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이치영 Apr 02. 2024

대형견과 함께 산책하기

래브라도 리트리버와 함께 살기 06

 오늘 아침 제이와 산책을 하는데 노견을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하던 아주머니가 "참 잘생겼어요."라고 말씀하셨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니 "교육을 시켰어요?"라고 물으신다.  제이가 내 옆에 잘 붙어서 걷기에 물어보신 듯했다. "아니요. 대신 주머니에 간식을 넣고 다녀요."라고 말씀드렸다.

 제이는 자주 다니는 곳에선 꽤 얌전하게 군다. 내 옆에서 발맞춰 잘 걷고 눈도 잘 마주친다. 눈을 마주친다는 건 간식을 원하기 때문이긴 하지만. 처음 가는 곳에서도 얌전한데 그건 아직 그 장소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곳에 2-3번은 가야 익숙하게 돌아다닌다. 익숙한 공간에 이틀 정도 안 가면 초반에는 상당히 정신없이 행동한다. 자기가 원하는 곳에 가서 냄새를 맡아야 직성에 풀리는 듯 나를 잡아끈다. 오늘 아주머니를 만날 때쯤은 다행히 45분 정도 산책을 한 후라 아마 더 얌전하게 행동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마주쳤을 때 얌전히 굴면 간식을 주기 때문이기도. 먹는 것을 위한 머리 회전을 진짜 빠르다.

 제이와는 주로 이른 아침에 산책을 하기 때문에 사람들을 안 만나는 편이지만 요 며칠 벚꽃이 활짝 피기 시작하면서 꽃구경을 온 사람들과 강아지를 꽤 만난다. 이런 사람들이 제이를 보는 시선은 두 부류로 나뉜다.

아까 아주머니처럼 개가 잘생겼다고 말을 거는 분과 멀리서 힐끔힐끔 쳐다보는 분들이다. 힐끔힐끔 쳐다보는 분들도 두 부류인 거 같은데 '저렇게 큰 개랑 다니다니...'라는 시선과 '멋지지만 무섭다.'라는 시선이다.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사실 대형견과 다니면 괜히 사람들 눈치가 보인다. 제이가 리트리버지만 사람 친화적인 성격은 아니다 보니 더욱 그렇다. 사실 공원을 다니다 보면 오히려 목줄을 풀어놓는 건 소형견을 키우는 견주들이다. 지난주엔 목줄이 풀린 포메라니안 한 마리가 달려들어서 도망간 적이 있다. 견주분들이 죄송하다고 사과하긴 하셨지만. 대형견인데 왜 도망가냐고? 혹시 몰라서다. 제이가 멍! 짖으면 포메가 앙! 짖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소리가 나니까. 그리고 덩치 차이가 워낙 크니 잘못 건드리면 소형견이 진짜 다칠까 봐서다.

 아무래도 젊은 여자가 큰 덩치의 개를 데리고 다니니 어른들이 보면 좀 눈치를 주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공원을 치우는 미화원 아저씨도. 특히, 미화원 아저씨는 가끔 똥봉투를 잔디에 그냥 두고 가는 사람들과 안 치우고 가는 사람들 때문에 화를 내고 궁시렁대면서 우릴 쳐다본다. 그럴수록 난 제이의 똥이 가득 든 파란색 봉투를 보란 듯이 흔들며 걷는다. 물론 아저씨도 화가 나겠지만 그건 제이 탓은 아니니까. '우리도 사람들이 안 치우고 간 응가를 피하면서 걷기가 힘들다고요.'라고 마음속으로 볼멘소리를 한다.

 워낙 사람들과 부딪히기 싫어하는 성격이라서 요즘 같은 때보다 찬바람이 강하게 부는 겨울이 좋다. 그런 날엔 사람이 진짜 없다. 큰 공원이 다 우리 거다. 그래도 예쁜 꽃이 피니 걸을 때마다 심심치 않아서 좋다. 예뻐서 좋다. 사진도 많이 찍게 된다.

   이제 점점 더 사람도 많아질 것이고 제이도 더워해서 곧 새벽 산책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소심하지만 사람들 칭찬은 늘 기분이 좋다. 오늘 제이가 칭찬받아서 기쁘다. 제이야, 지금처럼만 신사적이고 얌전하게 산책하자~

  

  

매거진의 이전글 실외배변의 장단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