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인기 없는 저출산 대책
이상으로 생물학을 중심으로 인간의 속성과 그에서 기원하는 저출산 요소들을 살펴보았다. 물론 내 주장이 실용적이지 않다든지, 뜬구름 잡는 소리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탐구야말로 근치적 치료를 가능하게 해주는 배경이 된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알아야,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 젊은이들이 삶에서 체감하는 경쟁 밀도를 완화해 주고, 취약자를 배려하는 사회적 연대를 구축하고, 지나친 불안과 통제욕을 낮출 방법을 찾아보자. 그러면 인간은 자신의 유전자를 시공간 축에서 확장하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욕구에 호응하게끔 되어 있다.
낳고 싶은데 여건이 안되어서 못 낳는 사람들을 지원해야지, 낳기 싫은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가? 낳기 싫은 것과 낳지 못하는 것은 한 끗 차이이다. 이런 저런 조건이 완벽하지 않다고 여기면 낳기 싫어지고, 역으로 아기를 낳기 싫다 보면 이런 저런 조건을 이유로 내세우기도 한다. 그래서 경제 문제도 중요하지만, 재생산에 대해 우호적인 토양을 갖추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게다가 차별적으로 돈을 분배하는 것은 반드시 집단 간 갈등을 유발하지만, 사회의 균형을 찾는 것은 전체적인 삶의 만족도를 높인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일상적 영역에서 꽉 짜인 최적의 기준을 완화하는 것은 장점이 많다. 어떤 이들은 망설이던 출산을 결심할 수도 있고, 어떤 이들은 가족과의 관계에 더 정성을 쏟을 수도 있다. 더 나아가 비혼자와 기혼자 사이, 유자녀와 무자녀 사이의 갈등을 완충할 수 있다.
내 의견이 인기가 없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의사로서 환자를 진료하는 경험에 비추어 보면 그렇다. 내가 약을 처방하거나, 치료 행위를 하거나, 수술을 하자고 하면 대체로 환자는 만족한다. 하지만 살을 빼야 한다든지, 당분간 성관계를 해선 안된다든지, 담배를 끊어야 한다고 말하면 대체로 환자는 불만족스러워한다. 그런 고리타분한 조언은 ‘의사가’ 뭘 해주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의사의 치료와 환자의 노력이 동시에 필요한 상황도 있는 법이다.
명료한 것을 좋아하는 인간의 속성은 가임기 여성이나 젊은 부부들에게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저출산 대책을 고민하는 수많은 이들에게도 동일하게 작동한다. 대한민국이 소멸한다는데, 큰일도 이런 큰일이 없다. 이런 골치 아픈 현실 속에서 우리는 간편하게 도출할 수 있는 단일한 속성을 떠올린다. 이를테면 돈이라든지!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덧붙이자면, 사실 나도 돈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돈이라는 거대한 표상을 켜켜이 둘러싼 다양한 맥락과 층위는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을 것이다. 뿌리 세계와 햇빛 세계의 깊은 간극이 줄어든, 보다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를 희망해 본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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