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삶을 위해
고도로 발달한 뒤 없는 사람은 앞날이 창창한 사람과 구별할 수 없습니다. 저는 글을 쓰는 사람 중에서는 흔한 유형이긴 한데, 자신은 너무 힘들어서 나이를 먹기도 전에 죽어버릴 것이라는 예상을 하는 부류였지요. 그래서 늘 뒤 생각은 하지 않고 앞을 향해 들이박곤 했습니다. 다행이도 사람들은 그걸 열정 있다고 봐 주었습니다.
제 계획은 어딘가 엉성합니다. 일정은 타이트하게 잘 짜고, 무얼 할 것인지에 대한 아이디어도 좋지만, 그걸 어떻게 실현할지에 대한 계획이 늘 엉성했습니다. 첫 문장이나 관심을 끄는 능력은 좋았지만 ‘그래서 이렇게 될 것이다’라는 결론을 도출하는 데에는 무척이나 약했지요. 어쩌면 아주 짧은 대화에서는 호감을 사는데 오랜 관계 유지가 어려운 것은 이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굉장히 희망찬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앞을 보고 나아가며 주변 사람들을 잘 챙겨주고, 모두 함께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앞장서기는 조금 부끄럽고 두세 번째 자리에서 슬쩍 힘을 보태주는 사람이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나고 자라지를 않아 다른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완전하지도 않은, 반쪽짜리 재능이지만요.
반쪽짜리 재능이라 하더라도 괜찮습니다. 사실 오히려 좋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제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기에 주변에 사람들을 늘 두어야 했습니다. 출판 쪽을 잘 모르기에 출판에 관심 많은 친구가 필요했고, 디자인을 할 줄 몰라 디자인을 할 줄 아는 친구가 필요했으며, 콘텐츠를 잘 몰라 콘텐츠를 할 수 있는 친구가 필요했습니다. 이따금 마음이 꺾이지 않도록 도와줄 친구나 그냥 귀여운 친구, 믿어주는 친구 등 정말 많은 사람을 곁에 둬야 했고, 반드시 있어야 하기에 위기가 있더라도 늘 잘 넘길 수 있었습니다.
만약 제가 뭐든 다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아마 주변 사람들을 이렇게까지 아끼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왜 그걸 못하느냐고, 그럴 거면 내가 하는 게 낫다며 화를 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 사람이 없으면 안 되기에 저를 돌아보고 그 사람의 사정을 곱씹어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천천히 다시 생각하다보면 그 사람도 이해가 됩니다. 그리고 저를 다시 보면, 제가 부족하기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요. 저에게 부족함은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해는 저의 부족함을 메우는데 그치지 않고, 함께 밥을 먹고 글을 읽으며 웃고 우는 시간들을 가져다 주었지요.
목표점에 얼마나 빨리 도착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것을 느끼느냐로 관심을 돌린다면 조금은 부족한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