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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행형 Oct 20. 2023

친구의 부친상에 다녀온 날

[5-8] 최전선



  최전선 最前線(가장 최, 앞 전, 줄 선)

  1. 맨 앞의 선

  2. 적과 맞서는 맨 앞의 전선     


  한 살씩 먹으며 최전선에 조금씩, 그리고 자연스럽게 가까워진다. 더 이상 우리를 보호해 줄 누군가 또는 무언가가 우리 앞에 남아있지 않게 되고, 우리가 지켜내야 하는 입장에 선다.      


  행정직이 아니라 현장에서 시민들 또는 민원인들을 만나는 사회복지사나 공무원을 최전선에 있다고 표현할 수 있다. 시민들의 실제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실생활을 가장 가까이서 보고 그에 적합하게 대응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직원들에게 매달 월급을 줘야 하는 사장님이자 집의 가장 역할을 하는 부모는 회사에서와 가정에서의 최전선에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이 최전선이 남들보다 비교적 빠르게 다가올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영원히 오지 안 올 수도 있다. 


  내가 최전선에 조금씩 가까워진다는 것을 느낀 경험 중 하나는 친구 아버지의 장례식이었다. 10년 지기 친구들과 여행을 계획하고 여행 떠나는 날이 3일 앞으로 다가왔을 때였다.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운동을 하러 외출 준비를 하던 나는, 정신 차리고 보니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 ‘이러다가 늦겠어.’ 서둘러 양말을 신었다. 

  10대에 겪은 할머니 두 분의 연이은 장례식, 21살에 겪은 친구의 장례식, 대학교 지도 교수님의 장례식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여느 때와 달랐다.    

 

  장례식장 입구에 들어서자, 상을 당한 친구는 밖에 나와 있었다. 

  “왜 밖에 나와 있었어.”

  “그냥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마침 너희가 왔어.”

  조문을 위해 장례식장을 찾은 친구 둘과 나, 그리고 상복을 입고 있던 친구, 이렇게 넷이서 서로 안고 잠시 그대로 계속 서있기만 했다. 눈물을 흘리는 친구 옆에 친오빠와 남동생이 상복을 입고 함께 서있었다. 그나마 형제가 함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느껴졌다. 나에게 있어, 부모의 장례는 최전선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떠나가신 친구의 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 식사 장소로 안내를 받았다. 친구는 조문객들이 벗어놓은 신발 방향을 돌려 신발장 정리를 하고 나서야 뒤따라 들어왔다. ‘맞아... 장례식장은 슬퍼하고만 있기에는 할 일이 많은 곳이었지. 조문객도 맞아야 하고, 때로는 식사도 날라야 하고, 부조금을 세기도 해야 하고, 회사에 연락하고 서류도 제출해야 하고. 돌아가신 분의 빈자리를 충분히 느끼고 애도할 틈 없이 내 일상으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돌아가야 하는 게 장례였지...’ 장례식장에서 과거에 느꼈던 원망스러움이 다시 떠올랐다.     


  20살, 외할머니와 친할머니께서 한 해에 돌아가셨다. 두 차례의 2박 3일을 장례식장에서 보내며 새로운 경험을 했다. 어떤 방은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어떤 곳은 조용했다. 어떤 방에서는 찬양 소리와 ‘하나님께서 데려가신 것이니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좋은 곳에 가셨을 테니 우리 기뻐합시다’라는 말소리가 들렸다. 또 어떤 곳은 한 맺힌 듯 한 서글픈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슬픔을 넘어 원통함 같은 것이었다. 어떤 곳엔 형제들의 다툼도 있었다. 아마 부모님이 남기신 재산, 또는 부조금 관련 이슈들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스무 살에 겪은 두 번의 장례식이 죽음이나 인생에 대한 철학을 주진 않았다. ‘저런 모양의 장례식도 있고, 이런 모양의 죽음도 있는 거구나’ 이 정도였다. 어린 시절 나를 사랑으로 키워주신 두 분의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더 이상 곁에 안 계시다는 슬픈 감정들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그 자리에서 엉엉 울었다. 여전히 내가 처음 겪어보는 경험 정도였다.      


  이번 장례식은 사뭇 달랐다. 항상 최전선에 있을 것만 같던 부모님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조금씩 약해지고, 어깨가 좁아지고, 키도 줄어가고 있다는 것은 체감하고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내가 이어받아 부모님 마음에 안정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부모님과 여행을 가고 즐거운 식사 자리를 만드는 데 신경을 써왔다. 이제는 최전선에 섰던 누군가에게 고생했다고 말하며, 이제는 내가 앞장설 테니 잠시 뒤에 물러서 있으라고 말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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