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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행형 Oct 20. 2023

어려운 길과 쉬운 길에 섰을 때

[5-10] 최선


  최선 最善(가장 최, 착할 선)

  1. 가장 좋고 훌륭함. 또는 그런 일.

  2. 온 정성과 힘.      




  문득, ‘쉬운 길을 택해온 적이 많았구나’ 생각했다. ‘어려운 길과 간편한 길 중, 가장 어려운 길은 가급적 피해왔구나, 그리고 그걸 좀 더 쉽게 만드는 요령들을 피워왔구나...’ 

  그러고 나니, ‘최선보다 차선을 선택해 왔다면, 앞으로도 두 가지가 있다면 그중에 더 어려운 걸 선택하며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연이어 들었다.       


  쉬운 길이 있다는 건 이미 10살쯤 알았던 것 같다. 학교에서 수행평가를 하면, 돈을 내고 과외를 받거나 학원을 가면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음악시간에 단소 수행평가가 있었는데, 단소 과외를 받으면 수행평가는 쉬워졌다. 

  20대 중반, 헬스장에서 PT를 받았다. 4개월 만에 체지방은 많이 빠졌고 근육량은 늘었다. 큰 성과였지만, 사실 돈을 내고 얻어낸 성과이기도 했다. 내가 헬스장에 출석하고 내가 내 몸을 움직이고 식단 관리를 했기 때문이라고 여겼지만, 실은 돈을 냈기에 더 쉽게 얻을 수 있었던 결과였다. 그러자 ‘PT'없이는 헬스장에 가는 게 어려워졌다. 이후, 서투르더라도 헬스장에서 혼자만의 루틴을 만들어갔다. 자세가 틀렸을까 봐 걱정하는 마음보다는, 스스로 하려는 의지에 초점을 맞췄다. 트레이너와 함께 했을 때보다 몸의 변화는 확연히 느렸지만, 혼자 할 수 있다는 마음의 변화에 집중했다.   

   

  사회생활을 하며 나는 시니컬해졌다. 어떤 면에서는 비판적인 것을 넘어, 냉소적이었다. 20대 초반에는 공감봇에 리액션봇이었던 내가 누구에게나 친절해지지 않은 데에는 사회생활 때문이라는 꽤 합리적으로 보이는 그럴듯한 이유도 있었다. 사회초년생의 열정으로 연차가 쌓일 때쯤 번 아웃이 왔다는 부연 설명할 거리도 있었다. 

  회사에서 선택적으로 친절하고, 선택적으로 열심히 하고, 선택적으로 냉소적이면 편해지는 것이 많았다. 다른 사람에게 다정하고 친절하게 대하는 데에는, 에너지가 든다는 생각이 어느 순간 자리 잡혔다. 회사생활에 내 에너지를 적당히 쏟고 싶은 마음인 동시에, 나에게 어려운 길을 주지 않기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직장에서는 일을 더 이상 벌리지 않았다. 적당한 거리를 두며 누군가와 불필요하게 엮일만한 여지도 없앴다. 엘리베이터에서 이웃과 웃으며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것조차 에너지 쓰는 일이 되어 버려, 미리 눈을 피하고 사전에 차단하는 것과 비슷하다.    

  

  내 에너지를 많이 뺏기지 않기 위한 전략이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예상과 달리 내 마음은 느슨해져 갔다. 편해서 좋다기보다 물러터질 것만 같아 불안했다.      

  정작 내 주변에는 ‘다정한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결국, 다정한 사람에 끌린다. 다정함에는 못지않은 에너지를 들이는 노력과 다른 사람들 배려하고 공감하는 똑똑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다정한 사람이 돼야겠다고 결심하지만, 가장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서점에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책을 보고, 한 지인에게 톡을 보냈다. ‘생각나서 보내요. 다정함이 사람으로 태어나면 당신 일거야. 고마워요!’하고 일부러 더 낯부끄럽게 말하며 은근히 진심을 전했다.     


  결국 나를 이끈 결론은, ‘어려운 길을 가고 싶다’였다. ‘편하고 쉬운 것으로 얻어내는 잠깐의 성취감 말고, 하루에도 조금씩 어려운 것을 견뎌보자’는 것이었다. 나를 궁지에 몰거나 힘들게 몰아붙이자는 것이 아니고, 나에게 너무 높은 기준과 잣대를 들이밀자는 것이 아니다. 어려운 것과 쉬운 것 두 가지 중 선택해야 한다면 조금은 어렵게 해도 된다는 것이다. 조금은 어려운 것을 선택하는 것이,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전력 질주해 에너지를 다 소진해 버리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은 나를 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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