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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동물 보호소 봉사 소모임에 가입했다. 요크셔테리어 견주로서 반려동물을 좋아하는 마음도 있었고, 항상 나의 반려견에게는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내가 처음 반려견을 만났을 때는 강형욱 선생님 같은 분이 없어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잘 몰랐어’라고 하며 말이다. 19살의 나이로 우리 집을 떠나고 그 빈자리는 생각보다 컸다. 요즘 강아지들의 수명도 늘어나, 동물병원에 가면 20살, 21살 강아지들도 많이 온다고 했다. 그래도 여전히 장수견이었고, 18살까지만 해도 병원에서 ‘할아버지가 정정하시네요’라는 진단을 받았었기 때문에 크게 아프지 않고 19살을 맞은 강아지를 조금은 마음 편히 보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 나의 반려견은 떠나기 몇 개월 전부터 급격히 신호를 보내왔다. 우리 가족도 이 때부터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심적으로 너무 슬프지만은 않을 것이라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밥을 안 먹은 지 3일차 되었을 때 결국 우리 곁을 떠났다.
우리 집에서 처음 반려견을 키우게 된 것도, 지인의 지인의 지인이 강아지를 키우다가 못 키울 것 같다며 대신 키워줄 집을 알아본 것이 계기였다. 전 주인 집에서는 6살이 안 되는 두 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었고, 그러다보니 강아지를 베란다에 묶어놓고 키우고 있었다. 몸에 오줌과 배변이 묻어 피부병이 심각한 상태였다. 우리 집에 와서 털 빠진 코와 몸과 점차 털이 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도 펫샵에서 데려온 것이 아니라 더 이상 키우지 못하겠다고 하는 지인의 집에서 데려온 것이어서, 내가 나중에 독립을 하고 반려동물을 키운다면 보호소 등에서 입양을 해와야겠다는 생각은 항상 있었다. 그러다보니 보호소 봉사활동도 특별한 이유 없이 자연스러웠다. 최근에는 영향력이 있는 연예인들이 미디어나 SNS를 통해 유기동물에 많이 알리는 것도 도움을 주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유기견이나 유기묘들을 보호하고 관리하려면 넓은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인지, 화성이나 당진, 평택 지역에 보호소들이 꽤 있었다. 아마 비교적 땅값이나 임대료가 비싸지 않은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 차례 방문했을 때 보호소 원장님은 보호소 이전을 한다고 했다. 동물들이 더 넓고 쾌적한 환경에서 새로운 주인을 만나 입양되기 전까지 스트레스를 덜 받으며 지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기 위함이었다. 그녀는 보호소를 운영할 지역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고 했다. 주로 강아지나 고양이들이 지내는데, 주변 상인이나 거주민들은 ‘동물들이 하루 종일 내내 짖거나 소리를 내는 것을 우려한다’고 했다. 우려를 넘어 적극적인 반대도 많이 한다고 했다. 그래서 보호소는 대부분 아예 낮에는 북적북적하되 밤에는 아무도 없는 시장 골목에 들어서 있거나, 주변에 농사짓는 논과 밭으로 둘러싸인 인적 드문 지역에 있었다.
서울에서 화성으로 이사 오고, 이미 내가 지내는 지역도 서울에 비해 비교적 조용하고 한적한 동네이기도 했고, 주변 평택, 당진, 오상 등으로 조금만 이동해도 동물들이 지내기 좋은 넓고 평화로운 동네가 많이 나왔다. 자연스럽게 주변에 있는 이런 저런 보호소를 다니기에 용이해졌다. 각 보호소에서 그 때마다 도움을 요청하면, 필요에 따라 금주 방문할 보호소가 정해졌다.
서울에 계속 있었다면, 거리가 멀다면 큰 장애물이 있었기 때문에 유기동물 봉사를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 같다. 결국 지역을 옮기고 새로운 지역에서 생활을 시작한 계기는 나에게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주는 기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