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실을 잇듯, 삶을 잇다
97세 어르신, 반짝이는 은발이 햇살을 받아 한층 빛났다.
어르신의 집은 낮은 3층 아파트의 1층에 있다. 입구 양쪽에는 꽃밭이 자리하고, 꽃밭과 골목길은 낮은 붉은 벽돌로 경계를 이룬다. 봄이면 철쭉과 데이지가 벽돌 위로 고개를 내밀고, 여름이면 채송화와 백일홍이 꽃밭 가장자리에 색을 흘린다. 부엌 창문을 열면 바로 산이 보인다. 낮은 산이 바람을 막아주고, 햇살은 오래된 액자 속 풍경처럼 아늑하게 내려앉는다.
“창으로 들어오는 산들바람은 에어컨 바람보다 훨씬 시원하지.”
웃음 속에 어르신의 꾸밈없는 소박함이 묻어난다. 이 고요하고 포근한 작은 마을의 오래된 아파트는 인생의 큰 이별을 겪은 뒤 어르신이 새 터전을 마련한 곳이기도 하다. 마흔에 남편을 떠나보내고, 45세에 어린 손자 둘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난 딸을 가슴에 안았다. 홀로 두 손자를 키우며 살아온 세월이 무색하게, 그 손끝은 여전히 부드럽고 단단하다.
오늘도 어르신은 뜨개질바늘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내가 방문간호를 갈 때마다 수세미 하나라도 꼭 손에 쥐어 주신다.
“우리 남편도 먼저 가고, 딸도 일찍 갔지만, 남편은 참 자상했지. 나이 들어 딸 손주라도 봐주라며 젊을 때 보약을 많이 해줬지.”
옛이야기를 들려주며, 당신의 건강은 그 보약 덕분이라고 믿으신다. 그러다 문득, 잠들 듯 조용히 가고 싶다고 하신다.
내가 “제가 자녀라면 슬플 것 같아요.”라고 하자,
“그런 말 하지 마슈. 이렇게 하루하루 뜨개질한 걸 이웃과 나누며 살다, 자다 가는 것이 복이지.”
죽음 앞에서도 초연한 어르신의 모습이 오히려 아름답다.
휴대폰 속에는 딸과 손자들과 찍은 사진이 가득하다. 그 사진을 꺼내 바라보며 기도하고, 손수 뜬 수세미를 이웃에게 나누어준다. 종일 뜨개질하다가 운동 삼아 집 앞 꽃밭에 나가 꽃바람과 입맞춤하고 들어오신다. 주 1회 교회에 가는 날이 세상 구경하는 날이시다. 3 달마다 병원 가는 날이면 택시를 타고 동인천역 근처에 있는 단골 뜨개방에 가신다. 색색이 실을 사 올 때면 수세미를 주고 싶은 이들이 떠오른다는 어르신, 이번에는 양자의 증손녀 원피스를 뜨겠다며, 사랑스러운 색의 실을 사 오셨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거뿐이니까.” 그 손끝의 작은 재능은 사랑으로 변해 주변에 번진다.
나는 오늘, 어르신이 좋아하시는 반짝이는 색의 수세미실 다섯 뭉치를 준비했다. 흰빛 머리카락에 화사한 옷을 입고 환히 웃으며 맞아주실 모습을 떠올리니 발걸음이 절로 가벼워진다. 부드럽지만 굳은살 박인 손이 바늘을 움직인다. 실이 감기는 소리는 내 마음속 해진 것을 꿰매는 듯하다. 그 손길은 세월 속에서 마모된 하루의 틈을 조용히 메우고 있었다.
창문 너머 산바람이 실내를 스친다. 이 길 위에서 어르신들의 시간을 건너며, 내 빈 하루를 채워간다. 이 순간도 한 가닥의 실을 이어 누군가의 삶과 나의 삶을 함께 엮어 가는 중이다. 다음 여정은 큰 간호사 나만을 기다리는 ‘S.N 어르신’ 댁. 그 문 너머에는 아직 풀지 못한 이야기가, 실처럼 이어져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