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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행형 Oct 20. 2023

호스피스 병동, 닫힌 병실에 보내는 보이지 않는 응원

[5-6] 방어선



  방어선 防禦線 (막을 방, 막을 어, 줄 선)

  적의 공격을 막기 위하여 진을 쳐 놓은 전선     


[호스피스 병동, 닫혀있던 병실에 보내는 보이지 않는 응원]     


  고3, 우연히 호스피스 병동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성인으로 나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고, 남은 1년 동안 주말마다 봉사활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무턱대고 고등학교 근처의 봉사활동 가능 기관 내역을 뽑아 전화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OO고등학교 3학년 OOO입니다. 봉사활동을 하고 싶은데, 지금 가능한 활동이 있을까요?”

  대부분 기간이 맞지 않거나, 가능한 시간대와 맞지 않아, 리스트에서 쭉쭉 빨간 줄을 그어 하나씩 지워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친구의 이모님이 병원 호스피스 병동 사회복지사로 근무하고 계시는 것을 알게 되었고, 소개를 받아 호스피스 병동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나는 호스피스 병동이 어떤 곳인지 몰랐다. 나와 친구 둘, 총 세 명은 1년 동안 매주 토요일, 병동을 방문했고 직접 부딪히며 알게 되었다.    

  

  자원봉사자 사무실에는 커다란 화이트보드가 있었다. 환자들의 기본 정보가 있었고, 나이와 성별, 특이사항 등이 적혀 있었다. 나이대도, 직업도, 배경도 모두 달랐다. 그러나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똑같았다.      

  주 업무는, 병실을 돌며 쓰레기통 비우기, 간식으로 채워져 있는 트롤리를 끌고 병동을 돌며 ‘필요하신 것 있으세요? 차 한 잔 드릴까요?’하며 챙겨드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업무가 더 있었는데, 환자 분 중에 원하시는 활동이 있으면 함께 하는 것이었다. 

  1,000피스 퍼즐 맞추기를 하고 싶어 했던 한 분이 기억에 남는다. 퍼즐 맞추는 것을 함께 하자고 하시며, 다 맞추면 자장면을 사주겠다고 하셨다. 그는 유쾌했고, 그의 얼굴은 환했다. 호스피스 병동은 우울할 것이라는 편견을 깨 주었다. 함께 퍼즐을 맞추며 그 의 살아온 이야기 듣는 것도 즐거웠다. 

  병동에 출근하면 기본적인 일을 마치고 퍼즐을 맞추러 곧장 향했다. 토요일에 1~2시간씩 했는데, 나름의 인수인계가 있었다. 내 뒤에 오는 봉사자에게, ‘초원은 얼추 됐는데, 양들 있는 쪽이 너무 어려워요’라고 전했다. 목자가 푸르른 초원에서 양 치는 일을 하는 그림이었는데, 양이 수십 마리 되었다.      


  환자 분들을 만날 때 우울한 일보다 웃을 일이 더 많았기 때문에, 호스피스 병동에 가는 것에 대한 염려는 줄었다. 어쩌면 내가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슬픔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흰 천에 씌어 나가시는 분들을 마주칠 때마다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보내드릴 뿐이었다. 


  또, 모든 환자 분들이 병실 문을 열어주는 것은 아니었다. 1인 병실이 있었는데, 그 문은 몇 개월이 지나도 끝끝내 열리지 않았다. 나에게는 병실 문이 마음의 문처럼 느껴졌다. 사무실 화이트보드를 통해 환자의 나이가 10대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나와 나이가 비슷한 또래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가라앉았다가 이내 울렁거리기도 하고 이상했다. 그러다가, 아카펠라 공연을 했을 때, 그 병동 환자의 가족을 잠시 스쳤다. 

  학교에서 아카펠라 동아리 활동을 했는데, 일곱 명의 멤버는 연습한 것을 공연하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우리 공연 장소는 한 번은 학교 급식실이었고, 또 다른 한 번은 호스피스 병동이었다. 병동에 문의했는데, 흔쾌히 와도 좋다는 답변을 받았다. 친구들과 나는 병동에 들어가기 전, 환자와 가족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노래하자고 다짐했다. 병실 하나하나를 들리며 노래했다. 1인 병실은 이 날도 열리지 않았다. 실은 조심스러웠다. 우리가 노래하는 것이 그 아이에게는 불편할까 봐 그 병실과 가까울 때는 목소리가 작아지는 것 같았다. 

  예상치 못했는데, 1인 병실의 가족 중 한 분이 ‘고맙다’는 말을 남겼다. 병실 문은 닫혀있었지만, 노랫소리는 흘러 들어간 모양이었다. 누구에게나 마음의 문이 있는데, 때에 따라 열고 닫는다. 대개는 우리 마음에 상처 입지 않도록 지켜내려고 문을 닫곤 한다. 노랫소리를 타고 닫혀 있던 마음 문을 넘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기를 바랐던 것처럼, 아픈 마음에 멀리서 보이지 않는 응원을 보내는 것이 닿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나도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응원을 받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들이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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