는 후회하지 않는다.
사는 게 귀찮을 때가 많았는데, 요즘은 좀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싶은 그림들이 계속 떠오르면서 이 그림은 그리고 죽어야 할 텐데 싶어지는 것이다.
누가 좋아해 줄까 싶은 그림이라도 내가 좋아하니까, 내가 나를 믿으니까.
오래도록 방송을 하고 싶다는 유재석처럼 나도 오래도록 그림을 그리고 싶다.
(개인전은 우여곡절 끝에 잘 끝났다. 하지만 요즘은 대학원에 가고 싶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후회를 반복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