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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도피하다 06화

도피 6

남겨진

by 도피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던 건 한 순간이었다. 순간을 영원에 잇댄다는 것이 부질없게만 느껴지진 않았다. 그래서 찍어야 했다.


그렇게 한 장씩 찍다 보니 제법 많은 사진들이 모였다. 한 번 사진을 찍으러 나가면 기본 100장은 넘게 찍어온다. 그렇기에 사진을 분류하는 건 꽤나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사진들을 분류할 땐 별점을 매긴다. 하나씩 이유를 찾으며 버릴 사진을 찾는다. 이 사진은 초점이 나가서, 너무 어두워서, 혹은 너무 밝아서. 갖은 이유로 선택을 받지 못한 사진들은 '버려진'이라는 폴더에 넣어둔다.


그렇게 내 기준에 맞는 좋은 사진들을 선별하고 그것들을 다듬고 의미를 넣어 사진을 완성(사실 완성이란 없지만)한다. 그러면 사진이라는 행위가 마치는 것이다.


그러다 블로그에 업로드를 하기 위해 사진을 찾고 있었다. 문득 '버려진'이라는 폴더가 떠올라 찾아보았다. 그 속에 담긴 사진들은 제법 멋졌다. 밝으면 밝은 대로, 흔들리면 흔들린 대로. 신중히 사진들을 바라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남겨져 있는 것들도 꽤 아름답네'


그렇게 '버려진'이 아닌 '남겨진'으로 두기로 했다. 사진이든 사람이든.


_DSC8841.JPG 남겨진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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