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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행형 Oct 21. 2023

성장과 인내의 마지노선

[5-12] 마지노선



  마지노선 Magito線

  제1차 세계 대전 후에, 프랑스가 대독일 방어선으로 국경에 구축한 요새선. 1927년에 당시의 육군 장관 마지노(Maginot, A.)가 건의하여 1936년에 완성하였으나, 1940년 5월 독일이 이 방어선을 우회하여 벨기에를 침공함으로써 쓸모없게 되었다. ‘최후 방어선’의 뜻으로 쓴다.      




  동종 업계로 이직을 했다. 이전 직장에 있는 K 팀장님은 업계 내에서 알 만한 사람은 아는 분이라, 현 직장 동료가 물었다. 

  “이전 회사 K 팀장님은 어떤 분이예요?”

  나는 별 고민 없이 바로 답변할 수 있었다. 

  “직원들의 성장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도와주는 분이예요. 직원들의 성장이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거라고 믿는 분이고요. 질적으로 깊이 고민하고 좋은 퀼리티의 결과물을 만들어내요.”

  몇몇 사람들은 K 팀장님과 관련해, 작은 것도 잘 포장해서 대외적으로 소문도 내고 당장의 양적인 성과에도 조금 더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K 팀장님은 질 높은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어떻게 접근해야 하고, 어떤 고민을 해야 하는지, 자원은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알려준 분이었다. 


  아침에 출근하면, 팀장님에게 메일이 도착해있다. ‘지금 맡은 사업이랑 관련된 기사라, 도움이 될 것 같아 보내. 아침에 커피 한 잔 하면서 부담 없이 읽어봐.’ 내가 담당한 사업 관련 최근 이슈들을 놓치지 않고 따라갈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또는 몇 가지 자료를 보내주시며, 읽어 보고 내일 만나서 사업에 적용할만한 것들이 있는지 회의해보자고 하셨다. ‘당장 성과를 만들어 내’라거나 ‘이번 있을 행사 잘 해야 해’, ‘지금 담당 사업 어디까지 진행됐어?’의 접근이 아니라, 직원들이 성장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기 때문에, 팀장님의 이메일은 귀찮은 공부 거리 보다는 반가움과 고마움이었다. 관련 행사나 워크숍이 있을 때는 다녀와서 보고 배우라고 먼저 챙기시며 보내주기도 하셨다.  

  K 팀장님은 이 직장에서 7년 여 근무하신 후, 다른 업을 찾아 떠났다. 떠나시기 전까지 함께 일했던 2년 동안, 나는 성장의 마지노선을 여러 번 만났던 것 같다. ‘나는 여기가 나의 마지노선인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거기가 아니라고 말해주시는 듯 했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배운 적이 있는데, 트레이너는 ‘근육 성장의 원리’를 알려줬다. 성장하려면, 내가 더 이상 들 수 없다고 느끼는 마지노선의 무게를 한 번이라도 들어야 한다고 했다. 근력운동을 하면서 근 섬유가 조금씩 찢어지고 손상을 입게 되는데, 이 때 우리 몸은 회복하려고 하면서 이전보다 더 큰 근육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었다. 성장하려면, 끊임없이 우리의 마지노선과 마주해야 한다.      


  한 번은 정반대의 상사를 만났다. 이 전 팀장님은 나에게 성장의 마지노선이라고 생각되는 지점들을 마주하게 해주었다면, 또 다른 상사는 나의 인내의 마지노선을 알려주었다. 

  그는 보고서 작성은 하지만, 보고는 하지 않았다. 그의 상사에게 혼이 날까 두려워했다. 팀원들에게 보고서 작성과 여러 번의 수정을 지시했다. 어떤 팀원은 보고서를 완성하는 데 한 달이 넘게 걸렸다. 그리고 나서 보고는 하지 않았고, 우리들의 개인 폴더에만 남았다. 보고하러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그였기에, 나중에는 그의 상사가 그를 건너뛰고 직접 보고를 들어오라고 했다. ‘회피’가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그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 그가 안쓰럽기도 했고 상사로써 나름의 짐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결국은 나도 인내하지 못했다. 

  그는 시간을 지키지 않았다. 행사를 열었다. 그의 인사말 겸 강의가 20분, 그 다음 외부인사의 강의가 40분이었다. 그가 이야기를 한 지 15분 되었을 때, 시간을 알렸다. 18분 되었을 때, ‘2분 남았어요’라는 사인을 했다. 25분이 되었고, ‘지금 5분 초과 했어요’라고 전하며 마무리 지어달라고 했으나 결국 35분 쯤 되었을 때 그는 자리를 외부인사에 넘겼다. 외부인사는 화가 났고, 준비한 것 40분 분량을 최대한 요약할 수밖에 없었다. 당부하고 부탁도 해보았으나 이런 일은 거듭되었고, 결국 그가 마이크를 잡는 일은 없어졌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꽤 현실적인 사람이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방법을 찾는 데에만 치중했다. 회사는 당연히 쉽지 않은 곳이고, 그는 나의 상사였으므로, 불합리한 일이 있어도 넘기면 그만이라고 여겼다. 그러다 결국 나는 터졌고, 직원들이 있는 사무실에서 공개적으로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그는 거짓말을 했다. 팀원 사이를 이간질하기 위해서. 다른 팀도 아니고 본인의 팀원들이었다. 본인이 관리하는 팀원을 낮춰서, 본인을 높이려고 했다. 일대일 보고 중이었는데, 팀원 H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H는 실수가 잦으니 신뢰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H팀원이 그런 일을 했다고요? 저는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H팀원에 오해가 없게, 지금 하신 말씀이 사실인지 직접 확인을 해봐도 될까요?’라고 화를 삭이며 물어봤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말을 번복했다. 1분 만에 뱉은 말을 주워 담으려 한 것이다. H팀원에게는 본인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며,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둘러댔다. 

  그렇지 않아도, 이 날은 힘든 날이었다. 내 인내심의 게이지가 높아져 있었다. 이 날, 그에게 세 가지 옵션 중 어떤 것을 택할지 물어보면, 그는 좁혀주는 것이 아니라 옵션 다섯 가지를 만들어 주었다. 그는 내용보다 서식에 목을 매었다. 그의 상사가 보고서를 짧고 굵게 5장으로 만들어오라고 해도, 그는 우리에게 50장 분량을 만들도록 지시했다. 일 잘하는 계약직 직원을 공개적으로 망신주고, 야근하는 다른 직원과 비교하며 좀 더 열의를 보이라고 ‘일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며’ 꾸짖었다. 옆에서 듣고 있는 나는 더 고역이었다. 누적돼있던 찰나, 그가 거짓말을 하고 팀워크를 다져야할 그가 되레 이간질을 할 때, 결국 터지고 말았다. 내 인내심의 마지노선을 넘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공개적인 사무실에서 인내의 마지노선은 넘으면 안 된다는 인생의 교훈을 하나 더 얻었다.      


  이런 에피소드는 끝도 없이 지속됐지만, 인내의 마지노선을 만날 때 쯤, 마법의 문장을 되뇌었다. 

 ‘그럴 수도 있지’, ‘오히려 좋아’, ‘가보자고’

  ‘참을 인 셋’이란 속담에서 온 단어가 현대에 와서 밈(meme)화된 것이 아닐까 한다. 끊임없이 여러 영역의 마지노선을 마주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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