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평범하게 사랑하는 일
나는 1%도 허영이 없다, 손!
과연 자신 있게 손을 든 사람이 있을까?
표준국어대사전은 허영심을 “허영에 들뜬 마음”이라 정의한다. 그리고 ‘허영’은 “자기 분수에 넘치고 실속 없이 겉모습뿐인 영화(榮華), 또는 필요 이상의 겉치레”라고 한다.
정리하자면 허영이 있다는 말은 결코 좋은 말이 아니다. 누군가 나에게 허영이 있다고 하면, 기분이 좋을 리 없다. 하지만 정말 허영이 1%도 없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할까?
비트겐슈타인은 평생 허영을 버리려 애썼다고 한다. 깊이 있는 사유에 도달하려면 자신에게 정직해야 하고, 그러려면 허영을 모두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조차도 완벽하게 자유롭지는 못했다.
명망 있는 교수직을 내려놓으면서 허영에서 벗어났다고 믿었던 그는, 책을 집필하면서 문체에 집착하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여전히 허영심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을 고백했다.
그는 한 조각의 허영심이라도 들어 있으면 그 행위는 순수하지 못하다며, 평생을 허영과 싸우며 살았다. 정말 허영이 없는 인간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일까.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수도승처럼 바라기라도 했던 걸까.
내 평생, 허영심이 1%도 없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나는 전혀 허영심이 없다”라고 믿는 그 마음마저 허영이 아닐까.
인간은 아주 어릴 적부터 타인과 비교하며 조금이라도 나은 위치를 갈망한다. 그런 본능을 완전히 버리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나만 해도 허영 덩어리다. 읽지도 않을 책을 쌓아두며 지적인 척하고, 팔리지도 않을 그림을 그리며 예술가인 척하고, 바쁘지도 않으면서 괜히 바쁜 척한다. 더 말하자면 끝이 없고, 내 보잘것없음이 드러날까 싶어 차마 다 적지도 못한다.
그렇다고 내가 전혀 솔직하지 못한 거짓말쟁이는 아니다. 허영 덩어리일 때가 많지만, 가능한 순간에는 허영을 내려놓고 아주 잠시라도 정직해지려 애쓴다.
내 주변 사람들, 혹은 존경받는 유명인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오르고 덕망을 쌓아도 완벽하게 허영심을 버린 사람은 본 적이 없다. 누구나 조금씩은 허영을 가지고 산다. 그렇다고 그들의 말과 행동이 모두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과하지 않은 허영은 귀엽게 바라보고 싶다.
인간은 누구나 허영심을 지닌다는 전제를 깔고 본다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의 허영은 괜찮지 않을까.
나도 허영을 부리니까.
“아, 저 사람도 나처럼 지금 약간의 허영을 부려보는구나. 귀엽네.”
하고 웃을 수 있다면 세상을 조금 더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위험한 사람은 자신에게 허영심이 단 1%도 없다고 믿는, 진짜 허영 덩어리들이다. 그들은 남의 작은 허영조차 용납하지 못할 테니까.
글쎄, 비트겐슈타인은 평생에 걸쳐 마침내 허영을 버리는 방법을 찾았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를 사는 우리 대부분은 귀여운 허영 덩어리들이다. 그러니 서로의 허영을 귀엽게 바라봐 주고, 조금만 참아주면 좋겠다. 비난과 험담 대신,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는 역지사지의 이해가 오가는 세상을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지적 허영심이 가득한 우리 마녀책력 회원들이 정말 귀엽다.
나만큼.
: 저자가 운영 중인 네이버 카페 ‘마녀책력’은 온&오프라인 여성독서모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