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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의 Oct 27. 2024

호구와 얌체

도무지 중간이 없는 세계

우리 사회가 기대하는 모성의 존재 방식에는 중간이 없다. 비유하자면, 두 발로 걸어다니거나 값비싼 승용차를 모는 것 이외에 아무런 선택지가 없다는 것이다. 이 삭막한 세계에서 버스, 자전거, 공유 킥보드, 지하철, 택시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1억을 지불하면, 자동차를 몰 수 있다. 그나마도 유지비는 기가 막히게 많이 들고, 주차할 곳은 도무지 찾기 어려우며, 도로란 것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아서 운행하기가 힘들다. 더 저렴한 교통수단이 없으니 울며 겨자먹기로 1억이나 내긴 했지만, 내가 상전인지 차가 상전인지 모르겠다.    

 

당신이라면 1억을 주고 차를 사겠는가? 쩝, 수지타산이 영 안 맞는다. 심지어 운행이 썩 편리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비싼 돈 주고 불편한 차를 모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호구'라고 부른다.  

    

아무도 호구가 되고 싶지 않다. 호구가 된다는 것은 서열이 낮아지는 것이다. 특히나 효율, 최적이 중요한 사회에서 호구는 우스꽝스러운 사람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1억을 지불할 능력이 있다는 것은 제법 샘나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그 호구가 눈탱이를 맞았다는 사실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부모라는 값비싼 호구는 이중적 지위를 지닌다.      


당연히 차를 사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흠, 몇천만원이면 모를까... 1억이나 하는 차는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게다가 승용차가 없이도 가까운 곳은 걸어다닐 수 있으니 안 사는게 효율적이다. 그런데 이 뚜벅이들도 호구가 차로 실어오는 물류 덕분에 덕을 보는 면이 있다. 그렇다면 이들도 이중적 지위를 지닌다. 1억이나 아꼈기 때문에 '얌체'로 분류된다. 얌체들은 아낀 돈으로 다른 많은 것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차가 없다는 이유로 멸시와 조리돌림은 당한다. 가성비로 따지면 합리적인 선택을 했음에도, 얌체는 도덕적 서열이 낮다. 아무도 얌체 취급 당하길 원하지 않는다.      


저출산이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기 시작하면서, 출산하지 않는 이들을 은근히 얌체로 취급당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같은 이유 때문에 출산하는 – 특히 많은 자녀를 출산하는 – 이들은 은근한 호구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호구는 못난이고, 얌체는 야비하다. 그러니 아이를 낳았건, 낳지 않건 간에, 스스로의 존재가 다소간 깎아내려지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 얼마나 애석한 일인가. 내가 출산이 시대와 불화한다고 느낀 이유가 이것이다.     

 

호구와 얌체로 세상이 양분되는 것은 모두가 자동차의 가격표만 바라보기 때문이다. 가격이 1억이 되는 순간, 그리고 모든 중간 선택지가 삭제된 순간 우리의 시야도 그만큼 좁아진다. 차를 몰고 가야만 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들에 대해서 우리는 말하지 않는다. 천천히 걸어가며 감상할 수 있는 소소한 풍경도 의미가 없어진다.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저 세계에 버스나 지하철, 택시, 자전거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자동차를 싼 값에 마련할 방법이 있다면 어땠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호구도 얌체도 아닌, 그저 보통이고 싶다. 정당한 비용은 지불하되, 우스워지고 싶지는 않다. 내 몫은 재주껏 챙기되, 남들에게 무임승차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나는 다양한 선택권이 존재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일단 자전거를 탈 줄 알면, 조금 더 먼 곳까지 가보는 일이 손쉬워진다. 어쩌면 나중에 스쿠터 정도는 몰 수 있게 될 것이다. 버스와 택시란 것이 생기면, 도로가 더 구석구석 연결된다. 그러면 자연히 자동차를 모는 것도 수월해진다.     


모성이란 것도 꼭 거창한 조건을 갖춰서 그럴싸한 결혼식을 올린 다음, 생물학적 친자를 낳음으로서 획득해야 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나는 다양한 방식으로 타인을 돌보고 관계를 맺는 것도 부모됨의 일종이라고 생각한다. 장기적으로 깊은 유대 관계를 맺는 것. 공동체에 소속감을 갖는 것. 온갖 종류의 창작 활동, 다음 세대의 성장을 지원하는 것처럼 많은 예시가 있다. 더 나아가서, 실제로 아기를 낳고 키우는 일은 그 허들이 획기적으로 낮아질 필요가 있다.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최적을 스스로 내려놓을 수 있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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