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고 고소한
12살 무렵, 서귀포에 살게 되었다.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어릴 때부터 많은 이사를 다녔지만 이번엔 특별히 오래 머물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가족은 교회에서 마련해 준 사택에 살았다. 교회와 마주 보고 있던 빨간 지붕집. 교회에 딸려 있던 작은 잔디밭을 함께 쓸 수 있던 작은 집이었다.
그 무렵 아버지는 커피에 큰 애정을 쏟으셨다. 교회에 장비들을 조금씩 사모으시더니 금세 구색을 갖추셨다. 아침마다 나는 커피콩 가는 소리와 그 속에 잔잔히 스며드는 향기, 아직도 생생하다.
고등학생 시절이었다.
토요일 아침이 되면 어머니는 느지막이 일어난 날 불러 세우곤 보온병 하나를 쥐어주셨다.
'커피 좀 받아 와라'
커피를 특히 연하게 드시는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맞춤 커피는 꽤나 즐거우셨을 것이다.
빈 보온병을 손에 쥔 뒤 교회와 집 사이에 껴있는 잔디밭을 걸어간다. 새벽 내도록 품고 있던 이슬을 찰박이며 걷다 보면 금방 교회에 도착했다. 삑-삑-삑-삑- 도어록을 누른 뒤 잔디 묻은 발을 툭 털어내고 의자에 앉는다.
'아빠, 엄마가 커피 좀 받아 오래요'
빈 보온병을 건네고 손님맞이용으로 마련해 둔 과자를 하나 둘 까먹으며 커피를 기다린다. 물온도는 85도가 적당하고 이 원두는 어디서 왔으며 맛의 특징은 이렇다라고 설명하시는 아버지의 말을 적당히 흘려들으며 말이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방금 내린 따뜻한 커피를 손에 쥐고 집으로 향한다.
어머니와 함께 커피를 나눠 마시며 했던 이야기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토요일 아침 커피는 제법 뜨겁고 고소했다.
지금도 가끔 제주에 내려가면 어머니가 빈 보온병을 쥐어 주신다. 그럼 난 어머니의 말이 끝나기 전에 아버지 사무실로 향한다. 최근에 이사를 한 터라 이제는 잔디밭도 없고 교회는 더 멀어졌지만 아버지의 커피는 여전히 뜨겁고, 고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