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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도피하다 08화

도피 8

서울촌놈

by 도피

서울과 촌놈이라. 웃긴 말이다.

물론 내가 그 웃긴 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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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살 때 주변 친구들은 기본 3개에서 4개 정도의 학원을 다녔다. 그 당시엔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 딱해 보이지는 않았다. 서울의 학원비는 우리 집이 감당하기에는 큰 부담이었다. 혹여나 아들이 학업에 뒤쳐질까 어머니는 학습지를 무려 세 개나 시켜주셨다. 성인이 되어 들은 어머니의 당시 심정은 '조급함'이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하면 참 여유로웠지만 아껴보던 만화책 첫 페이지에는 이런 낙서가 쓰여있었다.


'학습지 하기 싫다 ㅡ3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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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일에 나는 제주도에 도착했고 일주일 후에 학교에 들어갔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진도의 차이라고 기억한다.


자유.


필수 교육 기간인 초등생 시절에 일주일 간의 히피 생활이 시작되었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서 맨발로 잔디밭을 거닐며 여름에 귤을 맺는 나무를 수비수 삼아 축구를 즐겼다. 심심할 법도 한데 전혀 그러지 않았다.


서울에서 뜨겁게 데었던 살들이 시원한 제주 바람에 꿈틀대며 새 살을 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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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들어가기 전 가졌던 일주일의 조정 기간.

뜨거운 머리를 잔디밭에 푹 담근 뒤 서울사람이 아닌 서울촌놈으로서의 준비를 마쳤다.


P20220828_181014310_615C5D6C-0443-46F9-9F20-E2D62477590A.jpg 무제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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